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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독가 한희정 Aug 23. 2022

얼떨결에 함께 한 낭독봉사

얼떨결에 함께 한 낭독봉사


부족한 나의 낭독을 업그레이드하고자 책 한 권을 읽는 클래스를 신청했다. 


첫 번째 만남에서 성우님은 말씀하셨다. 우리가 낭독할 책이 시각장애인도서관으로 기증된다고. 설렘과 부담감이 동시에 덮쳐다. 누군가에게 나의 목소리로 책을 읽어준다는 것에 먼저 기쁨과 감사가 느껴졌지만, 반면 '내가 잘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과 책임감이 몰려왔기 때문이었다. 


마르크 로제의 장편소설 <그레구아르와 책방 할아버지>란 책이었다. 평생 책과 함께 살아온 책방 할아버지 피키에 씨와 책은 질색이었던 청년 그레구아르와의 만남으로 시작한다. 이후 그레구아르가 피키에씨의 가르침으로 낭독자가 되기까지의 감동적인 여정을 담고 있다. 


12주에 걸쳐 진행되는 녹음작업이었다. 처음으로 접하는 소설 낭독이었다. 생각보다 어려웠다. 입 밖으로 나오는 나의 소리는 감동적인 글과는 전혀 달랐다. 함께 진행하는 작업이라 주어진 시간 안에 제출할 수 있을지 조차 걱정이 앞섰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에 걸려 3주 동안 낭독을 할 수도 없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매주 클래스에 참석하며 집중했다. 다행히도 한 주 한 주 더해갈수록 겉돌기만 하던 발음이 잡히고 표현되지 못하고 있었던 내용들이 소리로 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흩어져 있던 퍼즐조각에 불과하던 나도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퍼즐을 맞추고 있는 듯했다. 마침내 힘든 여정을 끝내고 함께 녹음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책 <그레구아르와 책방 할아버지>는 지금 나의 인생 책장 속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낭독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피키에씨의 조언들이 가득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낭독자는 자기가 읽는 문장에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오직 투명하게 존재해야 한다. 오로지 책의 내용만이 밝게 빛나야 한다. ( p114)


네가 책을 읽을 때 눈앞에 보이는 것처럼 장면들을 떠올리듯이, 그들 역시 귀로 듣는 장면들을 눈으로 보게 만들어야 한다 (p117)


프네우마. 공기. 공기의 흐름. 숨을 쉴 때 양파나 술 냄새가 나는 사람이 있듯이 너의 숨결에서는 문장의 구문 구성 냄새가 풍겨 나와야 해. 너 자신, 너의 호흡, 너의 프네우마는 언어 도구들의 매개물이야.... 호흡이 필요해. 여기, 복부의 힘으로, 별빛 한 점 미치지 않는 땅끝에 서서 칠흑 같은 어둠을 향해 '거기 누구 없어요?'하고 외칠 때처럼." (p118)




낭독은 나에게 '연결'이라는 큰 선물을 전해준다. 날마다 함께하는 낭독은 '기적'이고 '감사'이다. 쳇바퀴 돌 듯 살아오던 일상적인 삶에 작은 변화를 주기 위해 시도한 것 하나가 바로 낭독이었다. 그런데 그 낭독으로 참으로 많은 사람들과 연결이 되고 있다. 낭독을 하면서 어떤 하나의 소중한 인연의 고리를 만나 연결되고, 또 다른 좋은 인연의 고리와 새롭게 연결되기를 계속한다. 마치 크리스마스트리 앞에 놓여 있는 몹시 열어보고 싶은 여러 모양의 선물 꾸러미들이 연상이 된다. 앞으로 더 길어질 고리들, 더 커질 고리들, 그리고 그 고리들이 어떻게 연결될지 많은 기대도 된다.



낭독으로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책을 함께 나눌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낭독을 하면서 함께 웃고 울고 나누는 시간이 참으로 감사합니다.

낭독으로 꿈을 만나고, 꿈도 키울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계속하기를 계속합니다.

때론 그 길이 쉽지는 않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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