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을 쓰는 이유
J와의 인연은 어느 평범한 날 갑작스럽게 찾아온 메시지 한 통으로부터 시작됐다.
"고은아, J가 너랑 한번 만나보고 싶대."
평소 가깝게 지내는 친구로부터 온 문자메시지는 조금 당혹스러웠다. J는 내가 단 한 번도 실제로 본 적이 없는 친구의 친구였기 때문이다. 그나마 친구의 SNS에 가끔 태그 되는 모습을 본 것이 내가 알고 있는 J의 전부였는데 전혀 접점이 없는 J의 제안이 조금은 의문스러웠다. 기억을 더듬어봐도 J와의 연결고리는 찾을 수 없었고, 몰래 그녀의 SNS에 들어가 이것저것 둘러봐도 딱히 그럴싸한 추측은 떠오르지 않았다. 반가운 제안일 법도 했는데 나는 의문과 걱정스러운 마음뿐이었다.
오래 지나지 않아 우리는 만났다. 일방적으로 '만나보고 싶다'는 요청을 받은 나로서는 J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과 걱정을 떨칠 수 없었다. 혹시나 SNS상에 편집된 나의 모습만 보고 어떤 면모를 기대하고 있는 건 아닌지 괜한 우려심 마저 들었다. 묘한 기분이었다. 그게 나의 전부가 아니었음에도 기대에 부응해야 할 것만 같았다. 내 모습을 꽁꽁 숨긴 채 허리를 곧게 세웠다.
우리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더듬더듬 느리게 공통점을 찾아갔다. 이야기가 조금씩 무르익어갈 무렵 J는 그제서야 이 자리를 만들게 된 이유에 대해서 입을 열었다. J의 말은 그랬다. 우연히 타고 들어간 나의 SNS에서 글을 읽게 되었는데 글이 마음에 들어 그 뒤로 줄곧 염탐을 해왔다고. 글을 읽으면서 너는 분명 좋은 사람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래서 친구가 되고 싶었다고. 담담히 말을 이어나가는 J의 얼굴을 보면서 숱한 고민 속에 혼자가 되길 자처하며 글을 써 내려가던 외로운 날들이 스쳤다. 그리고 '친구가 되고 싶다'는 J의 말에 한참을 머물렀다.
그 말은 내게 너무 오래되어 색이 바랜 문장이었다. 학창 시절 나는 친구를 찾기보단 홀로 깊어지는 방법을 택하던 아이였다. 수더분하고 장단 잘 맞추는 성격에 항상 주변에 친구들이 많은 것 같아 보였지만 정작 마음은 달랐다. 그 관계의 깊이는 얕고도 얕아 사실 나는 허전했다. 진정한 마음의 문은 쉽게 열지 못하는 아이였다. 그런 성향은 성인이 되어도 크게 변하지 않았고 누구를 만나도 농도 짙은 대화를 나누기까지의 시간이 더뎠다. 유약한 이 마음은 줄곧 인간관계의 한계에 부딪히곤 했었다. 남들은 다 서로 특별해 보이는데 나만 멀리 있는 것 같았다. 그 마음이 나를 주눅 들게 하고 때론 쉽게 포기하게도 만들었다. 더욱 홀로 깊어져만 갔다.
J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친구가 되고 싶다'는 J의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어떤 관계 앞에서 나는 이토록 담백하고 적극적인 적이 있었나 생각했다.
글을 쓰면서 나는 늘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좋은 사람이 좋은 글을 쓴다고 믿었으니까. 그러나 정작 그 마음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나는 몰랐다. 쉽게 포기하고 놓쳐버린 지나간 관계들을 향한 갈망이었다는 것을, 난 결국 홀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었음을, 그것 또한 어떤 관계를 전제하는 것이었음을 나는 몰랐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수도 없이 입 밖으로 고백하면서도 정작 챙기지 못했던 내 곁에 남은 인연들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부끄러웠다. J의 제안 앞에서 더듬거리고 고민하던 시간도 그랬다. 수많은 이름들이 스쳐 지나갔다.
기꺼이 먼저 손을 내밀었던 J의 담백한 태도가 오랫동안 내 가슴을 울렸다. 이 글을 빌어 J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J와 처음 만난 날 보내온 메시지. '글에 네가 담겨있다'는 말은 언제 들어도 가슴 벅찬 말인것 같다.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 좋은 글을 쓰고싶다. 끊임없이 쓰는 삶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