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21일 목요일

카마엘 대천사 (핑크/ 마젠타)

by Redsmup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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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note : 있는 그대로 그러하다. 사랑을 위한 새로운 시작.


Affirmation :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사랑합니다. 나는 내가 되고자 하는 것을 놓아버립니다.



"손 떼, 이 귀신아. 당신은 당신의 동물을 살지 않았어!"


레드북의 한 구절,

수업을 듣기 전 수업 분량의 책을 읽다 화들짝 놀랐다.

책이 나에게 소리치는 것 같았다.


"손 떼, 이 귀신아."


융은 심연으로 하강하면서 귀신을 만나고 있었다. 옛 그리스도 교파 중 한 무리, 정통 그리스도교도들에게 무참하게 처형을 당했던 재세레파 귀신들.

웃기기도 하지? 그들에게 소리치는 융의 말에 왜 내가 놀라는 거야? 내가 귀신 이기라도 한 거야?


<그림자를 판 사나이>였나? 이런 제목이었던 것 같다. 갑자기 생각난 옛이야기.

혹시 나도 내 그림자를 팔아버린 거 아니야?


이야기 속 남자는 금화에 눈이 멀어 악마에게 자신의 그림자를 판다. 그림자 하나 팔아서 부자가 되었으니 이 보다 더 좋은 거래가 어디 있을까? 하지만 사람들은 그림자가 없는 그를 외면한다. 그는 사람들이 사는 곳 그 어디에도 낄 수 없었다. 그림자가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귀신 이야기를 좋아하던 어린 시절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누가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아주 흔한 말, 사람인지 귀신인지 알려면 그림자를 보면 된다는 말이었다. 그림자가 있으면 사람이고, 그림자가 없으면 귀신이라고 했다. 세상 어디에나 있는 비슷한 옛이야기. 그림자에 관한 이야기도 그런 것 같다.


사람이라면 그림자가 있어야 한다.

그림자가 없다면 그건 귀신이다.


어렸을 적 기억, 그 속에서 꺼낸 그림자에 관한 추억이 하나 더 있다. 그림자밟기 놀이!

그림자를 밟히는 사람이 죽는 놀이였다. 서로 그림자를 밟겠다고 성큼성큼, 그림자를 밟히지 않으려고 깡충깡충 뛰어다니던 게 생각났다. 그림자가 얼마나 중요한 것이길래 그걸 밟으면 죽는다는 거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들이 안 죽으려고, 게임에 끝까지 살아남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지키는 그 그림자를 나는 지금 잘 가지고 있나?


그림자를 팔아버리려고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가지고 있어도 어차피 꽁꽁 숨길 거니까. 아예 팔아버리면 애써서 숨길 필요가 없을 테니까. 그러면 최소한 거짓말쟁이가 될 일은 없잖아?

그림자를 파는 대가로 뭘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까?


좋은 사람, 괜찮은 사람, 능력 있는 사람, 성공한 사람

이런 타인의 인정.


그림자를 팔아버리면 귀신이 되는 것일 줄이야.

귀신, 실체가 없는 허울.


다행히 그림자는 팔리지 않았다. 재고처럼 창고 안에 쌓여있었다. 큰 초를 가져와 불을 붙인다. 나의 그림자가 들어있는 상자 하나하나에 빛을 비춰본다. 시커먼 어둠 속에서 한 덩어리로만 보이던 나의 그림자는 하나가 아니었다. 이런 모습, 저런 형태, 어찌나 다양한지 상자를 하나씩 열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안 팔려서 다행이다. 다 팔아버렸으면 지금의 나는 여전히 십 년 전, 이십 년 전, 삼십 년 전의 나일 테니. 상상만 해도 숨이 막힌다. 그게 바로 귀신이잖아? 세월은 흐르는데 어떤 시간에 붙박여 변하지 않는 존재.


그림자가 든 상자를 하나씩 열 때마다 나는 다른 내가 된다.

다행이다. 아직 수십 년은 더 살아야 하는데 계속 변할 수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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