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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피디 Oct 02. 2019

열아홉 순정

'순정' 이토록 어려운 단어

 자주 가는 꽃집이 있다. 그 꽃집을 알게 된 후부터 나는 이따금씩 그 집에 들러 꽃 대여섯 송이를 사들고 집에 오는 습관이 생겼다. 늘씬하게 뻗은 유리병에 취향 껏 골라온 꽃을 옮겨 담고 책상 위에 올려놓고 나면 그게 그렇게 싱싱하고 예뻐서 자꾸만 미소가 지어진다. 검은색 네모만 가득했던 공간을 싱그럽게 물들이는 에너지가 썩 맘에 들어 자꾸만 꽃집에 들려 꽃을 사는 것이다.


 한 날은 어김없이 그 집에 들러 꽃을 고르는데, 그날따라 꽃을 사는 일이 굉장한 사치처럼 느껴졌다. 분명 이상한 날이었다. 열 흘을 체 못가 시름시름 앓다가 금세 색을 빼앗겨버리고 마는 꽃을 사는 일이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든 탓이었다. 꽃이 주는 감격보다 온갖 숫자로 범벅이 된 이성이 내 머릿속을 지배한 결과였다.


 괜찮다고 믿었는데, 집에 돌아와 자려고 누우니 꽃을 사지 않고 그냥 집에 돌아온 게 그렇게 속상한 거다. 때로는 계산하지 않고 무언갈 맹목적으로 바라는 내 자신이 꽤나 괜찮다고 생각한 것이 전부였는데, 그 순정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것만 같아 이 마음이 자꾸 괴로운 거다. 하나둘씩 꽃의 자리를 내어주다가 결국 앙상한 가지만 남아 초라해질까 봐 두려운 거다. 어떤 가치, 어떤 효율, 어떤 이유와 타협해 갈 곳을 잃은 내 순정은 비좁은 마음 어느 한구석으로 몰려나 있었다. 


 계산하지 않고 무언가를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이란 게 나이가 들수록 노력이 동반된다는 사실은 여김 없이 나를 쓸쓸하게 만들었다. 꽃은 그저 꽃일 뿐이었는데, 그 투명한 마음에 왜 나는 효율이란 물감을 풀어 기어코 탁하게 만들어야 했나. 순정, 우리는 이 단어가 왜 이토록 어려운 걸까.


 순정이란 두 글자를 쫓아가다가 당신이 내게 수줍은 마음을 고백하던 그 해 봄에 도착했다. 우린 열아홉이었다. 개구진 첫인상이 솔직히 썩 맘에 들진 않았는데, 당신이라면 나를 순수하게 좋아해 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던 것 같다. 그 마음이 오래도록 나를 웃게 만들었고 우린 행복했다. 오늘도 나는 꽃집에 간다. 그런 순정 하나쯤은 가지고 살아가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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