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5일 화요일

자프키엘 대천사 (터콰이즈/ 딥마젠타)

by Redsmupet

Keynote : 개성화와 고도화된 창조성을 위한 내면의 여성적 신성으로부터의 지원. 사랑과 진실의 결합

Affirmation : 과거를 놓아버릴 때 의식의 바다가 내 앞에서 열립니다.


"엄마 이과지?"

큰 딸이 느닷없이 던진 말에 왜 이렇게 느낌이 싸하지? 왠지 기분도 좀 나쁘려고 하고 말이야.


실제로 난 이과다. 고등학생 시절 이과와 문과를 나눌 때 이과를 선택한 이유는 하나였다. 암기과목이 싫었다. 외우는 게 싫었다. 수학처럼 문제를 풀어서 정답을 내는 그런 과목이 좋았다.


어쩌면 나에게 문과가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건 30대 중반이 넘어서였다. 사람들은 이과라면 딱 떨어지는 걸 좋아하는 사람, 모든 걸 논리적으로 풀어내려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살다 보니 딱 떨어지는 걸 좋아하는 건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에서 나온 것이었다. 확실함에는 "+ 알파"가 없으니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으로부터 뒤통수를 맞을 일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논리적으로 풀어내려는 성향은 나를 방어하기 위한 몸짓이었다. 논리를 갖다 붙이면 아무도 나를 공격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나의 세상을 온전하게 지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생존을 위해 획득한 성향, 이게 정말 나의 본래 성향일까, 30대 중반 어디쯤에선가 문득 궁금해졌더랬다.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었다. 진짜 나를 확인하고 싶었다. 영문학을 배워보기로 했다. 방송통신대학교에 1학년으로 입학해서 영문학을 배웠다. 영미 소설과 희곡을 배우며 외우는 게 너무 많다고 외면했던 문과가 어쩌면 나에게 맞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수년이 지난 지금도 영문학 강의를 들으며 느꼈던 감동을 기억한다.

뭐야~ 문학 이거 멋진 거였잖아!!


불확실성, 여기저기 뻗어있는 길, 샛길까지 다 따지면 한도 끝도 없는 "+ 알파"들은 두려워할 게 아니었다. 그건 인생을 살아볼 만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매너리즘에 빠질라 치면 어느새 새로움 속으로 나를 데리고 가는 게 바로 그 "+ 알파"들이었다.


나 문과 체질이었나 봐!

이렇게 결론을 내리려 했는데 딸은 내가 딱 이과란다.

논리적으로 풀어내려는 성향, 딸이 나에게 살짝 짜증 섞인 말투로 "엄마 이과지?"라고 물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일 테다. 논리적으로 잔소리하는 엄마, 안 그래도 감성을 주체할 수 없는 아이가 사춘기 한가운데서 엄마의 논리적인 잔소리를 들으려니 미칠 지경일 테지.


사실 이건 내 몸에 밴 습관이다. 언제부터였을까? 나의 이런 사고패턴, 말투는 정말 논리적인 것일까? 혹시 내가 만든 틀에 모든 걸 끼워 맞추고 싶은 나의 고집은 아닐까? 불확실성이 두려워 확실성의 세계에서만 살고 싶었던 내가 만들어낸 틀이 나를 논리적인 사람이라 오해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고집'이라면 어려서부터 일가견이 있었으니까. 내 고집은 아무도 말릴 수가 없었다. 오죽하면 사주를 볼 때마다 점치는 사람이 나에게 꼭 하는 말이 있었으니, 그 고집 꺽지 않으면 제 명에 못 산다는 경고였다.

오래 살고 싶다.

말랑말랑해져야 오래 산다는데 아직도 난 딱딱한 구석이 더 많다. 이제 충분히 말랑말랑해지지 않았나 생각했건만 딸의 뼈 때리는 말 한마디가 나의 딱딱함을 상기시킨다.


자프키엘 대천사, 오늘 아침 이 바틀을 선택한 건 어제 꿈에서 이 바틀을 선물 받았기 때문이다. 자프키엘 대천사는 말한다. 과거를 놓아버릴 때 의식의 바다가 내 앞에서 열린다고. 과거를 놓아버린다는 것, 어쩌면 그건 내가 확실하다고 쥐고 있던 걸 놓아버리는 걸지도 모른다. 이 틀 안에서는 안전할 거라며 꽉 움켜쥐고 있던 틀을 놓아버리면 다시 말랑말랑해질 거라고 말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게 모두 과거의 것들이니까.


잔소리가 나오려 할 때, 코로나 시대에 슬기로운 가정생활을 하려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나의 틀 말고 너의 틀을 보려는 역지사지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딸, 네가 가진 틀을 좀 볼까? 너의 세계에서는 너의 행위가 어떤 의미인지. 왜 나의 잔소리가 너에게는 그렇게 억울하고 부당한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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