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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피디 Oct 22. 2019

우아한 사람

'나는 당신처럼 살지 않을거야'


 나이가 든다는 것은 좋아하는 것이 하나 더 늘어나는 일이라던데 나에게 나이가 드는 일이란, '어떻게 늙고 싶다'는 구체적인 생의 지표가 하나 늘어나는 일과 같다. 그런 이유로 일기장에 하나둘씩 채워간 문장은 '대화할 때만큼은 진정성이 있는 사람이 되기' , '타인과 나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여유 갖기' 등의 능동적인 다짐이 건데 그중에는 가끔 '그렇게는 살지 말아야지' 하는 다소 소극적인 문장 또한 있었다.


 평화를 깨뜨리는 어떤 불편한 장면들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작지만 가장 확실한 방어는 '나는 그렇게 살지 않을 거야'라는 비굴한 다짐이었다. 상대적 약자이기에 당할 수밖에 없었던 부당함이나 인격적으로 용납하고 싶지 않은 무례한 단언들 앞에서 특히 그랬다. 그것들과 적극적으로 싸워낼 깜냥 따위는 내게 없었으므로 이 선언이 어쩌면 정신승리의 일종 일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 작은 외침이 분노의 구렁텅이에서 나를 구원해 줄 것이라고 믿기에 나는 끊임없이 외치고 또 외쳤다.


 한없이 가벼운 말들로 나에 대해 함부로 평가하고 재단하는 사람, 갑질 하는 상사의 노골적인 희롱, 아니면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찬 출근길 지하철에서 사나운 말투로 폭언을 쏟아붓는 노인의 무례함 같은 것들을 보면서 불쾌하고 떨리는 마음을 어디에 풀 지 몰라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렇게 늙지 말아야지. 우아하게 늙어야지 하고 작지만 가장 확실한 자기 방어를 한다.


 나이가 든다고 마일리지 쌓이듯이 교양이 저절로 쌓이는 게 아니라는 것을 나는 살아낼수록 실감한다. 추하게 늙지 않으려면 누추한 나의 내면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자꾸만 밖으로 꺼내어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을 안다. 비록 껍데기는 빈약하게 늙어갈지라도 진정의 뼈대만은 튼튼한 사람. 그렇게 우아한 사람으로 늙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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