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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피디 Oct 24. 2019

결혼식 일주일 전
아빠가 돌아가셨다.

그리고 나는 결혼식날 울지 않았다.

 나는 생에 단 한 번뿐인 축복의 혼인식을 기다리는 예비신부였고, 동시에 아빠와의 긴 긴 이별을 준비해야만 하는 막내딸이었다. 생에 가장 어둡고 길었던 터널, 내가 믿는 신을 가장 많이 그리고 간절히 찾던 날들이었다.


 이제 막 겨울의 문턱을 지나는 날씨답지 않게 유난히 바람이 따사로웠던 3월의 첫날, 그러니까 정확히 나의 결혼식이 있기 8일 전 아빠가 우리 곁을 떠났다. 술을 좋아하시던 아빠는 58세에 간경화 판정을 받으셨고, 병세는 일 년 사이 급속도로 악화되어 그다음 해 봄에 끝내 임종을 맞이하셨다. 그 사이 우리의 결혼식 이야기가 오간 건 아빠의 병세가 더 악화되기 전에 식을 올리자는 양가의 의견을 존중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운명은 야속했다.




 한 평생에 가장 큰 경사라고 하는 결혼식과 죽을 만큼 미워했던 아빠의 임종을 동시에 기다리면서 나는 수없이 많은 날들을 방에서 울었다. 여자 인생에 가장 빛나는 단 하루. 누구보다 예쁘고 행복한 예비신부가 되고 싶었다가, 아빠와의 이별에만 온전히 집중하고 싶은 막내딸이었다. 달콤한 신혼을 꿈꾸며 행복에 살기만도 모자란 시간이었고 언제 거둘지 모르는 아빠의 숨소리를 들으며 밤마다 신께 빌기만도 벅찬 시간이었다. 정해놓은 결혼식 날이 다가올수록 아빠의 병세도 함께 악화되어 갔다. 최악의 경우 결혼식을 올리기 직전 혹은 직후로, 그것도 아니라면 결혼식 당일 아빠가 돌아가실까 무서웠다. 두려움과 스트레스로 울며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다.


 무자비한 현실 앞에서 나는 줄곧 두 상황 중 한 가지를 선택해 원망했다. 그것은 확실한 이기심이었다. 내 인생에 다신 오지 않을 사건에 대한 집착 같은 것이었다. 차라리 운명을 원망하면 나았을 것을, 나는 칠흑 같은 터널을 정처 없이 걷는 동안 아빠를 원망했다가 결혼을 원망했다가 했다. 그 어떤 순간보다 지옥 같았던 건 전자였다. 잔인한 내 이기심의 날 것을 눈치챌 때마다 부끄러워 낯을 들 수 없었다. 보통의 예비신부처럼 예쁜 드레스와 예쁜 반지를 고르며 그저 행복하고 싶었던 것뿐인데, 나를 일순간에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뜨리는 아빠가 미웠다. 그러다가도 차가운 중환자실 침대 위에서 허공만 응시하는 아빠의 야윈 얼굴을 볼 때면 신께 빌어야 했다. 아직 내게 시간이 필요하다고.


 누군가의 임종을 아주 가까이서 지켜본 것은 처음이었고, 그 사람이 사랑하는 아빠였기에 내 세상은 쉽게 암흑이 됐다. 들이마시고 내쉬기를 위태로이 반복하던 숨이 먼저 끊어졌고 느리게 뛰던 심장이 눈 앞에서 멈췄다. 폐와 심장이 운동을 멈추는 동안에도 두 눈을 감은 얼굴은 평온했다. 뼈 밖에 남지 않은 연약한 몸뚱이를 끌어안고 아빠를 외쳐 부를 때에도 몸은 따뜻했다. 야속했다. 감은 눈은 다시 뜨일 리 없고 이 살은 다시 만질 수가 없어서 그랬다. 언젠가 어린 나를 한 가득 안았을 아빠의 늙은 손을 잡았다. 쉽게 놓지 못했다. 아직 죽지 않은 그 살이, 온도가 가슴에 남아 오래도록 살아 움직였다.


 죽음은 철저하게 신의 영역이었으므로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나는 두려웠다. 죽을 만큼 미워해서 더 아팠다. 무엇에 그렇게 사무쳐 미웠을까. 내 인생에 가장 큰 오점이라 여겼던 아빠의 죽음 앞에서 나는 결국 사랑한다는 말 밖에 할 수가 없는 무력한 인간이었다. 원망하고 증오하던 시커먼 응어리는 쓸모없는 쓰레기가 되었다. 내게 남은 건 더 사랑하지 못해 남은 후회뿐이었다.




 그리고 일주일 뒤에 올린 결혼식에서 나는 울지 않았다. 시아버지의 손을 잡고 버진로드를 걷는 동안 아빠를 생각했다. 어느 때 보다 활짝 웃었다.


 아빠가 돌아가시기 이틀 전 날 가슴 깊이 담아두었던 묵은 말들을 꺼냈다. 축복의 시간이었다. 아빠가 그렇게 좋아하던 막걸리 맨날 못 먹게 해서 미안하다고, 컬러링 바꿔달라고 할 때마다 귀찮아하고 짜증내서 미안하다고, 외롭게 아빠를 자주 혼자 둬서 미안하다고, 아빠 딸로 살아서 나는 진정 행복했다고, 아빠가 내 아빠라서 감사하다고, 아빠가 혹시라도 많이 아픈데 참고있는 거라면 미안해하지 말고 마음 편하게 가시라고, 원망하지 않을 테니 그렇게 하시라고, 살아생전 막내 딸 결혼하기 전까지 살아야 한다고 입버릇 처럼 말씀하시던 아빠. 그 손 잡고 예식장에 같이 들어가지 못해도 너무 슬퍼 마시라고, 행복한 하늘나라에서 가장 예쁜 신부 고은이 보고 있다 믿겠노라고. 아빠가 함께 하고 있다 믿겠노라고. 그리고 아빠는 거짓말처럼 눈물을 떨궜다. 내 말을 정확히 듣고 있다는 확신은 내게 위로였고 희망이었다. 그래서 나는 결혼식 날  울지 않았다. 어느 때 보다 활짝 웃었다.






아주 오랜 시간 꺼내지 못했던 이 마음을 한 줄 한 줄 써 내려가는 동안 자주 울다가 쓰다가 했습니다. 평소 저의 글을 좋아하셨던 아빠가 하늘나라에서 이 글을 본다면 거기서도 자랑스러워하시겠지요. 이제야 보여드려 미안합니다. 아빠 막내딸이 많이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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