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나는 우선순위에 따라 일을 계획하고 잘 진행하는 편이다.
그런데 3월 초에 오픈되는 플랫폼 ‘오디오팝’에 업로드할 녹음파일 10개가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일인 줄 알면서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오히려 점자도서관에 두 권의 책을 녹음하여 보내기로 약속하면서 일을 더 벌였다. 이상하게도 업로드해야 할 한 권의 책은 잘하고 싶었지만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그 어떤 책보다도 녹음파일을 잘 만들어내야 하는데 부담스러웠다. 하다못해 어떤 날은 책 속의 글자들도 날아다녀서 책을 덮어버린 날도 있었다.
며칠 전 문득 낭독 때문에 갈등 속에 있는 나의 모습이 낯설어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늦은 나이에 1도 관심이 없었던 낭독을 어떻게 만나게 되었을까? 왜 하루도 안 빼고 낭독에 빠져사는 일상을 보내고 있는 것일까? 게다가 북내레이터로서의 꿈까지 꾸며 제2의 인생을 펼치고 있는 것일까? 때론 날아갈 듯이 기쁘다가도, 때론 원하는 대로 잘 되지 않아 땅굴을 파고 들어가 숨어있고 싶기도 한 그 낭독을!
나는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겼을 때를 제외하고는 반주자로서, 지휘자로서 찬양대를 30년 이상 섬겼다. 임신한 상태로도, 출산 바로 전날까지. 아이가 태어난 후에도 남편이 큰 아이는 목마를 태우고, 나는 아기바구니에 있는 갓 태어난 둘째를 옆에 놓고 바라보면서 섬긴 적도 있었다. 남편의 한국 연주가 잦아졌을 땐, 5살, 7살이었던 아이들을 새벽에 깨워 두 번의 예배와 찬양대 연습이 끝날 때까지 아이들에게 한자 쓰기, 책 읽기 등 과제를 듬뿍 주면서도 섬겼다.
그러나 곧 60세를 맞이하는 현재의 나는 몇 년 전부터 점점 찬양대를 섬기는 일이 주일마다 반복되는 루틴이자 일이 된 듯했다. 그저 주일이면 눈 비비고 일어나 아침 일찍 찬양 대원들을 만나 연습시키고 예배의 한 순서를 담당하는. 그런 나의 모습은 하나님께도 죄를 짓는 것 같아 늘 마음이 무거웠다. 한편으로 나의 삶을 돌이켜보면 어떻게든 하나님께서는 나를 사용하고 계신다는 확신이 들곤 했기 때문에 쉽게 용기도 못 내는 신앙생활이었다.
힘든 결정을 내렸다. 작년 1월, ‘쉬고 싶다’는 나의 강한 뜻을 관철시켜 지휘와 반주를 놓았다. 예전 같으면 병원신세를 지고 있을지언정 예배 걱정을 하며 마음이 편치 않았을 텐데 이상할 정도로 너무도 홀가분했다. 무거운 짐을 훌훌 벗어던진 듯했다. 그 와중에도 나는 낭독은 놓지 않았다. 마치 어릴 적 내가 원해서 시작했던 피아노처럼! 결국 북내레이터 방에도 들어가게 되었고, 곧 오픈될 오디오팝 북내레이터로 데뷔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그 기쁨은 잠시였다. 어떤 한 권의 책과 심적결투를 벌이다가 녹다운 샷을 맞고 쓰러져있었기 때문이었다.
때마침 나의 상태를 파악이라도 하신 듯 대표님과의 1:1 코칭 스케줄이 잡혔다. 한 시간 동안 피드백을 들으며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읽어나갔다. 어떻게 한 시간이 지나간지도 몰랐다. 마치 '낭독병원'에 들어가 '슬럼프'라는 진단을 받고 '말을 하라'는 처방약을 받고 나온 듯했다. 잃어버린 모든 것들을 다시 짚어주시며 차곡차곡 다시 찾아 채워주셨다. 텅 비어 있는 나의 머릿속이 다시 회복되는 듯한 귀한 시간이었다.
평소 내가 좋아하는 내레이터방의 한 선생님의 말씀이 나를 자극했다. “책이 좋아서! 그리고 좋은 책을 쓰신 작가님에 대한 존경심으로 더 잘 전달해야 하는 책임감을 갖고 낭독한다는! 책에 대한 예의를 지킨다는!”
순간 고개가 숙여졌다. 부끄러웠다. 나는 그 책을 사랑하지 않았다. 그 책에게 예의를 갖추지 않았다. 마음을 열지 않았다. 마음을 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또박또박 읽고만 있다는 피드백을 듣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책 표지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새 책 같았다. 처음 보는 듯했다.
<한 영혼의 구원을 갈망하게 하소서>
김두화 목사님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모여 편집. 나침반 출판사.
제목을 제목처럼만 읽으려고 읽고 읽고 또 읽었던 나의 미련한 하루가 떠올랐다. 책 속의 내용도 내가 정한 만큼의 테두리 안에서 받아들였고 더 깊이 들어가지 않았다. 교회로부터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종교서적을 만나 낭독하려 하니 강퍅해진 나의 마음이 더 강퍅해진 탓이었다.
한 권의 책을 진심으로 만나자고, 따뜻한 마음으로 책을 대하자고 마음을 바꾸고 난 뒤 책을 다시 펼쳤을 때 깜짝 놀랐다. 책 표지의 제목부터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었다. '그런가 보다'했던 책 속의 내용이 다르게 다가오면서 "이 상황 뭐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를 연발했다.
나도 젊은 시절의 김두화 목사님처럼 교회일을 열심히만 한 것이었다. 매주 같은 시간 나의 몸만이 같은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겉으로는 누구보다 열심히 교회생활을 하는 크리스천이었던 것이다. "도망가봐야 너는 네 손안에 있다! 나는 네 옆에 항상 있다! 나는 늘 기다리고 있다!"라고 말씀이 들렸다.
낭독을 만나고 북내레이터로 데뷔를 하게 되었고, 그리고 멀리하던 종교서적을 낭독하고 있는, 게다가 점자도서관에 힘이 들어도 나의 목소리로 파일을 만들어 자꾸 전해드리고 싶은 이 마음도 하나님의 계획하에 흐르고 있는 어쩔 수 없는 나의 삶일까?
일단은 낭독을 좋아하는 마음이 더 크기에 날마다 낭독은 계속해보렵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