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피디 Oct 02. 2019

친정 엄마

당신은 나의 황혼을 내다보는 거울이다.


결혼식을 올린 지 두 달가량 되었을 무렵이었다. 모처럼 엄마를 신혼집으로 초대했다. 신혼집은 서울 북쪽 끝에 위치했고 경기도 안산에 있는 친정집에서 신혼집까지는 자가용으로 빠르면 1시간 반, 지하철로는 두 시간을 꼬박 달려야 하는 거리였다. 평소 자가용 운전이 훨씬 편한 엄마였지만, 그날따라 지하철을 타고 싶다며 고집을 부리셨다. 멀미도 잦고 대중교통이라고는 몇 번 타본 적도 없는 엄마가 경기도에서 서울 끝까지 지하철을 타고 온다는 사실이 불편하고 걱정되어 몇 번을 만류했지만 엄마의 고집을 끝내 꺾지 못했다. 지하철이 익숙한 젊은이들이야 아무리 초행길이라 해도 어렵지 않게 이정표를 보고 척척 따라갈 테지만 그렇지 않은 엄마가 혼자 이곳까지 온다고 생각하니 걱정이 앞섰다. 두 시간 동안 좌석에 앉지 못하고 다리 아프게 내내 서서 오면 어쩌나, 혹여나 환승을 잘못해서 엉뚱한 곳에서 내리기라도 하면 어쩌나, 역설적이게도 물가에 아이를 내놓은 부모의 마음이 들어 영 불편했다. 그럼에도 엄마가 굳이 지하철을 타고 싶은 이유는 오랜만에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이동하는 것이 꼭 여행을 가는 기분 때문이라고 했다. 진담인지 농담인지는 모르겠으나 엄마의 핑계를 믿어주기로 했다. 집을 나선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한껏 높아진 톤이었다.


"가방에 건빵이랑 박카스 넣어왔다~ 하하하 진짜 여행 가는 것 같네"


소풍 가는 어린아이처럼 설레어하는 엄마를 보니 괜스레 쓸쓸해지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같은 지붕 아래 더 이상 살을 부대끼며 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막내딸을 보는 일이 더 이상 익숙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소풍을 가는 일처럼 설레고 기다려지는 일이 되어버린 것을 우리 엄마는 어떻게 납득하고 있을까. 정말 소풍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설레는 마음뿐일까. 아니면 나처럼 조금은 허전했을까. 마음 한편에 부는 쓸쓸한 바람을 느끼며 시시 때때로 변하는 지하철 밖 풍경을 바라봤을 것이다. 툭하면 눈시울이 붉어지기 일쑤인 마음 여린 우리 엄마, 건빵 하나 박카스 한 모금 마실 때마다 울음을 삼켰을지 모를 일이다.


"금정역에서 환승할 때는 역 밖으로 나가지 말고 바로 건너편 지하철을 타야 해! 그리고 인천행 열차는 절대로 타지 말고 무조건 광운대행이랑 창동행 열차를 타 엄마. 아 그리고 청량리행은 타면 안 돼, 중간에서 멈춰버리면 더 헷갈릴 거야"


"뭐 그렇게 복잡해?"


"그리게 헷갈리니까 그냥 오던 대로 운전해서 오라니까"


"그냥 서울 가는 열차 하나 타면 되는 줄 알았지"


"아무튼 엄마, 꼭 광운대나 창동행 열차 타야 돼!"


"알겠어 걱정 말어. 뭐 타야 되는지 문자로 보내봐"


방금 전까지 열차에 대해서 실컷 설명해줬건만 문자로 남겨놓으라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면 무슨 수가 있으랴.

 

[타면 안 되는 열차 ; 인천행, 청량리행

타야 하는  열차 ; 소요산행, 창동행, 광운대행

금정역에서 환승할 때는 역 밖으로 나가지 말고 건너편 지하철을 바로 탈 것. ]


보기 좋게 적어 보냈으니 헷갈리지 않겠지. 통화하느라 중단됐던 청소기를 다시 돌리고 엄마를 맞이할 준비를 시작했다. 창문도 열고 음악도 틀고, 기분 좋은 사물의 재배치들이 이어졌다.


엄마가 도착할 시간이 다 되어 갈 때쯤 나는 집을 나섰다. 지하철 역에서 우리 집까지는 걸어서 5분도 채 안 되는 아주 가까운 거리였기에 지금쯤 나가서 짠! 하고 놀라게 해줘야겠다는 게 내 계획이었다. 육교만 건너면 바로 지하철 역이니 이 정도 시간이면 딱 맞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고 했나. 내가 육교의 반이나 넘어갔을 때도 엄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지금쯤이면 엄마가 반대편에서 걸어오고도 남아야 하는 게 맞는데 뭔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다.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엄마 어디야?"

"아니~ 육교를 건너래서 건넜는데 여기가 어디냐~"


우리 엄마, 역시나 실망시키지 않고 기어코 길을 잃고야 말았다. 다행히도 큰 문제는 아니었다. 내가 알려준 대로 환승도 잘하고 열차도 제대로 탔지만, 뜻밖의 복병은 열차에서 내려서 우리 집까지 오는 과정에 있었던 것. 걸으면 5분도 안 되는 거리. 육교 하나 건너고 가던 길로 쭉 직진만 하면 되는 이토록 단순한 길이 엄마에게 복잡하고 헷갈리는 일이 될 거라고는 짐작도 하지 못했다. 그러게 내 말 듣지 굳이 고집을 부렸냐는 말이 턱끝까지 차올랐지만 나보다 더 마음이 불편하고 당황스러울 엄마를 생각해 애써 웃었다. 민망하셨는지 '깔깔깔' 하는 천연덕스러운 엄마의 웃음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새어 나왔다. 우리 엄마, 부쩍 나이가 든다.


내가 아주 어릴 적 우리 집에 홀로 찾아오셨던 외할머니가 생각나는 것은 우리 엄마에게서 빛바랜 그녀의 모습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이미 오래된 기억이라 그 모습은 어렴풋하고도 희미하지만 깊게 파인 세월의 흔적마다 땀방울이 맺혔고, 눈시울이 자주 붉어지시는 외할머니를 우리 엄마는 많이 닮아 있었다. 가녀린 외할머니의 어깨를 끌어안을 때마다 엄마는 당신의 황혼이 꼭 그런 모양일 것이라고 짐작은 했을까. 가끔 엄마의 입에서 외할머니의 이야기가 나올 때면 나는 우리 집에 홀로 찾아오셨던 당신의 어머니를 생각한다. 자주 깜빡깜빡하고, 방금 둔 것도 금세 잊어버리는 엄마를 보면서 그 시절 당신의 어머니를 나는 생각한다. 


시간은 예외 없이 흐르고 세대는 변한다. 낡은 것들은 소멸하고 새 것들은 탄생한다. 제 아무리 싱싱하고 젊은 어떤 것이라 할지라도 바람이 불고 손 때가 묻고 자꾸만 부딪혀 여기저기 깎이고 상처가 나다 보면 언젠가는 그것 또한 사라지기 마련이다. 누군가가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죽어간다고 말했다. 내 삶이 그렇고 엄마의 삶이 그렇다. 우리네 인생인 것이다. 다만 낡고 오래되어 약해진 그것들은 나의 황혼을 짐작해 보는 거울이리라. 나중에 우리 부부에게 작은 아이가 태어난다면 이 마음을 잘 기억해뒀다가 꼭 말해주고 싶다. 엄마도 너와 같이 어린 시절이 있었고 너 또한 엄마가 될 것이라고. 너에게 지금 엄마가 있는 것처럼 엄마에게도 엄마가 있었다고.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고 낡고 사라지겠지만, 지금 엄마의 모습을 꼭 기억해 달라고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