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가끔 연락하며 지내는 성우님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유튜브 들어보니 음성도 감성도 진짜 좋으세요~. 충분히 '자신감'과 '자만심'을 가지시고 쭉 밀고 나가면 되시겠네요~ 진심 가득 담아 응원해요.”
성우님의 응원 한마디에 금방 힘이 불뚝 솟았지만, 순간 내가 잘못 읽은 것은 아닌가 의아하게 여기며 눈에 힘을 주어 감았다 뜨고는, ‘자만심’이란 단어로 다시 향했다. 내가 알고 있는 '자만심'이란 '자신에 관한 것을 스스로 자랑하며 잘난 척하는 마음'이기 때문이었다. 자만심이 가득 찬 사람들은 보통 거만하다, 건방지다, 자기중심적이다... 등의 평가로 좋지 않은 시선을 받기 때문이었다. 나 또한 언젠가부터 나의 자만감을 죽이려고 노력해왔기 때문이었다. 겸손함이 미덕이라는 것이 사회적 통념인지라 자만심은 부정적인 면에 더 가깝기에 '자만심을 버리는 방법', '자만심에 빠지지 않는 방법', '자만심을 경계하는 법' 등의 조언과 충고의 글들만 쉽게 만날 수가 있다.
어릴 적 나는 부모님의 과잉보호로 독립적이지 못한 결정 장애아였다. 내가 입고 싶은 옷 하나를 내 맘대로 결정 못하는 아이였다. 대학 시절까지도 엄마가 골라주시는 옷만, 설사 싫어도 따지지 않은 채, '무조건 감사'하는 마음으로 입었던 아이였다. 친구들과 식당에 가서도 내가 먹고 싶은 것조차 선뜻 말하지 못하고 고민하다가 "나도." 하며 친구들과 같은 것을 시키던 아이였다. 사실 그런 일상의 소소한 선택들은 나에게 그다지 중요하게 여겨지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집 밖에서 나의 자만감은 하늘을 찌를 듯한 아이였다. 초등학교 시절 환경 설문조사를 할 때 우리 집에는 다 있다고 자랑스럽게 계속 손을 번쩍번쩍 들며 친구들의 부러운 눈길을 받았다. 티브이가 흔하지 않던 시절 스포츠 경기를 보려고 동네 아저씨들이 티브이가 있는 우리 집으로 모여 집안이 시끌벅적할 때도 많았다. 피아노 레슨을 시작하기도 전에 거실에 아버지가 사다 놓으신 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뭐든지 내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바로 부모님은 다 내 앞에 갖다 놓으셨다. 하다못해 대학시절 운전면허를 치른 바로 다음 날 아침, 도로 주행 연습도 안 한 나를 위해 우리 집 앞에는 번쩍거리는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경제적으로 넉넉한 부모님과 그 사랑에 자만심이 넘쳤다. 그러나 결국 나는 ‘안하무인’의 건방진 아이가 되어 점점 또래 친구들과는 잘 어울릴 수 없었다.
대학 입학 후 산악반 서클에 가입을 했다. 부모님과 부딪힘 없이 공식적으로 허락을 받아 부모님의 울타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첫 등반은 지리산 종주 3박 4일의 산행이었다. 드디어 나의 의도에 따라 부모님의 틀 안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하니 나의 마음은 약간 두렵기도 하였지만 맘속으로는 ‘야호!’를 외쳤다.
드디어 산행이 시작되었다. 숨이 찼다. 쨍쨍 찌는 여름날의 등반인지라 땀이 뻘뻘 났다. 계곡에서 흐르는 물을 볼 때마다 달려가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나의 마음과 다리는 따로 놀았다. 나의 다리는 내 것이 아닌 듯했다. 산에서는 확 튀어야 한다며 엄마가 골라주신 하늘색 등산복은 더 이상 하늘색이 아니었다. 설상가상으로 다음 날 예기치 않은 폭풍을 만났다. 등반은 불가능했다. 이상기후로 인해서였다. 결국 노고 산장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마치 날아갈 것 같은 세찬 비바람이었다. 산장 안은 폭풍을 피해 산행을 중지한 사람들로 꽉 채워져 북적북적한 동대문 시장 같았다. 순식간에 가능한 한 모든 공간을 이용하여 빽빽하게 층층으로 설치되는 해먹 (hammock, 그물침대), 사람들의 퀴퀴한 땀냄새와 역겨운 발 냄새, 참기 어려운 끈적거리는 습기…. 산장 밖으로 나가 맘껏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싶었지만 마음뿐이었다. 당연히 밥도 해 먹을 수가 없어서 시중에서 300원짜리 에이스 크래커를 900원이나 주어야 구입할 수 있었다. 그것도 곧 다 팔려서 더 살 수도 없었지만. 생전 처음 건빵을 먹으며 끼니를 때웠다. 눈물의 건빵이었다. 아버지가 주시고 간 돈은 무용지물이었다.
그때 난 건빵을 씹으며 조용히 엉엉 울었다.
그때 난 돈이 세상의 전부가 아님을 알았다.
그때 난 내가 뭔가 잘못 살아왔음을 깨달았다.
그때 난 내 나이에 맞게 살아오지 못한 내가 보였다.
그때 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야 함을 배웠다.
그때 난 자만심으로 꽉 차있는 나의 모습을 보았고
그때부터 난 나의 자만감을 부숴버리고자 다짐했다.
그 후로 30년이 지난 지금 성우님의 한 말씀은 나를 깊이 건드리며 생각에 잠기게 한다.
왜 완전히 자만심을 부숴버리려고만 했을까?
왜 무조건 나쁘다고만 여기게 되었을까?
왜 “당신이 다 옳아요.”, "당신이 저보다 훨씬 나아요." 말을 했을까?
왜 나름 최선을 다했는데도 "별로예요~", "별로 애쓰지 않았어요~"라고 말했을까?
적어도 내가 들인 나의 시간, 노력, 그리고 열정으로 탄생한 나만의 작품에 대해서는 나 자신에게라도 칭찬을 해주었어야 했다. 격려를 해주었어야 했다. 비록 객관적으로 많이 모자랄지라도 말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자만심은 어느 정도 필요한 것이었다.
또한 그 자만심도 나를 사랑하는 한 방법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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