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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독가 한희정 Nov 06. 2022

의미심장이라는 말

림태주 작가님의 <너의 말이 좋아서 밑줄을 그었다> 중 마지막 에세이 ‘의미심장이라는 말’을 제목에 이끌려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지금 나의 상황에 너무도 구구절절 공감이 되는 내용이라 가볍게 읽어 내려갈 수가 없었다. 특히 “가까이하는 건 쉽지만, 가까이한 것을 멀리하는 건 고통스럽다.”라는 문장을 읽을 땐  나의 가슴에 큰 파도가 쳤다.



동생네 가족과 나는 잘 맞지 않을 때가 많다. 그들과 언쟁을 할 땐 옳다고 생각한 나의 생각들이 무너져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리곤 한다. 동생은 늘 위아래가 없는 무례한 조카의 막 말과 행동을 시간이 좀 더 지나면 나아질 거라며 이해해 달라고 부탁한다. 나는 늘 너그럽지 못하고 옹졸하고 이기적인 사람으로 동생의 머리에 입력이 된다. 


같은 일이 되풀이될 때마다 나는 이상한 낯선 세상에 뚝 떨어져 있는 것 같아 두리번거리며 쉽고 편해 보이는 길로 가기 위해 짧지 않은 시간을 소비한다. 나의 생각과 행동을 되짚어 보며 걷기도 하고, 답답한 마음을 떨쳐버리기 위해, 머리를 식히기 위해 심호흡도 한다. "곧 좋게 벗어날 수 있겠지." 하며 다독 거리기도 한다. 


그런데 나의 속을 뒤집어엎은 조카는 이해할 수 없지만 다음날이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Hi! 하고 인사를 한다. 또 가끔은 "Imo! I'm sorry."라고 말해주기도 한다. 그다지 편해 보이지는 않아도 동생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자기 일을 묵묵히 한다. 그러면 나는 한편으로 그나마 외로운 동생 옆에 조카가 있어 다행이라 여기고 만다. 



6년 전 큰 사기를 당한 후로부터 길다면 긴 세월을 좌충우돌하며 바닥이었던 비즈니스를 함께 성장시켰다. 코로나 전까지 나의 일상이자 삶이었던 음악과 관련된 일들을 줄이면서 말이다.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라 힘들기도 했지만 가족이라 좋았고 가족이라 함께 할 수 있었다. 


날마다 우리 곁에서 몸으로 마음으로 돕는 연로하신 엄마와 누구보다도 온 시간을 쏟으며 힘들게 버티고 있는 동생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많이 부족하지만 언니라고 의지하며 기대는 마음을 나 몰라라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시작을 함께 했으니 정리도 함께하자고 약속했었기에 지금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 여파로 아직 기다리는 매매 소식은 들리지 않고, 마음이 상하게 되는 같은 일들이 반복에 반복을 거듭할수록 나의 마음 통장은 더욱더 빈곤해진다. 나갈 시간이라고 알려주는 알람 소리를 들으며 하던 일을 멈추고, 습관처럼 달려 나가는 변함없는 일상의 연속이다. 하고픈 일들은 도대체 언제까지 미뤄야 할지 아쉬워하는 나의 이기적인 마음에도 속상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요즈음 누르고 눌러왔던 나의 마음에 불끈불끈 용솟음이 쳤다. 욕을 먹어도, 한동안 관계가 힘들어지더라도 벗어나라고! 내려놓고 줄 수 있는 것은 다 주고 포기하라고!  그냥 마음 편히 살라고! 뒷 생각하지 말고 마음 흘러가는 대로 살아보라고! 이제는 빠져나와도 굴러가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용기를 냈다. 대책 없지만 마음 가는 대로 적어도 석 달은 내가 나에게 큰 선물 하나를 주기로 했다. 여행도 다니면서 나의 인생을 되돌아보고 60대 이후의 삶도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나에겐 나만의 시간이 절실히 필요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동생에게 힘들게 입을 열었다. 새로이 일할 사람들을 찾아 재정비하여 조카가 운영할 수 있도록 하라고. 나는 12월까지만 함께하겠다고. 미안하지만 더 이상 나의 시간을 이렇게 보내고 싶지 않다고! 


동생은 문자를 보내왔다. 내일부터 안 와도 된다고....



순간 우리 사이의 의미는 마음이 몹시 쓰라리지만 희미해졌고 깨졌다. 더럽혀졌고 파괴되었다. 의미를 잃었다. 지금은 적어도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림태주 작가님의 말처럼 우리 사이의 심장은 멈췄고 죽었다.



언젠가 시간이 흐르면 우리 사이의 심장은 다시 뛸 수 있을까?

얼마나 긴 시간을 보내야 우리 사이의 심장이 다시 박동할 수 있을까? 



미안해요. 엄마! 한 달에 한 번은 함께 밥 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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