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 만에 학창 시절 친하게 지내던 한 친구와 연락이 되었다.
가끔은 그리웠지만, 아니 연락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때뿐인 채로 세월이 흘렀다. 고맙게도 그 친구가 먼저 다른 친구에게 나의 연락처를 물어 카톡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마음은 무척 반가운데 너무도 오랜만인지라 무슨 말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낯설어 주고받는 대화의 간격이 길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곧 호구조사부터 시작하여 간단한 근황이야기까지 나누면서 오랜 세월 산더미처럼 쌓인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뜻밖에도 피아노가 전공이었던 친구는 국내에서 잘 나가는 아코디언 주자가 되어 바삐 살고 있었다. 아코디언 교본도 10권이나 출판하였다고 했다. 여전히 열심히 살고 있는 친구였다. 여전히 부지런한 친구였다. 그 후로 친구는 유튜브에 아코디언으로 연주하는 곡들을 업로드할 때마다 보내주며 안부를 전했다. 그 친구는 아코디언에 빠져 사는 듯했다. 아직 아코디언 소리를 친구만큼 좋아하지는 않지만 친구가 아코디언을 연주하니 가끔은 듣게 된다. 지난주였다. 아코디언으로 처음 듣는 Danny Boy의 <아, 목동아>였다. 순간 17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렸다. 아버지의 애창곡이었기 때문이다.
아 목동들의 피리소리들은
산골짝마다 울려 나오고
여름은 가고 꽃은 떨어지니
너도 가고 또 나도 가야지
저 목장에는 여름철이 오고
산골짝마다 눈이 덮여도
나 항상 오래 여기 살리라
아 목동아 아 목동아 내 사랑아
그 고운 꽃은 떨어져서 죽고
나 또한 죽어 땅에 묻히면
나 자는 곳을 돌아보아 주며
거룩하다고 불러 주어요
네 고운 목소리를 들으면은
내 묻힌 무덤 따뜻하리라
너 항상 나를 사랑하여 주면
네가 올 때까지 내가 잘 자리
어릴 적 아버지는 친구들을 만나 술 한잔 하시면 꼭 부르시던 두 개의 노래가 있었다. <아, 목동아>와 <삐빠빠룰라>였다. 어린 나이에도 <아, 목동아>는 멜로디의 흐름이 좋아서 귀 기울어 들었다. 그러나 내가 싫어하는 음악인 <삐빠빠룰라>를 부르시려고 하면 슬쩍 일어나 내 방으로 도망가곤 했다. 취기가 올라 붉어진 얼굴도 보기 싫었고, 아빠의 춤추는 모습 또한 가관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삐빠빠룰라>를 부르신 다음엔 꼭 아빠 친구들 앞에서 피아노를 쳐달라고 요청하셨다. 어떤 때는 아빠 친구들도 덩달아 연달아 신청곡을 마구 주문하셨다.
Gene Vincent의 "Be Bop A-Lula
https://youtu.be/rr9 d7 aBdy6 I
<아, 목동아>를 멋지게 부르시던 아버지!
<삐빠빠룰라>를 부르며 춤추시던 아버지!
창피하게도 경주로 가는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따라오셨던 아버지!
큰 딸인 나만 먼저 데리고 가는 맛집 탐방!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한마디에 씩씩거리며 부랴부랴 준비하여 떠나곤 하는 가족여행!
첫 서클 산악반에서 지리산 등반 때 따라오셨다가 힘들어하시며 돌아가신 아버지!
차는 사주시고 걱정이 되어 귀찮게 한동안 따라다니셨던 아버지!
아침마다 반짝반짝 빛나게 광을 내어 새 차로 만들어주시는 아버지!
신부입장할 때 눈물을 감추시던 아버지!
런던 유학시절 방문하셨다가 눈물 글썽이던 아버지!
출산 후 몸이 아파 돌볼 수 없었던 큰 아이를 봐주셨던 아버지!
아이들이 가끔 보며 웃을 수 있는 모든 사진은 아버지의 작품들!
사위도 아들처럼 챙겨주시던 아버지!
긴 병상생활 속에서도 늘 웃으시던 아버지!
지금은 그토록 듣기 싫어했던 'Be Bop A-Lula'도 들으며 웃음 짓습니다.
아, 목동아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듣습니다.
친구야! 덕분에 다시 아버지와 만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