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사학위 논문 심사를 받던 날

계속 공부할 사람이니까

by 고기왕

 3학기가 끝나고 여름 더위가 한창일 무렵 나는 석사학위 논문을 쓰고 있었다. '쓰고 있었다'고 막상 적고 나니 마치 하루하루 충실하게 분량을 쌓아 나갔던 것처럼 보여서 부연하자면, 아침에는 막힌 부분을 잇기 위해서 수백 페이지를 새로 읽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수백 페이지를 읽은 밤에는 어제 쓴 부분을 다 지우는 날들이 반복되고 있었다는 얘기다. 머릿속은 갈수록 피폐해지고 있었고, 논문 주제와 무관한 사안(예를 들어 나의 인생이나 나의 미래)에 대해서는 판단력이 몹시 흐려진 상태였다. 그 결과로 나는 논문 지도 시간에 돌이킬 수 없는 말을 해버리고 마는데 “교수님 저 박사과정 시험 볼래요”가 그것이다.


 그 말을 하고 나서 여기 다 적을 수 없는 우여곡절 끝에 나는 석사학위논문의 초고를 완성하고 ‘심사제출본’이라고 표지에 박힌 제본된 종이뭉치를 제출하였다. 석사학위를 받기 위해서는 먼저 논문 주제에 대한 구술 시험에 통과하고, 작성한 논문을 심사위원이 검토하여 학위를 받을 자격이 있음을 인정한다는 심사 결과를 받아야 하는데, 대개 그 과정을 통틀어 논문 심사라고 간략하게 부른다. 보통 석사학위 논문 심사란 한 번 정도로 지나가고, 큰일이 난다면(논문 수준이 학부생 리포트만도 못하다든지, 서론에서 쓰겠다고 장담해 놓은 n가지 중에 제대로 쓴 게 단 하나도 없다든지, 이 좋은 말들을 어디서 베껴 적었는지 각주로 성실하게 적어놓지 않았다든지...) 두세 번 받기도 하며 그런 경우 대개 끝이 안 좋다고 알려져 있어서 어떻게든 저 큰일을 막는 게 목표였다. 간단히 말해, 오늘 통과해야 한다. 피심사자 입실하라는 말에 잔뜩 긴장해서 심사위원 세 명이 앉아 계신 곳으로 들어갔고, 심사위원장은 내게 친근하게 첫 마디를 건넸다.


“다른 사람이 이렇게 써 왔다면 칭찬을 많이 했을 텐데, 계속 공부할 사람이니까 좀 꼼꼼하게 봤어요.” 그리고 준비됐냐는 신호도 없이 내 논문의 첫 페이지부터 차근차근 한줄 한줄 짚어가는 속죄와 참회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이 내용이 없다는 건 참고문헌을 충분히 안 봤다는 얘기지요. 이 방법을 썼다는 건 통계 기법에 대한 공부가 모자라다는 겁니다. 왜 이 데이터는 누락되었나요. 그 값은 여기에 함께 보고해주어야 합니다. 이 부분은 들어내야 하겠죠?” 처음엔 아 이건 그래서, 아 그건 저래서, 아 저건 이래서 그랬다며 나름 해명을 해보기도 했지만 해명이 끝나면 네가 그 말을 할 줄 알았으며 그런 말을 한 사람이 네가 처음도 아니란 말을 아주 자세하게 들어야 했고, 나중엔 입꼬리가 내려가지 않게 애쓰며 “예 고치겠습니다”만 반복했다. 좀 도와주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지도교수님은 옆에서 내 표정이 너무 재밌다는 웃음을 짓고 계셨고... 그렇게 억겁과도 같은 시간이 지난 다음 "많은 부족함이 있지만 그럼에도 연구자의 노력과 연구의 가치를 감안하여, 본 심사에서 지적한 사항을 성실하게 수정한다는 것을 전제로 석사학위를 받을 자격이 있음을 인정한다"는 선언을 들었다.


 성실하게 수정한다는 것을 전제로 약속된 학위이므로, 그날 밤 진탕 술을 마셨음에도 다음 날 아침부터 연구실에 기어나와 성실하게 수정을 시작했다. 페이지마다 수정할 내용이 있었다. 첫 페이지 첫 문장에도, 그러니까 "1. 서론"의 직후에도 "타인의 저술을 인용하여 논문의 첫 문장을 시작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라는 지적이 있었으므로 나는 정말 '처음부터 다시 써야' 했다. 하나하나 고쳐나갈수록 심사위원들의 지적이 정확했다는 걸 알았고, 그 심사의 순간들을 내내 곱씹다가 '계속 공부할 사람'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그 말도 정확한 걸까. 정확했으면 좋겠다. 나는 공부를 계속 하고 싶었으니까. 석사과정 중에 동학이 내게 물었던 적이 있었다. 선생님은 공부가 적성에 맞으세요? 할 줄 아는 게 이것뿐이라 할 수밖에 없다고 웃어 넘겼지만 공부에 대한 적성이라는 건 오로지 믿음의 문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종교적인 표현같지만 할 수 있다는 믿음과 할 줄 안다는 믿음을 갖는 거라고. 대학원에 가기로 결정했을 때 내겐 전자뿐이었지만, 석사학위 논문 심사를 받던 날 내게 후자도 생겼음을 비로소 확인했다. 그러니까 석사과정을 밟으며 대학원에서 보낸 시간은, 내가 공부를 할 수 있다고 믿기 위해 보낸 시간이었다. 저 박사과정 할래요라는 말을 삼키지 않고 끝내 입 밖으로 흘러나오게 하기 위해서.


 하여 박사과정에 입학도 했고, 수업을 듣고, 몇 편의 논문을 쓰고, 여기저기 학회도 돌아다니고 연구사업에 얼굴도 비추고 그러다가 이제 졸업논문만을 남겨두고 있는데, 그 사이에 그 믿음을 많이 까먹었다. 이 글과 이어 쓸 몇 편의 글은 그래서 쓰는 것이다. 선택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고 자신도 없어지고, 그런데 돌이킬 수도 없다는 걸 알았을 때, 그래서 새로운 걸 쓰는 일이 힘들어지면 해온 걸 쓰는 게 도움이 될지도 몰라서. 그러니까 학위논문을 쓰는 게 답답한 나한테도 도움이 되겠고, 인문계열 대학원에 입학해서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고. 성공담이든 실패담이든 무언가를 기록하는 건 잊는 것보다 좋은 일이니까.


 다시 석사논문 심사 받던 날로 돌아가면, 사실 심사받을 때 수정할 사항을 다 기록할 자신이 없어서 심사장에 들어갈 때 휴대전화의 녹음 앱을 켜고 들어갔었다. 친절하게도 모든 수정사항을 정리해서 내게 전달해주시는 바람에 녹음한 내용은 별 쓸모가 없었지만 그래도 그 말이 좋아 종종 그 목소리를 듣는다 “계속 공부할 사람”. 서울 사람 남자 사람 이렇게 그냥 태어났더니 되어 있던 사람이 아니라 내가 이렇게 되기로 선택한 사람. 박사학위 논문은 끝이 안 보이고 학계의 아버지가 되기에도(제정신인 상태로 지도교수 앞에서 실제로 한 말이며, 내가 한 모든 말 중에 그를 가장 크게 웃게 한 말이다.) 좀 많이 글러먹은 것 같지만 괜찮아. 나는 계속 공부할 사람이니까. 계속하기로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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