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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피디 Oct 01. 2019

12월의 편지

제 곁에 남아주셔서 고맙습니다

 

 해마다 12월이 되면 걸어온 한 해를 돌아보는 습관이 있다. 동그라미, 세모, 엑스라는 기준으로 나름의 평가를 하기도 한다. 올 초 계획했던 회사의 프로젝트는 잘 마무리가 되었는지, 야심 차게 시작했던 새로운 취미생활은 만족하는지, 일주일에 한 권씩 책 읽기는 얼마나 성실하게 수행했는지 등을 살피는 일. 기쁨보단 후회가 많이 남는 시간, 동그라미보다 엑스가 더 많은 종이를 보고 있으면 지나가는 것들을 생각하기 좋다. 12월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지나간 것들을 가만히 곱씹어 볼 때마다 마지막까지 남아 눈에 밟히는 것은 늘 '사람'이었다. 올 해도 나의 인연이 되어준 사람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올 해도 무사히 내 곁에 '남아준'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그 마음은 1년 내내 어디에 숨어있었는지 감쪽같이 모습을 감췄다가 12월만 되면 때가 되었다는 듯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그런 까닭에 나의 연말은 늘 애틋하다. 언젠가 내 삶에 문을 열고 들어 온 사람들을 진정으로 축복하고 싶었던, 어쩌면 가장 진실된 마음이다.


 연말 인사라는 명목으로 써내려 가는 구구절절한 메시지 앞에서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누군가에게는 가벼운 안부인사일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만큼은 그 의미가 남달랐기에 한 사람의 이름 앞에서 오래 머물러야 했다. 그럴싸한 문장들로 상투적이고 따분한 말들을 늘어놓는 것은 가장 피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전화번호 목록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메시지를 보내고 싶은 이름이 있는가 하면, 오지랖은 아닐까 조심스러워지는 이름이 있다. 작년 이맘때만 해도 망설임 없이 메시지를 주고받았지만 올해는 왠지 한번 더 고민하게 되는 이름. 잊혀진 줄 알았지만 어느 순간 아주 가까이 와 닿아 더없이 소중한 이름이 있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는 늘 먼지 쌓인 이름들이 남았다. 케케묵은 이름 석자를 볼 때마다 나를 몹시 씁쓸했다. 노력하지 않으면 잊혀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관계인 것을 알게 된 어느 날의 번뇌이다. 그것은 관계의 숙명 같은 것이어서 간절한 만큼 선명해지고 무심한 만큼 흐릿해진다.


 그래서 12월의 당신과 나는 더욱 각별하다. 지금 우리가 나누는 이 안부는 서로의 세계를 잃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써온 결과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진심을 꾹꾹 눌러 담은 몇 줄의 문장이 더없이 소중한 이유이다. 


 세상에 당연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내 앞에 남은 당신이 그렇고 우리의 관계가 그렇다. 그래서 나는 12월이 되면 짧은 편지를 쓴다. 이 관계를 위해 부단히 애써온 나의 당신들에게, 올 해도 무사히 내 곁에 남아주었기에. 12월 당신이 누구보다 따뜻하기를 나는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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