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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피디 Nov 08. 2019

후회가 늘어난다는 것은

바람이 차가워지면 나는 그 겨울을 생각한다.

 맞벌이였던 부모님 밑에서 자라온 나는 어린 시절 내내 외벌이 부모를 둔 친구들이 부러웠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면 항상 맛있는 간식을 손수 만들어주시는 엄마가 계신 것도 부럽고, 불 꺼진 집에 혼자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것도 부러웠다. 초등학교를 다닐 적에 짝꿍 집을 내 집 드나들듯이 들락거린 것도 그런 이유였다. 하교 후에는 책가방을 집에 둘 새도 없이 곧장 친구네 집으로 갔다가 부모님이 집에 돌아오실 무렵이 다 되어서야 어둑해진 하늘을 보며 집으로 돌아오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주 기쁜 소식이 하나 들려왔다. 가족들의 상의 끝에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우리 집에 모시기로 했다는 것이다. 어린 나는 부모님의 사정 따위엔 관심이 없었다. 그저 학교에서 돌아온 나를 맞이해줄 어떤 존재가 집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냥 설레고 기뻤다. 짧은 다리로 펄쩍펄쩍 뛰며 할머니 할아버지 노래를 불렀다.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평화로운 시간들을 맛보았다. 할아버지는 집 근처의 텃밭을 돌보시느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하셨지만, 할머니는 내가 학교에 가 있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온종일 함께였다.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이면 붕어빵을 두 개씩 든든히 나눠먹을 수 있고, 혼자 가기 심심한 집 앞 구멍가게도 할머니와 함께라면 가는 길이 즐거웠다. 온종일 집에서 화투장으로 운세를 때고 계시는 할머니 무릎에 머리를 대고 누워 달콤한 낮잠에 빠져들기도 했다. TV에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나오기라도 하면 이름부터 나이, 생일까지 할머니 앞에서 줄줄이 외워댔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허허 웃으시며 못 알아듣는 말들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장단을 맞춰주셨던 것 같다. 그 시절 할머니는 하나뿐인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그러나 모든 순간이 즐거운 것만은 아니었다. 종종 예측할 수 없는 할머니의 행동에 당황한 적도 있었으니 말이다. 다음날 소풍 때 가져가려고 식탁 위에 미리 꺼내놓은 하얀색 벙거지 모자를 세탁기에 넣어버리신 바람에 소풍 내내 인상을 찌푸린 채 다녔던 기억이나, 몽실몽실한 털이 유난히 예뻤던 아끼는 강아지 인형을 빨랫비누로 어찌나 깨끗이 빠셨는지 털이 모두 망가져 쓰레기통에 버렸던 기억들이 그렇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그 시절 엄마는 내가 하루에 세 장씩 꼬박꼬박 수학 학습지를 풀면 보상으로 아이스크림을 허락해 주셨다. 아이스크림은 하루에 꼭 하나씩만 먹을 수 있었으므로 아이스크림을 고를 때는 어느 때보다 신중을 가해야 했다. 그날도 혼신의 힘을 다해 수학 문제를 풀고 위풍당당한 걸음으로 슈퍼에 갔다. 그날 내가 고른 아이스크림은 '국화빵'이라는 이름의 아이스크림이었다. 그리고 아이스크림을 냉동실에 넣어둔 채 깜빡 잠이 들고야 말았다. 사건의 서막이 시작된 줄도 모르고 말이다. 


 냉동실에 넣어둔 국화빵 아이스크림이 자꾸 떠올라 선생님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던 다음날,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리자마자 집으로 달려갔다. 신발은 신발장에 내동댕이치고 가방은 거실 한가운데 벗어던진 채 냉동실 문을 열었다. 그러나 기대했던 국화빵의 모습이 오간데 없었다. 곧장 방에 계신 할머니에게 달려가 물었다. 할머니는 기억을 더듬으시는가 싶더니 마침내 생각이 났다는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응~ 국화빵 그거 따시게 먹으라고 밥통에 눠뒀다"


 순간 나는 얼음이 되었다. 국화빵 아이스크림을 진짜 국화빵이라고 생각한 할머니가 아이스크림을 밥통에 넣어뒀다는 것이다. 허겁지겁 밥통을 열어보니 내 국화빵 아이스크림은 형태 없이 처참하게 망가져 있었다. 나는 서러운 마음에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아이스크림을 밥통에 넣어버리면 어떡하냐고 어린 나는 할머니에게 벅벅 화를 냈다. 상황 파악이 뒤늦게 되신 듯한 할머니는 멋쩍게 웃어 보이시고는 국화빵 사러 슈퍼에 가자며 나를 달래셨다. 이미 마음이 상해버린 나는 그대로 방으로 들어와 한참 동안이나 씩씩거리며 눈가가 따가워지도록 울었다. 


 지금도 그 아이스크림을 볼 때면 나는 우리 할머니 생각이 난다. 바람이 차가운 겨울이 오는 때면 그 겨울이 생각난다. 피식 웃음이 나다가도 금방 코끝이 찡해진다. 손녀가 따뜻하게 녹은 국화빵을 먹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을 텐데. 더없이 애틋한 부모의 마음이었을 텐데. 철없는 나는 할머니 마음도 헤아릴 줄 모르고 화를 냈다. 그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잊을만하면 떠올라 두고두고 후회스럽다. 이런 마음은 왜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는 숙명을 가진 건지 꼭 못난 그림자를 남긴다. 


 이제는 볼 수 없는 할머니의 얼굴을 가만히 떠올려 볼 때마다, 그 기억들에게도 어쩌면 시간이 필요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발효되어 깊어지는 시간이 존재했기에 지금에라도 할머니의 애틋한 심정을 헤아릴 수 있게 되었으니까. 후회가 늘어난다는 것은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말과도 같으니까. 내가 잘 자라고 있다는 반증이 되어주기도 하니까. 그 부끄러운 마음들을 더 이상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 불쑥불쑥 튀어나올 때마다 기꺼이 보듬고 아껴주기로 했다.


 후회하는 마음이 쌓일수록 나는 우리 할머니를 생각한다. 꿈에라도 할머니가 다시 나타나면 좋겠다. 국화빵 따뜻하게 데워줘서 고맙다고,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국화빵이라고 얘기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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