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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피디 Nov 15. 2019

누구에게나 잊기 쉬운 마음이 있다

프롤로그

 이제 막 세상 밖으로 첫발을 내디딘 스무 살 무렵의 나는 어떻게 걸음마를 떼야하는지 몰라 자주 넘어졌다. 걸을 수 있을 만큼 자랐을 때는 길을 몰라 망설인 시간이 길었다. 가던 길을 또 지나가기도 했고 빙 돌아가기도 했다. 지도 없는 인생길을 걷는 것은 어떤 수학 문제보다 어려운 숙제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세상이 하라는 대로 무작정 따랐다. 이름 모를 이가 세워놓은 이정표를 따라 걸었다. 세상은 '착하면 호구가 된다'는 말을 유행처럼 내뱉었고 '나'만 행복하면 장땡이라고 했다. 이기적인 것이 똑똑한 것이라고 했으며 누군가에게 희생할 바에야 철저히 혼자가 되는 편이 낫다고 했다. 사랑에도 예외는 없었다. 무조건 관계의 갑이 되어야 한다고, 그래야 내가 편하다고 했다. 뭐가 정답이고 오답 인지도 모르면서 내 몫이 아닌 것들 사이에서 방황하는 실수를 자주 했다.


 그렇게 살아온 20대 끝자락에서 문득 나는 공허했다. 이유가 없이 삶이 아팠고 모든 인간관계가 무의미해지는 순간이 찾아왔다. 사람에, 사랑에, 삶에 권태로운 날들이 많아졌다. 그저 남들과 같이 살아온 것뿐인데 자꾸만 나는 외로웠다. 쇳소리가 나는 날카로운 세상의 방식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영 불편하고 힘들었다. 그 어떤 이성적인 계산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 마음 한가운데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그 구멍 사이로 나는 자꾸만 '잊기 쉬운 마음'들을 흘렸다.


 나의 잊기 쉬운 마음들은 한없이 가벼운 그것을 닮아 자주 허공으로 날아갔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노트를 꺼내 적었다. 출처 모르는 마음들이 단어가 되어 쌓였고, 문장이 되고 글이 되었을 때 나는 비로소 그 마음들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가슴 한 구석에서 외면당해왔던 누추한 마음들을 꺼내어 기꺼이 응시하고 보듬는 시간 동안 삶은 조금 단단해졌다. 우리의 보통날은 거대한 행운이나 타고난 운명 같은 것들로 인해 아름다워지는 것이 아니라 가장 잊기 쉬운 마음을 돌아볼 때 비로소 근사해진다는 것을 믿게 된 것이다.


 더없이 소중하지만 너무도 당연해 잊기 쉬운 마음, 크게 쓸데는 없지만 우리가 결코 잊어선 안 되는 마음. 이 책은 그 작고 연약한 마음들이 허공으로 날아갈 것 같을 때마다 기록해 낸 날들의 흔적이다. 이 기록의 끝에 섰을 때 당신의 보통날이 딱 곱절만큼 근사해 지기를 나는 간절히 바란다. -2019년 11월 이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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