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2022년 2월 26일!
방송과 신문이 "‘시대의 지성’으로 살다 ‘죽음의 스승’으로 떠났다"라며 이어령 선생님의 안타까운 별세소식을 전한 지 벌써 1년이 되어간다. 책과 세상과 담쌓고 살아온 나도 그 이름은 익히 알고 있을 정도로 알려진 분이라 여러 기사들을 찾아 읽어보았다. 선생님께서 2012년 암으로 잃은 딸, 이민아 목사님의 권유로 기독교에 귀의했다는 내용은 뜻밖이었다. 요즘 시들해진 나의 신앙을 일깨워주는 듯한 선생님의 말씀을 만났다.
“지성의 종착역은 영성이다.”
“우주에서 선물로 받은 이 생명처럼, 내가 내 힘으로 이뤘다고 생각한 게 다 선물이더라.”
때마침, 낭독동기 모임 '콜라낭독'에서 김지수 작가님과 죽음을 앞둔 스승 이어령 선생님과의 인터뷰를 기록한 책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낭독하기로 했다. 나는 특히 인상 깊게 다가왔던 큰 질문을 경계하라 중 ‘대낮의 눈물, 죽음은 생의 클라이맥스’ 부분을 발췌하였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엄마 없다? 엄마 있네! 어찌 보면 그게 우리 인생의 전부라네."
"나는 알았던 거야. 생의 절정이 죽음이라는 걸. 그게 대낮이라는 걸."
"엄마가 없는 쪽에다 힘을 싣느냐, 있는 쪽에 힘을 싣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져. 해피 엔딩으로 볼 수도 영원한 헤어짐으로도 볼 수도 있어. ‘있다 없다’ 까꿍놀이가 결국 문학이고 종교야."
죽음과 삶!
'엄마 없다? 엄마 있네! 가 우리 인생의 전부'라는 말씀이 김지수 작가에게 처럼 나의 가슴에도 깊이 파고 들어왔다. ‘엄마 없다’와 ‘엄마 있네’는 순간의 차이다. 얇은 하얀 종이 한 장의 앞 뒷면과 같다. 동전의 양면과 같다. 죽음과 삶은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별개의 것으로 여기며 그저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살아가는 나의 모습이 보였다. 죽음보다는 삶의 무게에 치중하는 나의 일상이 보였다. 죽음을 준비할 새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이 다가올 것 같아 씁쓸한 미소가 지어졌다.
바로 내일 이 삶이 끝날지도 모르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죽음을 잊고 산다. 모두가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설마 내일 내가? 하며 죽음을 덮어두고 산다. 죽음은 나의 것이 아닌 양 먼 미래로 착각하며 살아간다. 죽음을 왔다 갔다 하는 큰 병이나 사고를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죽음을 맞이하는 미련한 사람들이 바로 나, 우리들이 아닐까 싶다. 오늘따라 암에 걸리기 전에도 사도 바울의 말씀 '나는 매일 죽고 매일 태어난다’를 제일 좋아했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고개가 숙여진다.
매일 죽고 매일 태어나는 삶!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매일 죽고 매일 태어나는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하자고
나에게 말을 건네본다.
현실의 삶만을 정신없이 좇지 말고
오늘 죽어도 아무렇지 않은 삶!
오늘의 죽음으로 새로운 내일을 맞이하는 삶!
그런 ‘날마다’가 되어보자고 나에게 말을 건네본다.
죽음을 곁에 두고 현실을 더 제대로 살아보자고.
감당하기 어려운 욕심으로 속 끓이지 말고,
그냥 소박한 나의 꿈들을 향해 하루하루 한 걸음씩 나아가자고.
그리고 그 꿈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며
행복한 '날마다'를 만들어 가자고
나에게 또 말을 건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