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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피디 Oct 08. 2019

느린 이별

잊혀질 때까지 기다리는 이별

자주 가던 카페가 문을 닫았다.


저희 카페는 사장님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문을 닫습니다.

그동안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cafe de paris 올림-



 빳빳한 종잇장 위에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럽게 눌러쓴 손글씨를 보니 소문만 무성하던 카페 폐업 소식이 확실해졌다. 매일 아침 무거운 몸을 이끌고 기어코 찾아가던 내가 아주 좋아하는 커피집이었다. 세상에 널린 게 커피이고, 널린 게 커피를 파는 가게인데. 좋아하던 그곳에 다신 갈 수 없다는 사실은 나를 꽤나 허전하게 만들었다. 익숙했던 것들과 멀어지는 일은 언제 마주해도 낯선 탓일까.


‘우리 조금만 시간을 갖자’


 우리가 오래도록 함께 나눈 세계를 송두리째 잃어버릴 것 같아 두려운 날이 있었다.


'고은아, 아빠가 위독하시대. 지금 병원으로 올 수 있니?'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더 이상 잡을 수 없다는 사실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절망뿐인 것을 실감하던 때가 있었다.


 우리는 누구나 이별을 하고, 익숙했던 것들을 잃어버리는 일은 언제나 낯설다. 유약한 나는 이별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어서, 때때로 사실을 부정했고 때때로 슬픔을 억눌렀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나 이별을 하고, 익숙했던 것들을 잃어버리는 일은 언제나 낯설다.


 자주 가던 카페 하나가 문을 닫기라도 하면 사람 마음이 이렇게 쓸쓸하다. 선반 위에 걸려있던 액자를 치워도 새하얀 자국을 남기는데 영혼을 나눈 존재와의 이별 앞에 어떻게 의연할 수 있을까. 아니 의연해도 될까. 나는 이제 조금 편하게 이별하기로 했다. 조금은 천천히 잊어가기로 했다. 아니 잊혀질 때까지 기다리는 이별을 하기로 했다.


 쓸쓸한 발걸음을 옮겼다. 자주 가던 카페만큼 라떼가 맛있진 않아도, 어두운 조명과 아늑한 분위기가 꽤나 맘에 드는 곳으로. 이곳에 자주 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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