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몫의 사랑을 하는 일

'앞으로 올 사랑(정혜윤 著)'을 읽고

by 고기왕
“힘든 시기이기에 우리는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드라마 ‘브로드처치’의 폴 코츠 목사는, 마을 안에서 일어난 범죄로 두려움에 떠는 주민들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이 말을 바꾸어 다시 쓰면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으로, 우리는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다. 이 시기에 우리는 어떻게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데카메론의 형식을 빌린 이 책 속 열 편의 이야기는 사랑이 마침내 그것을 가능케 한다는 기나긴 증명이다.


 열 편의 이야기 중 카카포의 이야기가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다. 카카포는 멸종 위기에 처한 뉴질랜드의 날지 못하는 앵무새다. 수컷은 짝짓기를 위해 소리를 내는데, 그 소리가 너무 멀리 퍼져서 암컷도 수컷의 위치를 알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그 암컷도 2년에 한 번 열매 맺는 나무의 스케줄에 맞춰서 짝짓기를 한다는데 이쯤 되면 좀 걱정스럽지 않나. 무엇보다 카카포에게는 다른 무엇이 자기를 해친다는 개념 자체가 없어서, 공격을 당해도 어리둥절한 채로 그저 둥지에 앉아만 있는다. 멸종 따위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도록 진화한 것 같은 이 새의 느리고 순함이 사랑스럽다.


 보이저 2호에 실릴 소리를 고르는 이야기도 좋아한다. 우주 어디에 있을지도 모르는 다른 존재에게, 들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지구의 소리를 보내기로 결정한 마음도 마음이건만, 그 소리 하나하나를 고르면서 신경 쓴 것이 “조회 수도 수익도 남의 이목도 아니라, 우주였고 인류였고 영원이었다는” 것에 이르면 울컥해진다. 가장 녹음하기 어려운 소리가 키스 소리였다는 것도 좋다. 엔지니어가 자기 팔을 빨아서 낸 소리를 듣다가 “그래도 우주로 보내는 영원한 키스인데 진짜 키스 소리로 하자”는 결론을 낸 것도 인간다워서 좋아하고, 결국 뺨에 부드럽게 입 맞추는 소리를 녹음해서 우주로 보내며 인류가 서로 사랑하는 생물임을, 서로에게 입을 맞출 줄 아는 종이라는 것을 알리고자 하는 마음을 좋아한다.


 바빌로프와 동료들의 이야기는 매일매일 사라지는 내 인류애를 어느새 복원해 놓는다. 2차대전 중에 러시아의 식물학자 니콜라이 바빌로프는 마침내 세계 최초의 종자 은행이 된 식물 연구소를 만드는 데 성공한다. 그의 명성이 높아갈 무렵, 경쟁자 리첸코의 모략으로 바빌로프는 스탈린에게 숙청당해 사형을 언도받고 감옥에서 죽는다. 전쟁은 계속되었고 식량 기근은 갈수록 심해졌다. 그러나 연구소에 남아 있던 바빌로프의 동료들은 굶어 죽어가면서도 연구소의 씨앗을 먹지 않고 지켰다. 추위에 떨면서 견과류와 씨앗과 쌀을 분류하고 기록했다. 아홉 사람이 죽었지만 쌀 한 톨 사라지지 않았다. 그들은 죽어가면서도 이들을 심고 길러 마침내 거둘 수 있는 평화로운 시대가 올 거라고 확신했을 것이다.


 다 읽고 책의 제목을 곱씹다가, ‘올’이라는 말에 담긴, 정확히는 어미 ‘-ㄹ’에 담긴 확정되지 않은 현실의 의미를 가만히 생각한다. 올지 안 올지 알 수 없는 것들, 그러나 반드시 와야 하는 것들이 있다. 올 거라고 믿어야 하는 것들이 있다. 바빌로프와 그의 동료들이 평화를 믿었던 것처럼, 보이저 2호에 소리를 담은 사람들이 외계 문명과의 설레는 조우를 믿었던 것처럼, 카카포가 어딘지 모르지만 소리가 들리는 곳에 짝이 있을 거라고 믿고 걸어가는 것처럼. 이 어려운 시기일수록 앞으로 올 수많은 사랑들을 믿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믿어야 한다. 우리는 매일 상처받고 또 지쳐가지만, 그럼에도 상처와 피로에서 서로를 격려하고 연결된 의미를 되짚으며 회복한다. 인간 사이의 피할 수 없는 의존과 나만이 만들 수 있는 내일을 동시에 믿을 수 있을 때, 우리는 내일의 상처를 새롭게 각오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사랑에서 비롯한다. 되돌려 받지 않아도 상관없는 애정을 주고, 내 생에서 거두지 못할 열매 맺는 나무를 심는 삶을 상상하면서, 그렇게 내 몫의 사랑을 하는 것. 이 시기에 더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닐까. 그렇게 모두가 더 조금씩 좋은 사람으로 연결되면, 힘든 시간을 조금 덜 아파하며 지나갈 수 있지 않을까.


 다시 카카포를 생각한다. 어디서 들리는지 알 수 없는 울음소리로 짝을 부르는 새와, 그 소리를 찾아 수십 킬로미터를 걸어가 짝을 만나는 새를. 나는 이 순한 새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 그렇게 세상에 순하고 약한 것들이 점점 늘어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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