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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독가 한희정 Apr 02. 2022

그래도, 오래된 것들에게 고개를 돌려라

 

얼마 전부터 ‘15분 필사’를 하기로 한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른 아침 비몽사몽으로 책상 앞에 앉았다. 소로우의 ‘월든’과 ‘일기’에서 명문장들을 선별하여 수록한 ‘소로우가 되는 시간’을 필사하면서 잠을 깨우고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이 시간이 참 좋다. 



                                    정원에 있는 세이지를 가꾸듯 가난을 가꾸라.

                                    옷이든 친구든 새것을 얻으려 애쓰지 말라.

                                    사치다.

                                    오랜 것들에게 고개를 돌려라.

                                    그것들에게 돌아가라.

                                    존재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변하는 건 우리다.                                  

                                                                                                        - 소로우가 되는 시간 중에서-



겨우 7줄밖에 안 되는 이 한 페이지를 필사하면서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가 없었다. 특히 ‘오래된 것들에 고개를 돌려라’라는 문장은 심오하게 나의 마음으로 파고 들어와 머릿속을 복잡하게 뒤흔들어 놓아서 잠시 멈춰있을 수밖에 없었다. 



필사를 마치고 ‘세이지 꽃’이 어떤 꽃인지 궁금하여 인터넷 검색을 했다. 세이지는 사람들의 특별한 관심을 받지 못해도 적응력이 좋아 햇볕만 잘 보면 잘 자라며, 추위에도 매우 강해서 봄에 핀 꽃이 서리가 내릴 때까지도 피어있는 꽃이었다. 


소로우가 말하는 ‘가난’은 물질적인 모자람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저 사심 없이 아름다운 자태로 정원에 피어있는 세이지 꽃을 보듯이, 소소한 일상을 있는 그대로 소박하게 받아들이고 단순하게 살라는 것이었다. 그 단순함으로 더욱 풍요로워질 수 있는 삶, 그러니까 ‘단순함’에서 비롯되는 ‘진정한 마음의 부’를 누리라는 것이었다. 



 한편으로 나는 바위를 비집고 나와 꽃을 피울 수 있을 정도의 강한 적응력과 생명력을 가진 세이지 꽃이 되어 질문을 던져 보았다. 세이지 꽃은 이 땅에 살아남기 위해 세이지만이 아는 남다른 에너지를 필요로 하지 않았을까? 혼자의 힘으로 잘 자라기에 사람들의 특별한 시선은 받지 못해도, 그만의 에너지로 꿋꿋이 버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랜 기간 음악을 해오면서 나만이 아는 의지와 끈기를 놓지 않았기에 가끔 찾아오는 고독을 이겨낼 수 있었고, 나에게 다가오는 영감으로 음악을 만들 수 있었고, 또 그 음악은 나의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 잡을 수 있었듯이 말이다. 


사실 나는 얼마 전부터 오랜 기간 해오던 그 음악과 멀어지려고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그냥 이제는 좀 색다른 새로운 일을 해보며 살아보고도 싶었다. 코로나 상황에서 연주는 이미 없어진 상태이기도 했고, 결국 30년 이상 해오던 반주와 지휘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만두었다. 다양한 목소리들을 합쳐 하나의 멋진 음악을 만들 수 있도록 돕는 지휘는 즐겼지만 찬양대가 없어졌기에 본의 아니게 계속할 수 없었고, 피곤한 몸으로 부담스럽게 하던 반주는 이제야 교회에서 받아들여져 공식적으로 올해는 쉬게 되었다. 


언젠가부터 얽매이는 것이 싫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즐기며 나에게 집중하며 살아가고 싶었다. 그래서인지 반주를 놓은 지 2개월이 지났건만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편하다. 예전에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한 주만 빠지게 되어도 나에게 주어진 일을 못했다는 자책감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던 나였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간이 나에게는 정말 오랜만에 가져보는 여유를 만끽하는 휴가 같다. 


요즘 나의 관심은 낭독의 매력에 빠져 온통 ‘낭독’에 있다. 솔직히 평생 해 온 음악 관련 일들은 오히려 경제적 필요에 의해하는 ‘일’이 되어있다고까지 느낀다. 내가 만난 오티움 ‘낭독’으로 콘텐츠를 쌓아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어보고 싶다. 


그러나 어느 날 나를 아끼는 친구들과 동료들은 내가 오랜 기간 해 온 음악과 접목시키면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나만의 특별한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고 조언을 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은 아쉬움에 마치 꼬집는 것 같은 그들의 조언을 그냥 스쳐 보냈었다. 


오늘 아침 필사한 소로우의 한 페이지는 나에게 진정한 충고로 다가왔다. 언제나 음악은 내 곁에 있었다. 늘 변함없이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소중한 것을 잠시 뒷전으로 하고 사치를 부렸다는 생각조차 들었다. 변화를 꿈꾼 건 나였다. 그토록 오랫동안 나와 동행해왔던 것을 버리고 오로지 새로운 것만을 취하려고 했다. 왜 하나를 버려야만 한다는 생각에 그리도 집착했을까? 여전히 넓게 보지 못하고, 포용하지 못하고 한 길만을 좇는, 그리고 그 하나에 오롯이 집중하는 ‘나’의 본성에서 벗어나는 것은 힘들었 것 같다.


내가 평생 해 온 음악을 낭독과 연결 지어 특별한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동안 꼬였던 문제들의 실타래가 풀어지는 듯하다.  한동안 삶이 지루해서 탈피하고 싶어 했던 ‘음악’을 마음에 품으니 오히려 신선한 설렘으로 다가온다. 


어릴 적 첫사랑으로 만나 지금까지 함께 해오는 ‘음악’과 코로나 후에 만나게 된 두 번째 사랑 ‘낭독’의 결합! 정말 멋지게 탄생할 것 같지 않은가? 만병통치약으로 알려진 세이지보다는 못해도 음악과 낭독으로 누군가에게 위로와 힘을 건네줄 수 있는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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