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에서 대면으로

첫 째날 춘천

by 한희정

오전 9시 50분 잠실 출발 춘천행 직행 시외버스를 탔다. 다행히 잠실에 사는 동생은 행복이 산책도 시킬 겸 아직 동네파악을 다하지 못한 나를 위해 배웅을 해주었다. 한국 시스템에 익숙하지 못한 모든 나의 행동은 어딜 가도 어설프다. 분명 겉모습은 한국인인데 승차권 스캔도 몇 번이나 다시 해야 할 정도로 주위의 시선을 모으며 버스에 올라탔다. (미국 시골에서 처음 서울 구경 온 어리벙벙한 할머니 느낌이다. 하하)


한국에 도착한 후 비교적 시차적응을 잘하고 있는 편이지만, 그래도 새벽 3시경이면 어김없이 정신이 맑아져 눈이 떠지고, 9시에서 10시경이 되면 다시 드러눕고 싶어 진다. 결국 차창밖의 정경을 우아하게 즐기기는 고사하고 어느 틈에 정신없이 잠에 빠져들었던 나는 10분 후면 도착한다고 알려주는 운전사 아저씨의 마이크 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순간 몹시 창피! 하하)


버스가 터미널에 정차하려고 천천히 움직이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 가운데 정민쌤이 한눈에 쏘옥 들어왔다. 세상에 살다 보니 이런 만남도 있구나 싶었다. 해가 세 번이나 바뀌면서 매주 비대면으로 함께한 사람, 나처럼 음악으로 살아온 사람, 성격도 많이 비슷한 사람, 늘 용기와 격려로 힘이 되어준 사람, 때론 속상한 일도 들어주는 사람을 처음으로 대면하는 것이다.


줌 화면으로 볼 때보다 막상 만나자마자 언뜻 떠올린 정민쌤의 모습은 '여리여리', '야리야리'였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그 에너지들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왜케 말랐어요? 아니 내가 너무 튼튼한가요? 하하.)


이야기할수록 참 마음이 곱고 따뜻해서 안아주고 싶은 예쁜 사람이다. 자연과 책과 이야기를 나누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함께하는 내내 그 풍요로운 마음이 전달되어 덩달아 부자가 되는 듯하다. 언제 만나도, 한참 만에 만나도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온, 전혀 낯설지 않은 지기지우(知己之友) 같다.


우리가 제일 먼저 간 곳은 정민쌤이 카누 타는 의암호였다. 가는 길이 참 예뻤다. 마치 우리들만의 길인 듯 한적했다. 도착 후 하늘을 쳐다보자 속이 뻥 뚫렸다. 순간 줄지어 운행되고 있는 케이블카도 타보고 싶은 충동도 느꼈다.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니 한마디로 완전한 평화였다. 완벽한 고요였다. 절로 여유로워졌다. 감정 찌꺼기가 다 걸러지는 듯했다. 인스타에서 볼 수 있었던 정민쌤의 카누 타는 모습도 그려졌다. 낭만과 이야기가 끊임없이 살아 움직일 수 있는 곳이 이곳이 아닐까 싶었다.




약간 출출하던 차였는데 두 번째로 간 곳은 도토리마을이란 식당이었다. 신발을 벗고 바닥에 털썩 앉아서 먹는 식당이 아니라 신발은 벗었는데 집에서 처럼 세팅된 테이블에 앉게 되어 있었다. 처음 먹어 본 도토리 샐러드는 쫀득거리면서 새콤달콤 맛이 있었다. 게다가 해물파전과 도토리 콩국수까지 뱃속을 가득 채웠다. 두 여인이 3-4인분을 먹어치었다. 하하.


다음으로 향한 곳은 '있는 그대로'라는 카페였다. 카페이름부터 마음에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말이다. '실레책방'으로 가는 길 도중에 있는 카페 '있는 그대로'는 정말 '있는 그대로'였다. 주인아주머니는 (죄송하지만 사장님이란 표현보다는 따뜻한 주인아주머니라고 호칭하고 싶다.) 아메리카노 커피 두 잔을 시켰는데 엑스트라로 커피와 차까지 푸짐하게 주셨다. 탁 트인 공간과 편안하고 밝은 디자인이 맘에 들었다. 슬쩍 운영이 될까 염려스러웠지만, 우리 둘만의 시간과 공간을 충분히 만끽했다. (정민쌤 왈, 적자는 아니라고 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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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이지 않는 이야기를 멈추고 일어나 '실레책방'으로 향하였다. 실레라는 마을에 있어서 실레책방이란다. 검색해 보니 '실레'는 원래 '시루'라는 뜻이고, 시루처럼 아늑하게 금병산에 안겨있다고 해서 실레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실레마을은 작가 김유정의 고향으로, 우리 귀에 익숙한 [봄봄], [총각과 맹꽁이], [소낙비], [동백꽃] 등 12편의 소설이 고향인 실레마을을 소재로 쓰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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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주인이 없으면 1. 편하게 놀다 가세요. 2. 책구입은 계좌이체로. 3. 궁금한 게 있으면 전화하세요. 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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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이어서인지 주인은 물론 다른 방문객도 없었다. 책상 위에 놓인 책방주인의 당부 말씀대로, 편안한 우리 집인 양 오롯이 둘만의 이야기 꽃을 한참 동안 피우며 놀았다.


오늘 가본 두 곳! 카페 '있는 그대로'와 '실레책방'을 합친 곳에서 사는 것이 나의 로망이다.


있는 그대로!

책과 차가 있는 곳!


하나로 합쳐진 멋진 모습을 그려보며 오늘 하루를 마감한다.


내일은 강릉으로~













고스란히 춘천의 추억이 영원히 남아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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