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행복은 감정의 풍요에서 온다고 했다.
어느 날 문득, 감정을 소모하는 모든 일이 귀찮아졌다. 누군가를 만나 대화를 이어나갈 때에도 에너지를 쏟는 게 버겁게 느껴졌다. 회사에서 업무를 처리할 때에도 기계적인 사람이 되는 쪽을 택했다. 그렇게 좋아하는 글쓰기도 감정 없인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차라리 쓰기를 포기했다. 그렇게 살아가다가 나는, 이렇게 녹이 슬어 낡는구나 싶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누군가는 깊어질 것이고 누군가는 낡아갈 것이다. 인간으로 태어나 감정 소모하기를 포기하는 것은 그저 낡아가는 일일 뿐이라고 나는 여기기로 했다. 그래서 또다시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썼다. 기꺼이 감정을 소모하는 쪽을 택하는 것이다.
슬픈 사랑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 것이 바보 같은 일일까. 계절의 변화에 연연하는 것이 유치한 일일까. 내 맘 같지 않은 어떤 관계 앞에서 절절매는 사람은 찌질한 사람일까. 그것이 정말 바보 같고 유치하고 찌질한 일이라 할지라도, 나는 기꺼이 그렇게 살고 싶다. 끊임없이 사사로운 감정에 연연하고 흔들리며 말이다.
삶의 행복은 감정의 풍요에서 온다고 했다. 내 영혼이 또다시 무미건조해지는 날이 온다면 이 글을 꺼내어 읽겠다. 끝없이 내 안에 감정을 소모하며 사랑하고, 때로는 후회하며 그렇게 살아가기를.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며 꽃을 보면 언제나 소녀처럼 웃기를. 낡지 말고 깊어지기를. 연연하며 흔들리기를. 끊임없이 감동하며 살아가기를. 내게 주어진 삶에 열렬히 반응하며 살아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