『에쿠니 가오리 비장의 작품집』중에서(매거진하우스 2004년)
엄마는 변함없이 천연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차를 준비하면서
"일부러 안 와도 되는데. 아직 이혼이 결정된 건 아니니 말이다."
라고 했다.
차분하고 담담한 말투라서 노인성 치매환자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마낫토* 좋아하지? 누가 보내준 게 있는데 돌아갈 때 가져가거라."
난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레코드 끌게. 할 얘기가 있어."
나도 모르게 신경질적으로 얘기하고는 레코드를 멈추자
생뚱맞게 흐르고 있던 블루하와이가 뚝 끊겼다.
"기분 좋게 듣고 있던 참이었는데 왜 끄고 그래?"
엄마는 뚱하게 말하고는 꿀꺽, 차를 넘겼다.
"엄마. 그 사람한테 전화가 온다는 거 무슨 말이야?"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엄마는 웃었다.
"무슨 말이긴 그 말 그대로지."
"정말 그게 진짜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엄마는 크큭,하고 웃었다.
"엄마 잘 들어요. 엘비스 프레슬리는 이미 죽었어요."
내가 말하자 엄마는 딴 쪽을 쳐다보며 못 들은 척을 했다.
"엄마!"
엄마는 목을 움츠렸다.
"전화가 오는 걸 나보고 어쩌란 말이냐."
"천국에서라도???"
"그건 나도 모른다."
관심이 없는 듯 엄마는 아마낫토를 한입 가득 넣었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전화는 매일 밤 12시 정각에 걸려 온다고 한다.
엄마가 전화를 받으면 엘씨는 먼저 사랑의 말을 속삭인다고.
"일본어로?"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공부했을 거야. 나 때문에."
나는 기가 막혔다.
그것 뿐만이 아니다. 사랑을 속삭인 다음 엘 씨는 노래를 불러 준단다.
"일본어로 말이야?"
"영어야. 러브 미 텐더."
엄마는 황홀한 얼굴을 하고 그 명곡을 흥얼거렸다.
Love me tender, love me sweet
never let me go
"항상 그 곡만?"
"그래. 가끔은 딴 곡도 듣고 싶지만, 18번이니까 어쩔 수 없잖아."
도대체 무슨 변명이 이런가.
"장난 전화 아냐?"
엄마는 나를 노려봤다.
"아니다."
단호한 어투로 말하고 나서 작은 소리로 너는 모를 거다,라고 덧붙였다.
"전화만으로 난 알 수 있다."
엄마는 힘주어 말했다.
"수화기에서 내 손이나 귀에 전해지는 그 사람의 사랑을 말이다."
난 한숨을 쉬었다.
"아빠는?"
엄마는 돌연 주눅이 든 목소리로 빠찡코겠지,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