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세계로 내려가는 옥색 시트지 입구
내가 들어가야 하는 건물의 첫 인상은 싸구려 모텔 같네 였다. 사실 나는 지하철에서 내려서부터 줄곧 집에 가고 싶은 마음과 싸우는 중이었다. 집에서 너무 멀리 왔다는 사실만 아니었다면 그냥 일정을 취소하고 평소 하던대로 익숙하게 카페나 가서 커피 한 잔에 달달한 디저트나 한 입 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추운 날씨와 어둑어둑한 길거리가 그런 기분을 부추기고 있었다. 낯선 동네니 괜히 헤매지 않기 위해 일단 어딘지 확인이나 해두자 하고 꾸역꾸역 걸어 잠시 후 내가 들어가야 할 건물 앞을 찾아왔지만, 입구를 보고 난 뒤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한 층 더 강해졌다. 검은 외벽에 여기가 입구다 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 붙인 옥색 시트지 인테리어는 왠지 모르게 허름한 모텔 데이트를 떠올리게 했다. 아마 민트색이 유행인 걸 의식해 이 정도면 예뻐보이겠지 하고 대충 엇비슷해 보이는 색깔을 골라 붙여놓은 가성비가 느껴지는 인테리어가 모텔을 떠올리게 하는 일등 공신이었을 것이다.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무슨 소리라도 들릴텐데 약간의 소음도 나지 않는 것이 미심쩍어 조금 더 가까이 가 보았다. 지하로 난 계단은 어두컴컴했고 가로등을 켜기에는 이른 애매하게 어두운 저녁 시간 아직 불이 들어오지 않은 간판은 볼품 없었다. 벽에는 무언가 하고 있다는 듯 보이는 포스터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지만 정돈 되지 않은 엉성한 외관은 ‘여기서 정말 뭘 하는 게 맞아?’ 라는 의심과 초조함이 들게 했다. 뒤돌아 나왔을 때 새삼 안팎이 다 조용한 것이 의식 됐다. 아까부터 인파가 줄어있던 골목이 눈에 들어왔다. 토요일 저녁 번화가에서 감지한 한적함은 나만 잘못된 곳에 와 있다는 느낌이 들게 만들었다.
나는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동안 잠시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된 듯한 기분을 누렸다. 이유도 알려주지 않은 채 생트집을 잡으며 모델을 괴롭히는 디자이너에 빙의해 마네킹처럼 서있는 가게 앞 입간판이나 메뉴판에 하나하나 꼬투리를 잡고 다녔다.
다 좋은데… 좀 허전하네. 나쁘진 않은데… 좀 뻔해. 식상하다, 자기야. 닭장이야? 저기서 먹다 말하면 옆 테이블 접시에도 침이 튀겠어. 가족사에 어제 애인이랑 헤어진 얘기까지 다 듣고 나올 땐 베프 돼서 나오겠네. 토요일 저녁에 이런 데가 말이 된다고 생각해? 좀 더 고급스럽게 안 되니? 아직 이 씬의 생리를 잘 모르나 본데 여기선 브랜드가 곧 나고, 가격이 내 가치를 결정해. 세상에, 얼마나 더 말해줘야 알 거야? 입간판은 표지 사진이나 다름 없는 거 몰라? 사진을 이렇게밖에 못 찍어? 냉동 식품이야? 시체 보관소에서 꺼낸 냉동 시체 같잖아. 저걸 보고 먹을 생각을 하라고? 너 같으면 먹겠니?
혹은 프라다를 입은 고든 램지였거나.
불안함은 나를 계속 까탈스럽게 만들었다. 나는 계속 상관 없는 것들에 꼬투리를 잡으며 여전히 내가 상황을 통제할 수 있음을 확인하고 싶어 했다. 결정권이 내 손 안에 없다는 것은 이토록 별 것 아닌 일에도 사람을 예민하고 신경질적으로 만들었다. 좋고 나쁨의 문제는 아니었다. 좋을지 나쁠지에 거는 작은 모험은 일상에서 즐길 수 있는 몇 안되는 스릴이었다. 미지의 것이 만들어내는 불안함은 그 이후의 문제에 관한 것이었다. 나쁘다면, 아쉽겠지만 그런대로 괜찮았다. 음, 그래.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지금 상태에 머무를 수 있으니 마음 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만약에 좋다면? 그 다음은 어떡할 건데? 생각해봤어? 나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해 몰두할 거리가 필요했고 토요일 저녁에 어울리는 완벽한 메뉴 고르기는 마침 그 목적에 적당한 미션이었다. 닭고기 크림 스튜와 가지 치즈 그라탕 같은 따뜻하고도 약간은 특별한 날 기분을 내는 음식을 먹으며 아늑하면서도 티 내진 않지만 고급스러움이 풍기는 식당에 앉아 있으면 기분이 나아질 것 같기도 한데. 적당히 혀를 달래주고 포만감을 느끼고 나면 이 까칠한 기분도 가시고 다 괜찮아지겠지. 나는 응석받이 애기 도련님처럼 잔뜩 예민해진 내 기분을 어르고 달래며 내가 올바른 곳에 와 있다는 확신을 줄 만한 포근하고 안심되는 장소를 찾아 헤맸다. 하지만 만만치 않던 이 응석받이 도련님은 찾은 곳마다 가는 족족 트집을 잡아댔고,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한참을 허비하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30분 남짓, 식당을 찾고, 먹고 나와서 다시 그곳으로 가는 데까지 25분 안에 마쳐야 했다. 결국 우리는 완벽한 메뉴를 찾아냈다. 주문에서 식사 완료까지 15분만에 마칠 수 있는 완벽한 메뉴였다. 역에서 나와 처음 마주쳤던, 여기는 올 일 없겠지 하고 슥 지나쳤던 분식집에 들어가 떡볶이와 김밥을 먹었고 무려 여유 시간 10분을 남기기까지 했다. 커피 한 잔 할 시간까지 만들어주다니, 이것 참. 헛헛한 속과 허탈한 기분을 가눌 길이 없어 분식집에서 나오자마자 충동적으로 눈 앞에 보인 커피빈으로 달려가 달달한 아이스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하지만 돌아서 나오는 순간 곧바로 기분은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 쳐야 했다. ‘멍청이, 들어가면 거기서 파는 술이나 음료를 또 사 마셔야 할텐데 지금 여기서 커피를 사다니.’ 이런 날 헛돈을 쓰기까지 하는 것 만큼 씁쓸하고 기분을 잡치게 하는 일도 또 없었다.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엉뚱한 데서 기대를 충족시키려 하니 부작용이 일 수 밖에 없었다. 시종일관 나를 들쑤신 이 거부 반응처럼 말이다. 한 손에 커피를 든 채 그 앞에 다시 돌아왔을 땐 처음보다 한 층 더 우중충한 기분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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