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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독가 한희정 Mar 28. 2023

양파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정남 성우님과의 시 낭송 클래스에서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양파>라는 시를 만났다.

폰란드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Wisława Szymborska)의 이름이 낯설기도 했고, 제목이 양파라는 점도 특이하게 다가왔다.


우리는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누군가에게서 예상치 못했던 결과를 듣게 되었을 때 흔히 양파 같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까도 까도 모를 사람이라고. 또 뭘 더 숨기고 있느냐고. 그러나 시인은 양파를 겉과 속이 일치하는 성공적인 피조물이라고 예찬한다. 한 꺼풀, 한 꺼풀 벗길 때마다 크기만 작아질 뿐 늘 한결같은 양파의 모습과 우리 인간 안에 감춰져 있는 아수라장 속성을 비교한다. 게다가 양파가 가진 완전무결한 무지함은 우리 인간에겐 결코 허락되지 않는다고까지 했다.


성우님은 말씀하셨다. 너무 가볍지 않게, 너무 무겁지 않게 읽으면 좋겠다고. 양파와 우리의 모습을 비교, 비판하면서 너무 심오하게 접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길이가 긴 시니까 너무 느리지 않게 단을 구별해 주면서 읽어보라고.


양파는 요리할 때 흔히 쓰이는 기본 요리 재료 중 한 가지라 집집마다 풍부하기도 하지만, 나는 눈물 콧물이 나게 하는 양파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낭송할수록 평소 별로 달갑지 않은 그 양파가 반짝반짝 빛나 보였다. 양파의 모습을 시로 담은 시인도 존경스러웠다. 나는 내가 들어본 모든 사람들의 낭송과는 좀 다르게 접근하고 싶었다. 나는 기분 좋게 만드는 양파를 좀 경쾌하게 표현하고 싶어 음악도 좀 밝은 것을 골랐다. 너무 가볍게 하지 말라는 성우님의 말씀을 뒤로하고! 내 맘 가는 대로~^^


https://www.porlery.com/cast/5935305


양파 _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양파는 뭔가 다르다

양파에겐 '속'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다

양파다움에 가장 충실한,

다른 그 무엇도 아닌 완전한 양파 그 자체이다.

껍질에서부터 뿌리 구석구석까지

속속들이 순수하게 양파스럽다.

그러므로 양파는 아무런 두려움 없이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우리는 피부 속 어딘가에

감히 끄집어낼 수 없는 야생구역을 감추고 있다.

우리의 내부, 저 깊숙한 곳에 자리한 아수라장,

저주받은 해부의 공간을,

하지만 양파 안에는 오직 양파만 있을 뿐

비비 꼬인 내장 따윈 찾아볼 수 없다.

양파의 알몸은 언제나 한결같아서

아무리 깊숙이 들어가도 늘 그대로다.

겉과 속이 항상 일치하는 존재.

성공적인 피조물이다.

한 꺼풀, 또 한 꺼풀 벗길 때마다

좀 더 작아진 똑같은 얼굴이 나타날 뿐.

세 번째도 양파, 네 번째도 양파,

차례차례 허물을 벗어도 일관성은 유지된다.

중심을 향해 전개되는 구심성의 푸가.

메아리는 화성 안에서 절묘하게 포개어졌다

내가 아는 양파는

세상에서 가장 보기 좋은 둥근 배.

영광스러운 후광을

제 스스로 온몸에 칭칭 두르고 있다.

하지만 우리 안에 있는 건 지방과 정맥과 신경과

점액과, 그리고 은밀한 속성뿐이다

양파가 가진 저 완전무결한 우둔함과 무지함은

우리에게는 결코 허락되지 않았다.





게다가 성우님 덕분에 내가 한동안 매일 아침 즐겨 쓰던 모닝페이지로 리라이팅을 해보았는데,  <양파>는 멋진 나의 시 <모닝페이지>로 재탄생하였다. 리라이팅은 어휘력을 늘릴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될 것 같기도 하다.



모닝페이지 / 리라이팅 스테파니아


모닝페이지는 뭔가 다르다.

모닝페이지에겐 '거짓'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다.

모닝페이지다움에 가장 충실한,

다른 그 무엇도 아닌 완전한 모닝페이지 그 자체이다.

첫 줄에서부터 마지막 줄 구석구석까지

속속들이 순수하게 모닝페이지답다.

그러므로 모닝페이지는 아무런 두려움 없이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현실은 마음속 어딘가에

감히 접근할 수 없는 철장을 감추고 있다.

내면의 세계, 저 깊숙한 곳에 자리한 흑영,

저주받은 열등감의 공간을,

하지만 모닝페이지 안에는 오직 모닝페이지만 있을 뿐

비비 꼬인 자존심 따윈 찾아볼 수 없다.

모닝페이지의 본질은 언제나 한결같아서

아무리 깊숙이 들어가도 늘 편안하다.


생각행동이 항상 일치하는 삶

성공적인 인생이다.

하루, 또 하루 맞이할 때마다

좀 더 진짜 나의 모습을 알아갈 뿐,

세 번째도 모닝페이지, 네 번째도 모닝페이지,

날마다 다른 날을 맞이해도 일관성은 유지된다.

나 자신을 향해 전개되는 일상의 푸가.

메아리는 화성 안에서 절묘하게 울려 퍼지고 있다.


내가 아는 모닝페이지

세상에서 가장 쉬운 나 알아차리기.

영광스러운 후광을

제 스스로 온몸에서 발산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 안에 있는 건 과욕시기질투

다툼과, 그리고 허상뿐이다.

모닝페이지가 가진 저 완전무결한 명상

믿지 않는 자에게는 결코 허락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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