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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피디 Oct 21. 2019

나는 새벽 2시까지 빨래 개는 새댁입니다.

 '희생의 기쁨'이라는 역설

 기상시간이 아침 6시인데 새벽 2시까지 집안일을 했다. 늘 뒷전으로 밀려났던 빨랫거리들은 엉망진창으로 뒤엉킨 채 일주일 동안이나 빨래통에 처박혀있었다. 방바닥에는 기다란 머리카락 뭉치가 나뒹굴다가 틈만 나면 자기네들끼리 무리를 지었고 걸을 때마다 그것들은 양말에 붙어 성가셨다. 부엌 상황도 매한가지였다. 싱크대에 쌓인 그릇들은 이미 메마른 지 오래여서 그릇에 붙은 밥톨이라도 하나 떼내려고 하면 몇 번이나 수세미질을 힘주어해야 했다. 일 년에 두 번 찾아오는 직장의 성수기가 맞벌이인 우리 부부에게 동시에 찾아온 탓이었다. 이럴 때는 날을 잡고 온 집안을 모조리 뒤집어 청소를 해야 하는데 하필 오늘이 그런 날이다.


 청소의 마지막 단계는 늘 빨래 개기였다. 그것은 꼭 맛있는 반찬을 제일 마지막에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어린날의 습관과 같은 것이었다. 빨래 개기는 내가 좋아하는 집안일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잘 건조된 빨래들을 소파 위에 우르르 쏟아내고 손에 잡히는 큰 빨랫감부터 차곡차곡 개킨다. 자주 입는 간편한 옷들은 서랍 맨 첫 번째 칸에, 속옷과 양말은 두 번째 칸에, 겉 옷은 옷걸이에 걸어 색깔, 소재별로 분리 해 걸어놓는다. 뒤엉킨 빨래 더미 속에서 하나둘씩 먼저 갤 옷을 고르고 정성스러운 손길로 네모지게 각 맞춰 접어낸다. 그러다 보면 내 마음의 근심들도 종류별로 색깔별로 착착 정리가 되는 기분이다. 그중에서도 욕실 수납장에 새하얀 수건들을 든든히 채워 넣는 것을 특히 좋아한다.


 욕실에 있는 수납장은 그 문을 열 때마다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그 안에 수건이 있거나 없거나 둘 중 하나일 텐데, 수건이 한 장이라도 없으면 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부여잡고 거실을 가로질러 베란다까지 가야 하는 대참사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샤워하기 전에는 꼭 수납장을 먼저 열어 수건이 있는지 확인하는데, 그걸 깜빡하기라도 하면 그 긴장감은 정말이지 말도 아니다. 그래서인지 새하얀 수건이 수납장 가득 채워져 있는 것을 볼 때마다 넉넉한 마음이 생겨난다.


 새벽 두 시에 소파에 앉아 수건을 개킨다. 한 장 두 장 내 옆 자리에 수건이 쌓인다. 수건의 상표는 꼭 같은 방향으로 보이도록 통일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욕실 수납장에 넣을 때는 수건의 접힌 부분이 지저분하게 보이지 않도록 꼭 둥글게 말린 부분을 앞쪽으로 돌려 넣는다. 그리고 나는 수납장에 새하얀 수건이 켜켜이 채워질 때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뽀송한 수건을 꺼내는 남편을 생각한다.




 그날도 보통날과 다름없이 잘 갠 수건을 수납장에 채워놨다. 저녁에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남편이 씻으러 욕실에 들어가자마자 수납장 문을 열더니 한껏 신이 난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가 수건을 채워놨네!"


 내가 수건을 채워 넣은 건 맞지만 그렇게 큰 소리로 아는 척을 해주니 남편에게 고마웠다. 항상 해오던 일인 만큼 잊기도 쉬웠을 텐데, 고맙게도 남편은 그런 것에 예민했다. 누군가가 인정해 주기를 바라고 한 일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사사로운 일에 뜻밖의 칭찬을 들으니 내 입가에 금세 미소가 씰룩씰룩 피어났다. 그리고 그런 말들은 나를 더욱 능동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 능동성의 시작은 기쁨이란 감정에서 비롯되었고, 그 기쁨의 마음을 유심히 드려다 볼 때 나는 알아차렸다. 내 마음을 이토록 넉넉하게 만드는 것은 내가 집안일을 잘했다는 (나로부터 시작된) 어떤 만족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남편의 행복을 가늠하는 데에서 온다는 것을 말이다. 당신의 기쁨이 곧 나의 기쁨이라는 것을 말이다. 보다 본질적으로 당신이 행복할 때 내가 더 기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결혼을 하고 모든 것이 내 맘 같지 않았던 숱한 순간들을 지나면서 나는 생각했다. 사랑의 본질은 어쩌면 '희생'이란 단어로 귀결될 수도 있겠다고, 서로에게 희생할 준비가 되었을 때 비로소 결혼생활이 진정한 행복의 차원으로 넘어설 수도 있겠다고 말이다. 상대방에게 기대하고 바라는 순간 실망의 여지가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랑의 요령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준 만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어쩌면 아주 당연하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랑이 꼭 그래야 한다면 나는 조금 슬플 것 같다. 당신의 기쁨을 더 큰 행복이라 여기는 마음, 그렇게 믿는 믿음. 그렇게 살겠다는 두 사람의 선언. '희생의 기쁨'이라는 역설을 가능케 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인 것을 믿는다고, 사랑이라는 이름 앞에서 함부로 이기적이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새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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