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보수일지

새 집은 아직 살 집이 아닌 것이지

by 고기왕

작년 11월 초에 새로 지어진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대강 건물이 다 지어졌는지, 9월 초에 입주 사전 점검을 하라고 연락이 왔었다. 사전 점검은 입주 전에 거의 다 지어진 집에 들어가서 혹시 무슨 문제(하자)가 있는지 찾아보는 일이다. 이왕 새 집으로 갈 바에 확실히 하려고 전문 업체를 고용했다. 업체에서는 꼼꼼하게, 그리고 건축을 잘 모르는 나같은 사람은 절대로 찾을 수 없었을 하자를 찾아주었다. 대략 100개 정도였는데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수준이라고 해서 내심 안도하기도 했고, 인터넷 홈페이지에 수리 신청까지 다 해준다니 고맙기도 하지. 이삿날까지는 두 달이 넘게 남았고, 하자보수 앱에는 어디가 문제인지 사진까지 전부 완벽하게 올라가서 ‘접수’ 되어 있다. 이제 이 ‘접수’가 ‘완료’로 바뀌는 것만 느긋하게 바라보면 될 일이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11월이 되었다. 이사 사흘 전쯤 청소도 하고 짐도 좀 미리 옮길 겸 열쇠를 받으러 갔다. 열쇠 말고도 이것저것 주더니 서류를 내밀며 사인을 요구한다. 뭐냐고 물어보니 여기 적힌 거 다 받았다는 걸 확인하는 거란다. 그런데 그 목록에 내가 받은 적이 없는 서류가 있다. ‘하자처리현황’이라는 문서인데 이건 못 받았다고 달라고 하니 그건 원래 없는 서류라고 한다. 원래 없는 서류가 어디있으며 그걸 받았다고 사인을 하라는 건 무슨 소리냐고 따지기 시작하니 갑자기 다른 사람이 아 그 서류 여기 있다며 바로 내어준다. 있는 걸 왜 없다고 하지? 하고 보니까 9월에 접수한 하자가 얼마나 수리됐는지 적혀있다. 그런데 안 고쳐진 게 보인다. 이거 보세요. 이번 주말에 이사하는데 아직 안 고쳐진 게 있는데 이거 어떻게 된 겁니까? 라고 물어보니 괜찮다고 사소한 하자는 살면서 고치면 된다고 한다. 아 그렇군요 2년 동안 꾸준히 다 고쳐준다니 원래 그런 건가보다하고 일단 새 집에 들어가보았다. 아무튼 나는 새 집에 처음 살아보니까 모르는 게 많을 것이다.


베란다 대피실 방화문이 안 닫힌다. 거실 이중 창문이 서로 붙어서 움직이지 않는다. 침실 전등 한쪽 불이 켜지지 않는다. 타일은 얼룩 투성이고 주방 그릇장 시트지가 너덜거린다. 도배도 곳곳에 흠집이 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하자는 서류상 ‘수리완료’로 처리되어 있었다. 이게 무슨 영문이란 말인가? 주민들이 모인 단체 카톡방을 좀 들어가보니 준공날짜 지키려고 그랬을 거라고 한다. 아니 그러면? 이건? 고쳐주는 건가? 언제 고쳐주지? 궁금하고 불안해서 입주센터에 가니 친절하게 안내해 주신다. “고객님, 수리 안 됐는데 완료라고 되어 있는 건 다시 접수하실 수 있습니다.”


내가요? 내가 접수를 다시 하라구요? 내가 접수한 걸 멋대로 완료로 처리해놓은 건 너희들인데 그걸 내가 다시 접수할 수 있다고 알려주면 아 네 그렇군요 다시 접수할 수 있다니 다행이다! 하고 내가 돌아가겠습니까? 길길이 날뛰니 그쪽에서도 아 이 인간은 곱게 안 가겠다 싶었는지 이삿날이 언제냐고 묻는다. 사흘 뒤다. 당장 안 닫히는 실외기실 방화문이랑 창문틀끼리 붙어서 안 움직이는 것부터 고쳐놓으라고 하니 아 걱정마시라고, 이 건은 ‘긴급’으로 처리해드리겠다고 한다. 종이에 뭘 적어두는 것 같기도 하다. 일단 해준다고는 했고, 그것도 ‘긴급’이라고 하니 사흘 뒤에는 고쳐져 있겠지. 그날은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고, 마침내 이사의 날이 도래하였다. 아침 일찍 이삿짐센터보다 먼저 문을 열고 들어간 나는 사흘 동안 어떤 하자도 고쳐지지 않은 것을 확인하였다.


그러니까... 나는 정말로 품위를 지키고 싶었다.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각자의 직분에 충실할 것이다. 최소한의 책임감이 있고 맡은 바 직무에 최선을 다하려 애쓸 것이다. 뭐 이런 믿음이 서로에게 있고 그걸 기초로 사회가 굴러간다고 생각하니까... 내가 이삿날까지 고지했고 ‘긴급’으로 처리해주겠다고 약속까지 했는데, 수십 가지 하자 중에 급한 거 두 개만 해달라고 했는데. 그걸 안 해준다고? 두 달 동안 이 사람들은 대체 뭘 한 건가. 이제 새로 산 가구들이 들어올 거고 그러면 저 가구 뒤의 하자들은 이사 가는 그날까지 고칠 수 없겠지. 물론 이사 가는 그날엔 내가 하자를 고칠 필요도 없겠지만... 허탈하게 천천히 이사 전의 빈 집을 둘러보다가 나는 이상한 것을 발견한다.


드레스룸 평면도. 침실과 이어진다.


여기부터 이 글을 이해하려면 설명이 좀 필요하다.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은 같이 올려둔 평면도를 참조해주면 좋겠다. 안방에는 ‘드레스룸’이라는 작은 방이 딸려 있다. 옷이나 가방, 이불 같은 것을 보관할 수 있는 별실이다. 거실에서 안방으로 들어가면, 다시 안방에서 드레스룸으로 들어갈 수 있다. 드레스룸은 안방에서 바라볼 때 ㄱ자 모양으로 생겼는데, ㄱ자의 세로획 부분 벽에 큰 전신 거울이 붙어 있다. 그런데 그 거울이 휘어 있는 것이다. 외출 전에 옷을 갈아입고 매무새를 다듬을 곳인데 이게 휘어 있으면 안 되지. 하자보수 업체가 왔을 때는 거울은 커녕 드레스룸에 전기도 안 들어올 때라 접수를 못한 것 같고. 이건 내가 해야겠구나 해서 접수를 했다. 드레스룸 거울이 휘어 있습니다. 곧 입주하니 가능하면 빠르게 부탁드립니다.


열린 방화문과 움직이지 않는 창문과 찢어진 도배지와 패인 바닥과 켜지지 않는 전등으로 싸우느라 정신없이 며칠이 흘러갔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침실 전등 두 개 중에 하나가 안 켜져서 하자보수 신청을 한다. 전화가 오면 보수 일정을 잡고 나는 그날 연차를 쓴다. 전기 담당자가 온다. 안녕하세요 전기 담당자입니다. 하자 보수하러 왔습니다. 전등을 켜보더니 아, 등이 죽었네요. 일단 전기가 들어오는 걸 확인해보죠. 하면서 무슨 기계를 콘센트에 꽂아본다. 전기는 이상없이 들어옵니다. 이제 등으로 하자 접수를 이관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기사님은 전기가 들어오는지를 확인하는 분이고, 등을 수리하는 분은 따로 있다는 말씀이시죠? 그렇죠. 요새는 다 나눠져 있어요. 그러면 지금 가서 하자 접수를 이관해 주시면 그건 언제 오시나요? 아 담당 매니저가 이관된 거 확인하고 전화해서 스케줄을 잡아드릴 겁니다. 그러면 등을 담당하시는 분이랑 전기를 담당하시는 분으로 나뉘어 있는 건가요? 내가 묻자 기사님은 멋쩍게 웃으며 말씀하신다. 스위치 담당자도 있어요.


그러다 마침내 저 드레스룸 거울을 고쳐준다는 연락이 왔다. "드레스룸 가구" 담당자가 온다고 한다. 드레스룸 가구는 모두 한 사람이 담당하는구나 거울 담당자 옷장 담당자 옷걸이 담당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다행이야! 내심 쾌재를 부르며 약속을 잡았다. 와서 보시더니 벽 전체에 나무판을 붙이고 그 위에 거울을 붙인 건데, 나무판이 완전히 붙지 않아서 거울이랑 같이 휜 것 같다고, 거울과 맞은편 벽 사이에 나무틀을 꽉 끼워서 거울을 벽에 딱 붙여놓고 가셨다. 저 틀은 사흘 정도 두어야 하니 사흘 뒤에 다시 오겠다고 한다. 사흘이 지났고 나무틀을 떼었다. 거울은 벽에 딱 붙었으나 더욱 휘어 있었다.


더 휘었는데요? 나무틀을 다 떼서 정리하시던 기사님이 보고 말씀하신다. 아 이건 벽 자체가 휘어있어서 이렇게 되는 거예요. 네??? 그럼 어떻게 해야 돼요??? 저는 모르죠 저는 드레스룸 가구만 만질 수 있어서요. 일단 미장 하자라고 접수해보세요. 잠깐만요 미장이면 혹시 벽을 평평하게 시멘트를 바르는 것부터 해야 되는 건가요? 일이 좀 커지긴 할 건데 그렇게 하셔야 할수도 있죠. 일단 접수해보셔서 담당자랑 얘기해보세요.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나는 미장 기술을 배우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다시 하자보수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여기 OOO호인데 미장 하자를 접수하려구요. 어디에 무슨 문제가 있나요? 드레스룸 전신거울이 벽에 붙어 있는데, 그게 벽이 좀 평평하지가 않아서 같이 휘어 있어요. 고객님 그러면 드레스룸 가구는 철거하신 건가요? 아뇨 그대로 붙어 있죠. 아 그러시면 먼저 철거 일정부터 드레스룸 쪽이랑 잡고 접수해주세요. 그럼 철거하면 미장 일정은 바로 잡히나요? 아뇨 그것도 따로 접수하셔서 일정 잡으셔야 해요. 그러면 시멘트가 그대로 드러나 있을 텐데 그 상태로 보수해줄 때까지 살아야 되나요? 네 고객님 그건 어쩔 수가 없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 두 팀과 약속을 내가 중간에서 계속 잡아가면서 그때마다 연차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는 전체 스케줄을 좀 확실히 못박고 싶었다. 그러니까 (1) 휘어 있는 거울벽을 철거한다. (2) 갈아내든 덧바르든 벽을 평평하게 한다. (3) 다시 거울벽을 잘 붙인다. 이 일정 세 개를 달력에 고정하고 싶었는데 (1)과 (3)을 담당하는 팀과 (2)를 담당하는 팀 사이에서 내가 안절부절하는 게 맞나? 이걸 조절하는 게 매니저가 하는 일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물었다. 지금 드레스룸 팀이랑 미장 팀이랑 따로 있는 것 같은데 그냥 다같이 만나서 일정을 잡고 싶다. 어디냐 내가 가겠다. 그러자 단호한 답이 날아왔다. 고객님 저희는 방문 접수를 받지 않고 있습니다. 저희가 어디 있는지는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전화나 앱으로만 접수해주세요. 아니 그러면 옆에 드레스룸 매니저라도 같이 통화할 수는 없냐. 지금 그쪽은 그쪽대로 바쁘셔서요.


그냥 집도 아니고 신혼집이다. 이제 오기가 생겼다. 벽을 평평하게 다시 바른다는 것도 가능한지가 의문이고(그게 쉽게 되는 거면 처음부터 평평하게 했겠지...), 벽에 거울을 바로 붙이는 것도 아니고 나무판을 댄 다음에 붙이는 건데, 그렇다면 그 나무판을 평평하게 잘 붙이면 되는 게 아닐까. 이건 미장팀이랑 가구팀 기사님이 같이 봐야 할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고 몇 번이고 번갈아 전화를 했다. 내가 전화 한다고 일정을 바로 잡아 주는 것도 아니고 천 세대가 넘는데 하자보수 전화번호는 두 개 뿐이니 통화를 항상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미장 팀 매니저님 바꿔주세요. 드레스룸 매니저님 바꿔 주세요. 미장팀 매니저님한테 OOO호로 오늘 중에 연락 달라고 해주세요. 네 중요한 거라구요. 드레스룸 매니저님한테 두 날짜 중에 가능한 날짜 알려달라고 메모 남겨 주세요. 미장팀 매니저님한테 오후 두시부터 방문 가능하다고 전해주세요. 이러기를 수십 차례, 그리고 나는 마침내, 미장 팀과 가구 팀을 한날 한시에 우리 집 드레스룸에 모으는 데 성공하고야 만다.


나는 그들이 모두 드레스룸에 들어오면 방문을 용접하고, 이 방의 모든 하자가 고쳐질 때까지 아무도 못 나간다고 선언하고 싶었다. 용접 팀까지 부르려면 얼마나 더 전화를 해야 했을까. 하여간 사태를 설명하고 내 생각엔 시멘트칠부터 하는 것보다 가구를 어떻게 잘 해보는 게 낫지 않겠냐고 얘기하자 미장팀에서 벽을 만져보더니 이거 평평하게 바르고 마르는데 한 달은 걸릴 거고 마르면 그 위에 퍼티칠도 해야 되는데 그건 또 '퍼티팀'과 연락을 해야 한다고 한다. 뭐요 또 팀이 있어? 대체 팀이 몇갠가요? 내가 묻자 한 40개 되지요 하면서 허허 웃는다. 그래요 이걸 물어본 사람이 제가 처음은 아니겠지요. 하여간 벽을 뜯어서 해결하려들면 언제 될지 진짜로 알 수 없다는 얘기다. 가구팀 기사님한테 다시 물어보니 일단 거울벽만 뜯고, 다시 평평하게 붙여보겠다고 한다. 좋아요 믿습니다. 근데 망설이시길래 왜 그러시냐고 물어보니 말씀하시길,


이게 거울 밑에가 바닥이랑 실리콘으로 코킹이 되어 있구요, 또 요 벽이 ㄱ자로 꺾이는 부분에는 도배가 되어 있어요. 네? 그럼 그 코킹 뜯는 거랑 벽지 뜯는 건 설마 코킹팀이랑 도배팀을 불러야 되는 거예요? 오늘 작업 못해요? 내가 당황해서 묻자 웃으시며 에이 아니죠 그건 저희가 뜯고 하죠. 다행이네요 저는 또 전화해야 되는 줄 알았죠. 아 근데 다시 코킹할 때랑 벽지 붙이실 때는 새로 접수하셔야 돼요. ......알았으니 일단 거울만 똑바로 보이게 해주세요. 그럼 거울을 잘 떼어내겠습니다. 그러나 벽 모양으로 휘어있는 채 한 달 가까이 힘을 받고 있던 거울이다. 떼어내려고 도구를 거울에 대고 힘을 주자마자 와장창 소리를 내면서 깨지고 만다. 사실 그 순간엔 별 생각이 없었다. 뭐 내가 깬 것도 아니고 새 거울 붙여주면 더 좋지. 고객님 죄송합니다. 아이고 아니예요 다치신데는 없죠? 사실 저희 창고에 거울 재고가 없어요. 새로 주문해야 돼요. 뭐라구요?


Screenshot_20250801_143359_Gallery.jpg 이렇게 깨졌다고


용접팀 불렀으면 큰일날 뻔했구나. 내가 아니 이럴 수가 있냐 재고가 없다는 게 말이 되냐 지금 천몇 세대가 입주하지 않냐. 그러자 기사님도 당황해서 이게 깨질 줄은 몰랐는데 하시며 여기저기 전화를 막 하시더니 한 30분쯤 지나자 결국 먼지가 쌓인 거울 하나가 도착했다. 기사님은 굳은 얼굴로 이거 깨지면 정말 끝이라고 하시면서 온 신경을 기울여 작업에 돌입했다. 옆에 오신 미장기사님도 이것저것 잡아주고 도와가며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마침내... 마침내 드레스룸 거울에서 내가 똑바로 보였다. 사람이 이런 거에 감격하게 되는구나. 이사가는 그날까지 절대 이 거울은 깨져선 안 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키리라 결심하고 나는 하자보수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코킹팀 매니저님이나 도배팀 매니저님 바꿔주세요. 네 하자보수 신청이요. 설명하려면 길어요.



1) 퍼티칠은 퍼티를 칠하는 건데, 퍼티는 구글 검색 결과에 따르면 아래와 같다.

틈이나 구멍을 메우거나 표면을 평평하게 만드는 데 사용되는 재료입니다. 페인트 작업 전 면을 고르게 하는 밑작업, 도배, 건축 마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됩니다.

2) 위의 글은 중간 과정을 상당히 생략한 글이다. 방화문은 거의 6개월만에 닫을 수 있었고(그러니까 그 전까진 알람만 무시하면 윗집아랫집에서 비상구를 열고 우리집에 들어올 수 있었다), 미장팀과 도배팀이 서로 일을 왜 이렇게 했는지 모르겠다며 몇 번인가 싸울 뻔 했으며, 일정 잡는 매니저는 기사님이랑 통화하면서 스피커폰인 줄 모르고 내 욕을 하다가 들키기도 했다. 문과 창문과 벽지와 가구와 바닥과 타일과 줄눈과 싱크대와 현관문의 하자를 모두 고치게 된 건 한 달 전쯤의 일이다. 나는 승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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