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를 구하십니까?

제주도 일자리

by 지집아이

# 제주도민이 된 서울 촌년 1.


'제주도도 사람 사는 곳인데, 나 하나 일할 곳 없겠어?'


무모했던 건지 용기가 넘쳤던 건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땐 자신감이 넘쳤다. 막연하게 '뭐든 먹고는 살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아주 큰 착각이었다. 한 달, 두 달 그리고 세 달이 넘도록 백수 생활이 이어지자 초조함을 넘어 비굴해지기 시작했다. 제주도에 지인이 있다고 했던 친구들에게 일할 곳 좀 알아봐 달라며 부탁했고, 종일 구직 사이트만 바라보며 일할 곳을 찾아 헤매고 또 헤매며 밤을 지새웠다.


제주도민이 된 지 80일쯤 되던 날. 드디어 첫 번째 면접을 보았다. 부서는 '마케팅 팀'. 돌이켜 생각해보니, '내가 급하긴 급했었구나.' 싶다. 마케팅이 뭔지, 어떤 일을 하는 건지 알지도 못하면서 무작정 지원했으니 말이다. 그건 면접관이던 대표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방송작가로 오래 일하셨는데, 왜 갑자기 마케팅 일을 하시려는 거죠?"


궁금한 건,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솔직하게 '돈 때문에요.'라고 할 순 없지 않은가. 결국, '더 늦기 전에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고 싶어서요.’라는 과대 포장식 대답으로 상황을 모면했다. 다행히 면접은 순조롭게 진행됐고, 가장 민감하지만, 가장 궁금한 문제인 연봉 협상만이 남아 있었다.


"음... 마지막으로 원하시는 연봉이... (지원서를 살펴보다) 네? 사... 사천이요?"


순간, 나는 대표가 왜 놀란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 달에 4천이라고 잘 못 본 건가?', '혹시, 너무 적게 써서 놀란 건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많이 적어서 놀랐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저기... 저도 4천은 못 가져가요."

"네?"

"대표인 저도 연봉으로 4천, 못 가져간다고요."


이게 무슨 말인가! 나름 깎고 또 깎아서 결정한 연봉 4천이, 대표에겐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높은 액수라니. 그럼 대체 얼마를 주겠다는 말인가. 처음으로 ‘제주도에서 살 수 있을까?' 겁이 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5일 뒤, 대학 동기의 추천으로 두 번째 면접을 보러 갔다. 독서토론 논술학원을 운영하는 ‘아는 언니’가 강의할 선생님을 구한다기에 나를 추천했다고 했다. 잠시 망설였지만, 통장 잔고는 당장 일을 해야 한다 말하고 있었다.


제주 시내, 아파트와 빌라가 밀집한 상가 건물 4층.

원장이 온화한 미소로 문을 열어주며 나를 맞이했다. 형식적인 인사와 몇 마디 대화가 오고 간 뒤, 그녀는 대놓고 내가 마음에 든다며 당장 함께 일하고 싶다 말했다. 하지만, 이미 한 번의 경험이 있지 않은가. 나는 최대한 예의 바르게 망설이는 느낌을 담아 페이를 물어봤다. 그러자, 원장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고 순간, 불길한 예감이 가슴을 ‘쿵쿵’ 뛰게 만들었다.


“저희 선생님들이... 150씩 받아요.”

“네? 한 달에요?

“아, 서... 선생님께는 제가 170까지 드릴게요. 어때요?”


이럴 수가. 인심 쓰듯 주겠다는 월급이 170만 원이라니. 기가 막혀 ‘생각해보고 연락드릴게요.’라는 빈말도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원장님은 그 돈으로 생활이 되세요?”

“아... 그게... 잘 모르시나 본데, 제주도 임금이 전체적으로... 원래 좀 짜요.”

“학원비는 서울이랑 비슷하잖아요.”

“...”

“죄송합니다. 저는 그 돈 받고는 못하겠네요.”


‘원래’라니... 제일 싫어하는 단어를 듣는 순간 욱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학원 건물 밖으로 나오자 꾹꾹 누르고 있던 숨이 한 번에 터져 나왔다. '후... 이래서 제주도에서 살기 힘들다고 하는구나.' 하늘 높이 치솟았던 자신감은 어느새 바닥에 깔려 이젠 보이지도 않았다. 바로 그때! 누군가의 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야! 하던 일이나 잘해."


'어? 누가 했던 말이지?', '혹시 마케팅이니, 학원 선생이니 어울리지도 않는 옷에 몸을 구겨 넣고 있는 걸 보고 내 안의 내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걸까?.' 여러 의문이 떠올랐지만, 그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는 게 중요할 뿐.


그걸 깨닫게 된 순간, 일이 쉽게 풀렸다. 작가 선배의 소개로 제주 방송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서울에서도 재택근무가 가능한 방송 일을 맡으며 다시 돈을 벌 수 있게 되었다. 서울에서 벌었던 만큼은 아니지만, 제주를 온전히 즐기면서 먹고살기에 그 정도면 충분했다.


물론, 나도 '특별한 케이스'에 속한 다는 걸 잘 안다. 회사원도 아닌 프리랜서고, 재택근무가 가능한 일도 있는 직업이니까.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제주도는 여전히 '저임금' 지역이고, 젊은이들 특히, 고급 인력을 필요로 하는 기업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니 제주도 학생들이 시급이 정해진 '아르바이트'에 목숨 걸거나, 육지로 나가려 발버둥 치는 것이리라.


" 제주도엔 맞벌이 부부가 많아요. 왜인지 아시죠?"


제주도 원주민에게 실제로 들은 이야기다. 왜겠나, 그만큼 혼자 벌어서는 먹고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먹고살 수 없다면 그곳이 과연, 파라다이스가 될 수 있을까? 제주도민이 되길 꿈꾼다면, 가장 먼저 어떻게 먹고 살 건지 반드시 고민하고 계획해야 한다. 나처럼 무식하게 '용기' 하나만 가지고 왔다가는 큰 코 다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