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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와 글 May 17. 2016

아나운서에서 승려로(4)

[글] 요시나가 미치코 吉永みち子 [번역] 소리와 글

유우키 시몬(結城思聞)은 후지 TV의 간판 아나운서였다. 본명은 마츠쿠라 에츠로(松倉悦郎). 순풍에 돛단배를 탄 듯한 길을 걷고 있었던 그는 2002년, 회사를 그만두고 승려가 된다. 그때 그의 나이는 56세. 이 글은 그런 그를 인터뷰한 것으로, 네 부분으로 나눠 번역하였다.

사진, 부연설명(*)은 번역자가 덧붙였으며 유우키 시몬의 말은 사각형으로 구분했다.




지금까지 사전에 그려둔 길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던 만큼

벗어나는 것에 대한 면역이 없었다.


쉰 살을 눈앞에 두고 좌절을 맛보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머리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 쳐도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어도 가슴이 답답했고,
중계를 듣고 있어도 나라면 절대 쓰지 않을 표현 하나하나 때문에 신경이 곤두섰죠. 아침부터 좋아하지도 않는 술을 마시며 현실에서 도망치기 바빴습니다."


병원에 다니면서 후배들을 지도했고

통신교육으로 불교를 공부했다.

"불교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부터 출발합니다.

현실에서 눈을 돌리면 해결할 수 없음을 가르치는 셈입니다.
살아있는 중생들을 모두 구원해야 하는 아미타불의 넓은 마음에 모든 것을 맡기고
자아도 아집도 버리고 큰 우주의 환류에 몸을 맡기라고 하죠.

하지만 난 자아도 아집도 다 내려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내 모습에 놀랍고 실망스러웠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 까지 생각했을까 싶지만..... 정말 괴로운 7년이었습니다."


괴로워하면서 조금씩 현실과 타협해 갔다.

그리고

괴로워하면서 불교를 공부했다.



아나운서로서의 마지막을 멋지게 장식할 수만 있었다면

척척, 수월하게-


예정대로 쉰다섯 살에 퇴직을 했을 텐데


바로 전 단계에서  넘어지고 말았으니

매듭을 지을 수가 없었다.


그다음 계획까지 엉망이 되어버렸다.


"1년 연장해서 쉰여섯 살에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그즈음, 겨우 현실에 맞설 수 있게 되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21세기까지만 아나운서로 일하자고,20세기에서 21세기로 바뀌는 시점을 내 눈으로 보고 리포트하자, 싶어 1년을 연장했죠."


도착점의 깃발을 1년 후로 연기한 것뿐만이 아니라

깃발 색도 모양도 바꿨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내 안에서 납득이 갔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마츠쿠라의 성실한 일면이 엿보이는 결정이었다.


마츠쿠라를 지금까지 순조로운 길로 인도한 것도

닥쳐온 시련 앞에 몸부림치게 만든 것도

그가 가진 그 성실함 때문이었으리라.


"그때 그렇게 괴로웠던 게 이제는
나 자신을 위해 잘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대로 순조롭기만 한 아나운서 생활을 보냈더라면 거만해졌을 지도 몰라요. 힘든 순간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도 귀기울이게 되었고 진심으로 함께 고민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마흔아홉의,

너무 늦게 찾아온 좌절

늦어진 만큼 고통스러웠지만


제2의 인생으로 걷게 된 불도(仏道)에 착실히 마음의 뿌리를 내리게 했으니

이 또한 모든 것이 수행의 일부였을 지도 모른다.

젠쿄지에는

문도(門徒)*는 아니지만 주지스님을 찾아오는 이들이 있다.


*문도(門徒)① 같은 스승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② 한 종파의 승려들.


고민이나 마음의 병을 안고

그저 이야기라도 하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다.


신문을 보고 전화를 거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모두의 이야기에

그는 정중하게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절이 문도(門徒)만 다니는 닫혀진 공간이 아니라 누구라도 들어올 수 있는 교류의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주지스님의 명함에는

"즐겁지 않으면 절이 아니다"라고 새겨져 있다.


후지 TV의 광고 문구, "즐겁지 않으면 텔레비전이 아니다"를 인용한 것이다.


"퇴직할 때 당시 방송국 회장님에게 열린 공간으로서 절을 만들어 갈 테니 이 문구를 사용하게 해달라고 했더니 33년이나 몸담은 곳이 아니냐며 허락해 주었습니다."


"즐겁다"와 "절"의 조합이 이상하게 여겨지는 것은

어쩌면 일반적일 지도 모른다.


힘들 때 쉽게 찾아올 수 있는 공간,

마음 편안하게 기댈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게 마츠쿠라의 목표이다.


그런 바람은

다양한 행사를 통해 조금씩 결실이 맺어지고 있었다.


"소규모 작업소에 다니는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초대해서 콘서트를 열거나 살롱 아미타라고 이름 붙인 강연회를 기획하거나. 지금까지 세이루카 국제병원의 히노하라 선생님이나 마라톤의 세코 토시히코 씨가 와 준 적이 있습니다. 한 여름에 절에서  지내보는 아이들을 위한 섬머 스쿨도 열고 있어요."


절이라기보다 커뮤니티 살롱.

듣고 보니 정말 "즐거운 절"같다.


"10년 후에는 [즐거운 것만이 절이 아니다]로 바꿔 보고 싶네요."


흑백 패션에 익숙해졌다며 웃는 온화한 표정은

마츠쿠라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괴로움과 슬픔에 다가가려고 하는 승려 유우키 시몬, 바로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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