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나의 낭독 시계가 멈췄다. 낭독시계가 앞으로 가기는커녕 오히려 뒤로 가는 듯했다. 낭독의 기초부터 다시 재점검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아 한 성우님과 상담을 하고 곧 시작될 기초반에 등록하기로 했다. 하루라도 빨리 시작되길 바랐는데 인원에 변동이 있어 두어 달 기다렸다. 시간이 너무 빨라 다가오는 수요일이면 벌써 7주 차 수업이다. 그런데 아직도 나의 낭독시계는 작동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듯하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늘 하는 말이 있다. 무조건 피아노를 치면 안 된다고. 피아노 의자에 오래 앉아있는다고 연습을 많이 한 것은 아니라고. 연습할 때 선생님이 알려준 방법으로 피아노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음악을 만들어야 한다고. 그런데 웬일? 지난 세월 낭독과 함께 한 세월을 돌아보니 나는 몸으로 때우는 학생이었다. 무조건 연습만 한 학생이었다. 무조건 먼저 소리 내어 읽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목이 쉬기도 하고 지치기도 하고. 마치 책상에는 장시간 앉아있지만 공부는 잘하지 못하는 학생처럼. 연습은 했다고 말하는데 진척이 없는 아이들처럼.
요즘 내 글 오디오북을 만들기 위해 1년 전에 쓴 나의 글들을 낭독하고 있다. 그런데 “낭독은 그냥 소리 내어 읽는 것이 아니었다. 말하듯이 읽는 것이었다.”라고 쓴 문장을 보니 마음이 쓰리다. 예전보다 더 ‘말하는 낭독’을 못하고 있는 듯하다. 답은 알고 있지만 그 답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아직도 헤매고 있다.
4월 한 달은 한국으로 긴 여행을 떠나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을 마무리하려고 했다. 낭독 수업에 좀 더 충실히 임하면서 콜라낭독과 오디오펍에 업로드할 녹음작업도 미리 하고, 한국에서 열릴 낭독회 준비와 해오던 목소리 봉사녹음도 완성하려고 했다. 그런데 낭독에 집중하는 만큼 팍팍 늘지도 않고 시간만 간다. 벌써 4월의 반이 지나갔건만 내 앞에 쌓이고 있는 것은 성과가 아니라 부담감이다.
그래도 내가 제일 잘한 일은 마음을 비우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보기로 한 기초반 등록이다.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던 나의 단점들, 정확하지 않은 발음과 운율을 알게 되어 고치려고 노력 중이다. 낭독을 할수록 호흡과 발성이 부족하다고 느끼곤 했었는데 함께하는 선생님들과 날마다 훈련을 하고 인증을 하다 보니 확실히 책을 읽을 때 마음이 편안하다. 호흡훈련은 마음근육과도 연관이 되어 있는 것 같다.
공감낭독자 <북텔러리스트 지음, 샨티>를 읽었다. 여러 성우님들의 에세이를 읽으며 다시 한번 낭독의 길은 쉬운 길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나도 언젠가 제대로 된 낭독의 길에 서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꿈은 버릴 수가 없다.
내가 먼저 시간을 들여 책과 친해지고, 그 시간을 통해 나를 설득해야 한다. 그래야 그런 설득력이 듣는 사람에게도 공감을 이끌어내고, 그것이 그들 마음에 작은 파문이라도 일으킬 수 있을 테니 말이다. p280
‘지금 이 순간’ 독자와 함께 호흡하며., 한 발 한 발 함께 이야기 속을 걷는 것이 낭독이다. 우리가 말을 할 때, 대개 지금 눈앞의 사람이나 상황에 맞게 반응하고 느끼며 말을 하는 것처럼, 낭독도 그럴 수 있을 때 ‘지금의 이야기’로 살아나는 것이다. p296
책 <공감낭독자>에서 이진숙 연출가님이 말씀하셨듯이 낭독은...
소리를 내기 전에 먼저 상상으로 소리를 들어보는 것,
눈으로 책을 읽으면서 들려오는 말소리를 상상해 보는 것,
화자의 음색, 말의 속도, 억양, 말과 말사이의 간격, 말에 담긴 감정등.
그런 다음 내가 그들이 되어 말한다고 상상하면서 소리를 내는 것.
이 내용을 읽으면서 나의 동공이 커지며 심장이 뛰었다. 황홀경에 빠진 듯했다. 이렇게 낭독해보고 싶은 욕구가 솟구쳐 올랐다. 이렇게 낭독을 하면 소위 성우님들이 말씀하시는 '그분'이 오신 것이리라.
샘들은 내게 물었다. 왜 다시 기초반부터? 왜 또? 왜 나는 낭독을 계속하느냐고? 왜 계속 배우느냐고? 등.
왜? 한마디로 '낭독'은 나에게 늘 한결같은 '설렘'을 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낭독 덕분에 나의 몸과 마음도 사랑하게 되기 때문이다.
까짓껏 삼 세 번이라는데, 이제 한 번 밖에 안 했다.
지금까지 몸으로 때우기만 한, 열심히만 한 학생이었다면 이제는 제대로 잘해보자.
다시 시작하자.
2023년 4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