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라는 이름의 무게
대학시절 나는 지방에 있는 학교에 가기 위해 월요일 아침마다 시외버스를 탔다. 버스 정거장은 지하철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는데, 학교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정거장 옆 작은 콘크리트 노상 부스에서 표를 구입해야만 했다. 기껏 해봐야 한두 평 남짓한 낡은 부스 안에는 항상 짙은 밤색의 중절모를 쓴 할아버지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매번 어딘지 모르게 불편해 보이는 표정이었지만 버스표를 사는 게 용무의 전부였던 나는 할아버지의 안녕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여름이면 손바닥보다 조금 큰 선풍기 하나가, 겨울이면 간신히 열을 올리고 있는 먼지 쌓인 전기난로 하나가 할아버지의 안부를 알려주는 듯했다.
한 날도 어김없이 버스표를 사기 위해서 창문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네모로 뚫린 경계를 들여다보았는데, 매번 같은 시간에 같은 표를 사는 나를 기억하기라도 하신 모양인지 내가 표를 달라고 말하기도 전에 먼저 말을 건네 오셨다.
'7시 40분 천안 가는 버스표는 방금 앞사람이 마지막으로 가져갔네 학생. 다음 차는 8시 10분 표야'
영락없는 지각 통보에 쓰린 마음을 진정시키고 나는 말했다.
'네 할아버지, 8시 10분 차 표 주세요'
네모 밖으로 나온 할아버지의 투박한 손에는 한 장의 차표와 노란색 커피맛 사탕 하나가 들려있었다. 그날 이후로 할아버지에게 버스표를 살 때마다 나는 최대한 상냥한 표정으로 차 표를 건네는 할아버지의 손에 반응했다. 몇 번의 눈인사와 몇 개의 커피 맛 사탕이 더 오고 갔지만 숫기 없는 나는 그 이상의 어떤 가벼운 대화도 시도할 수 없었다. 다만 작은 네모 사이로 할아버지의 짙은 밤색의 중절모를 볼 때마다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사람처럼 마음이 오래 푸근했다.
대학을 졸업한 지 5년. 커피맛 사탕에 남았던 온기가 기억 속에서 희미해질 때쯤 나는 할아버지와 다시 마주쳤다. 내가 자주 서 있던 그 버스 정거장 앞에서. 한 평의 네모가 세상의 전부일 것 같았던 할아버지는 퇴근을 준비하는 모양이었는지 꽤 무거워 보이는 투박한 자물쇠로 그곳의 문을 잠그고 계셨다. 이내 나의 시선은 할아버지의 짙은 밤색의 중절모를 지나 굽은 허리에 도달했다. 단 한 번도 할아버지가 네모 밖으로 나온 걸 본 적이 없던 나는 그 모습 앞에서 묘한 배신감에 휩싸여야 했다. 그 낮은 공간 속에서 보낸 세월이 얼마였는지 할아버지의 허리는 굽고 굽어 제대로 된 거동조차 힘들어 보였다. 자물쇠를 잠그는 할아버지의 손은 느렸으며, 가녀린 지팡이에 의존한 팔은 위태로워 보였다. 또 이 추운 날에 걸친 옷이라고는 왜 이렇게 초라한 건지, 나를 둘러싼 모든 상황 앞에서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느린 걸음으로 건너편 버스정거장에서 버스를 타고 이내 사라졌다.
감히 말하건대 세상에 위대하지 않은 인생이 없다. 당신의 굽은 허리는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숱한 인내의 산물이며 아버지라는 이름의 무게였으리라. 그 누가 굽은 허리를 나약하다 치부할 수 있는가. 그 누가 느린 손짓을 쉬이 평가할 수 있겠는가. 한 평 남짓의 네모 안에서의 삶이 아름답다 할 수 있는 것은 단언컨대 세상에 위대하지 않은 인생이 없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의 굽은 허리와 느린 걸음은 이 마음에 남아 오래도록 저릿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