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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독가 한희정 Nov 16. 2022

청소의 힘

나에게는 당당하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싫어하는 것’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집안일이다. 청소, 빨래, 그리고 부엌일! 가사노동에 시간을 많이 쓰는 삶은 별 가치가 없다고 여기며 최소한의 자투리 시간만을 할애하며 살아왔다. 결벽증에 걸린 사람처럼 늘 쓸고 닦는 엄마의 모습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80이 넘으신 엄마는 지금도 조금이라도 더럽고 지저분한 것을 지나치지 못하신다. 오랜만에 우리 집에 오실 때에도 제일 먼저 집안을 훅 훑으시고 늘 같은 잔소리를 늘어놓으시며 청소를 시작하신다. “왜 이렇게 더럽게 해 놓고 살아? 청소 좀 하고 살지… “ 


엄마의 손길이 지나간 곳은 반짝반짝 빛이 반사되어 윤이 나서 보기는 좋다. 그러나 솔직히 나는 이 나이에도 엄마처럼 완벽하게 청소를 할 수도 없을뿐더러 하기도 싫다. 




멀리 타주에 떨어져 살던 아이들이 코로나로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내년엔 다시 흩어질 것 같지만 현재는 한 지붕 세 가족처럼 지낸다. 아래층엔 딸아이가, 2층에는 우리 부부가, 3층에는 아들이 거주한다. 외형적으로는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두 개의 공간이 있기는 하다. 당연히 1층에 있는 부엌과 거실 한쪽 구석에 아이들이 만든 미니 헬스장이다. 그러나 코로나 후로 집에서 일하는 아이들 위주가 되었다. 


자의든 타의든 얽매여있던 가족 비즈니스에 종지부를 찍은 나는 지난 한 주동안 정신 사나운 부엌에 먼저 적응해야 했다. 뒤죽박죽 뒤섞여 있는 세 집 살림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먹다 남긴 음식들, 썩은 과일과 채소, 유통기한이 지난 것들을 신나게 버리며 냉장고도 싹 비었다. 더 이상 잠만 자고 아침이면 일터로 여행을 떠나는 장기 숙박객이 아니라 안주인으로의 복귀 신고식이었다.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집안 곳곳에 방치되어 있던 쓰레기 폭탄들도 눈에 들어왔다. 4년 전부터 쓰임 받지 못하고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물건들도 있었다. 청소라면 질색인 나도 더 이상 모른척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나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하루에 끝내기 힘든 엄청난 양의 일이었다. 비우기가 먼저란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의 발길은 2층 욕실로 향했다. 기한 지난 화장품, 다양한 샘플들로부터 시작하여 필요 없는 약들, 오래되어 색이 바랜 잡지들, 쓰잘데 없는 잡동사니 등 손에 잡히는 대로 33 갤론짜리 큰 쓰레기 백 2개에 가득 채웠다.




지극히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낑낑대며 아래층으로 무거운 백을 끌고 내려오면서 뭐라고 정확히 표현할 수는 없지만 갈증이 해소되는 듯한 시원함이 전해져 왔다. 


다시는 꺼낼 필요가 없다고 분류하여 한대 했던 책, 마스다 미츠히로의 ‘청소력’이 떠올랐다. 그땐 전혀 와닿지 않았던 청소의 힘!이었다. 책장 안을 위아래로 몇 번을 훑었다. 선뜻 책은 눈에 띄지 않았다. 책장 안에 있는 책들 또한 정리해달라고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다. 뭉치로 쌓아놓은 책들을 밖으로 꺼내자 선반 구석 모퉁이에 끼인 채 아파하고 있는 '청소력'이 보였다.  


"당신이 사는 방이, 당신 자신이다."

"당신의 마음 상태, 그리고 인생까지도 당신의 방이 나타내고 있다."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간단한 '청소'로 인생이 바뀐다."

"깨끗한 공간이 갖는 힘. 청소력!" 


웃프지만 이 나이가 되어서야 청소가 가져다주는 힘을 살짝 경험했다.

  

힘든 상황에서도 꿋꿋이 버티며 4남매를 키워낸 강한 엄마! 

늘 밝고 환한 미소를 보여주시는 엄마! 

늘 감사하며 살아가라고 말씀하시는 엄마! 

 

청소력 때문일지도...



마이너스 에너지를 없애주는 청소력!

행복한 자장을 만드는 힘! 청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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