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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피디 Nov 01. 2019

사랑이 어떻게 변하냐고 묻는다면

"지금도 아내를 사랑하세요?"

그렇게 이상한 질문은 처음이었다.


 대학 졸업 직 후, 방송국 외주 제작사에서 휴먼 다큐멘터리 조연출로 일하던 때였다. 당시 사수였던 PD 선배와 나는 2인 1조로 편성되어 촬영부터 편집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했다. 장르가 휴먼 다큐멘터리인 만큼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을 제작진과 출연자의 관계로 만났다. 그 해 늦은 겨울. 우리가 만난 주인공은 남쪽 어느 작은 시골마을의 우편배달부 아저씨와 그의 아내였다.


 남편은 마을에서 소문난 마당발이었다. 우편함에 우편물만 넣고 그냥 퇴근하는 일이 없었다. 무거운 철문을 기어코 열고 들어가 이웃들의 안녕을 살피고 안부를 물었다. 얼마 전 마당에 말려놓았던 고구마는 맛있게 잘 말라 요긴한 간식거리가 되었는지, 딸 녀석의 출산은 무탈한 지, 조카의 사업은 여전히 별 진전이 없는지, 그가 발길을 내딛는 곳마다 그의 집이 되었고 인심 좋은 이웃들은 금방 가족이 되었다. 혼자가 되어버린 늙은 노인들에게는 또 얼마나 살가운 아들이 되는지. 할머니의 굽은 허리를 살피고 고장 난 문짝이나 나사 빠진 자전거, 자주 깜빡이는 형광등 같은 것들을 살뜰히 챙겼다. 잔소리가 많아도 밉지 않았다. 사람들은 정 많고 넉살 좋은 그를 좋아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달리는 낡은 오토바이는 작은 시골마을을 구석구석 빠짐없이 누볐고 오토바이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꽃이 피어났다. 온통 그의 세상이었다.


 그러나 아내에게만큼은 애정표현이 서툰 남편이었다. 무뚝뚝하기 그지없는 우리네 아버지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동네에선 이보다 더 살갑고 정 많은 사람이 없을지 모르겠지만 아내에겐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부부의 애정표현은 언제나 일방적인 느낌이었다. 쾌활하고 애교 많은 아내는 살갑디 살가운 목소리로 남편에게 '오빠'하고 부르며 장난을 걸곤 했지만 그럴 때마다 남편은 하루 이틀이 아니라는 표정으로 무심하게 대꾸했다. 그러나 그 모습이 밉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프레임 너머로 보는 부부의 모습은 잔잔하고 평온했다. 화려하진 않지만 아주 깊고 단단한 관계의 뿌리가 그들을 지탱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묵직한 '안정감'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노년을 맞이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겨울의 기운이 제법 쇠약해진 어느 날, 우리는 남편분과 함께 볕 좋은 마당으로 나갔다. 아내는 다른 일로 집을 비운 상태였고 우린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언제부터 마을 사람들의 사정을 살피기 시작하셨는지, 그 마음은 어디에서 비롯된 건지, 아내와의 결혼 생활은 만족하는지 등을 물었다. 날카롭고 핵심적인 선배의 질문이 이어졌다. 이 날의 기억이 이토록 선명한 것은 선배의 어떤 물음 앞에서 나는 굉장한 의문에 휩싸여야 했기 때문이다. 선배는 그 날 남편분께 물었다.


"지금도 아내를 사랑하시나요?"


 그다음 대답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선배의 목소리가 내 머릿속을 관통한 뒤부터는 온통 주변에 물음표만 생겨났기 때문이다. 나는 그 질문이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랑해서 결혼한 사람에게 '사랑하냐'고 묻는 인터뷰라니. '가수에게 음악이 좋냐고 묻는 것과 뭐가 다르나요?' 하고 당장이라도 따져 묻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했다. 나는 선배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질문을 하는지 도통 알 길이 없었다.


 서울로 돌아와 우리는 그동안 촬영해 왔던 부부의 모든 순간들을 편집이라는 과정을 거쳐 다듬기 시작했다. 조연출이었던 나는 선배가 컴퓨터 앞에 앉아 편집을 하다가 "이 그림 어때?"라고 물으면 최대한 객관적이고 대중적인 눈으로 보고 대답을 해주어야 했다. 그게 내 역할 중 하나였다. 한참을 모니터 앞에 앉아 편집을 하고 있는데 잠시 기억 속에서 잊혀졌던 문제의 그 인터뷰가 보이기 시작했다. 남편의 목소리를 따라 마우스 커서가 바쁘게 움직였다. 이내 컴퓨터 스피커 너머로 선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도 아내를 사랑하시나요?"


그 날의 마음이 떠올랐다. 심장이 두근두근 떨렸다. 모든 사물들이 내가 말할 차례라고 등을 떠미는 것 같았다.


"인터뷰 A가 나아? B가 나아?"


때마침 선배가 내게 물었다. 나는 이때다 싶어 허겁지겁 대답했다.


"저는 남편한테 아내를 사랑하냐고 묻는 게 조금 이상한 것 같아요."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는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선배가 내게 되물었다.


"아내를 사랑하냐고 묻는 게 이상하다고? 왜?"


"너무 당연한 질문이잖아요. 굳이 물어야 할까요?"


"당연하다고?"


"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선배는 스물세 살의 순수한 영혼 앞에서 잠시 길을 잃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곧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네가 아직 어려서 그래 인마. 결혼하고 애 낳고 몇십 년을 살 부대끼고 살다 보면 사람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어. 볼 꼴 못 볼 꼴 죄다 보고 사는데 그게 되겠냐.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누구나 식게 되어있는 거야. 어려서 모르겠지만 사실은 그게 현실이야."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한참 동안 그 말을 이해하려 노력했으나 나는 자꾸만 헛웃음이 났다. 더 이상 배우자를 사랑한다고 말할 자신이 없는 못난 어른들의 구차한 핑계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스물셋의 나는 그 마음을 변심이라 믿었다. 멋없고 비굴한 변명을 일반화시키는 것 같은 선배의 태도에 화도 났었다. 함부로 다른 이들의 존귀한 사랑까지 의리로 치부해 버리는 것 같아서였다. 더 이상 선배 앞에서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아직 어려서 그렇다는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는데. 내가 선배보다 덜 살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테니 재차 되묻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었다. 다만 혼자 대뇌일 뿐이었다.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닐 거라고.


 시간이 지나고 나는 스물셋 보다는 조금 더 큰 어른이 되었지만, 그 날 선배의 말은 신발 속 모레알처럼 자꾸만 켕겨 거슬렸다. 잊을만하면 떠올라 걸을 때마다 불편했다. 그리고 그 불편한 생각들은 세월의 찌꺼기를 먹고 자라면서 점점 내 안에서 덩치를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불안했다. 어른들의 핑계일 뿐이라고 믿었는데, 그 시절 선배의 말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이해가 될 것 같은 순간들이 올 때마다 나는 두려웠다. 오래도록 순수하고팠던 내 마음이 세월의 모진 이면을 이기지 못하고 자꾸만 깎여 나가는 것 같았다. 단 한 사람과 10년 동안 연애를 하면서 그랬다. 묵직한 권태로움이 찾아올 때마다 그랬다.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사랑이란 감정은 누구나 식게 되어있다'는 선배의 말이 간신히 이해가 될 무렵 나는 가까스로 어른이 되었다고 여기기에 이르렀다.




"엄마는 아빠를 사랑했어?"


아빠가 돌아가시고 엄마에게 물은 적이 있다. 어쩌면 스물셋의 내가 줄곧 동경하던 사랑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기대했는지 모르겠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사랑은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난생처음 들어보는 질문이라는 듯 한참을 웃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기쁘고 행복한 감정만이 사랑이라고 한다면 아빠를 사랑했다고 말할 수 없겠지. 그런데 사랑은 다양한 모양이었던 것 같아."


 엄마의 대답은 짧았다. 그러나 나는 알 것 같았다. 한 평생을 함께 걸었던 사람. 그 사람을 사랑했냐고 묻는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그것으로 내게 충분했다. 내가 멋대로 정의 내렸던 지난 사랑을 생각했다. 그 사랑이 혹시 기쁘고 설레고 행복한 감정만 가득 담긴 핑크빛 하트는 아니었는지 생각했다. 돌이켜보니 그토록 일방적인 잣대로 사랑을 재고 따지다가 상처 받는 쪽은 언제나 나였다. 설레고 행복한 감정만이 사랑이라 믿었으니 그럴만했다. 그래서 어린 나는 쉽게 사랑을 의심했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까지나 내가 정한 사랑의 정의일 뿐, 핑크빛 하트가 아니라고 해서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었다. 어여쁜 분홍색을 머금던 하트 모양의 사랑은 세월이 흐르면서 동그라미가 되었다가 세모가 되기도 했다. 오래된 연인에게 느끼는 아주 단단하고 묵직한 안정감, 편안함, 익숙함 같은 것들이 그런 모양을 하고 있었다. 더 이상 설레지 않는 마음들이 그런 모양을 하고 있었다. 너무도 익숙해진 탓에 늘 옆에 있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하는 둔한 마음들이 그런 모양을 하고 있었다. 


 보잘것없이 누추하고 소박해도 그것이 사랑의 또 다른 모양이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그 해 겨울, 카메라 프레임 너머로 본 부부의 소박함이 사랑의 또 다른 모양이었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어여쁜 핑크빛을 머금지 않은 마음들에게도, 하트 모양이 아닌 마음들에게도 나는 사랑이란 이름을 기꺼이 내어주기로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jA7dDaoR-w

휴먼 다큐멘터리 봄날 8회 <100점 집배원 내 남편을 소개합니다>


오래된 기억을 더듬어 그 당시 방영되었던 방송 영상을 찾았습니다. 행복을 나르는 편지 아재와 애교만점 복례 씨의 이야기.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을 알게 해 준 당신들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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