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3일 수요일
오베론, 요정들의 왕 (클리어/터콰이즈)
Keynote : 위로부터 투입된 빛이 개성화 경로를 이해하도록 인도한다.
Affirmation : 맥락 안에서 나를 통해 창조 자체가 표현될 수 있도록 나 자신을 연다.
눈의 여왕 같아!
오늘 아침 내 눈길을 잡아끄는 바틀은 요정들의 왕, 오베론이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한여름 밤의 꿈>에 등장하는 오베론, 그의 이름을 딴 이 바틀을 보며 웬 눈이람?
요 며칠 힘들게 고생을 하긴 했는데, 그것 때문일까?
겨우내 구경할 수 없었던 눈이 이틀 사이에 다 내려버린 강릉, 아직도 창밖으로 보이는 마당에는 눈이 무릎만큼 쌓여있다. 웬만해서는 내리면서 녹아버리던 눈이 이렇게 쌓여있는 건 눈이 머금은 습기 때문이다. 이번 눈은 습설이라고 했다. 아주 촉촉한 눈. 그 촉촉함이 엄청난 무게와 응집력으로 쌓여버렸다.
세상에~ '촉촉함'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무겁게 느껴질 수도 있구나!
눈이 내리는 이틀 내내 눈을 치우며 내 몸도 습설처럼 무거워졌다. 길이야 녹을 때까지 오고 가며 조금의 불편함만 감수하면 될 일이라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지만 나무가 문제였다. 우리 집은 담장을 만들지 않았다. 집과 집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집이어서 여기에 벽돌 담장까지 치고 나면 너무 삭막할 것 같아 담장을 측백나무로 대신했다. 문제는 바로 이 측백나무였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눈은 나뭇가지마다 대롱대롱 매달려 얼음이 되더니 그 위로 한 겹 두 겹 계속 쌓여갔다. 처음에는 눈 오는 풍경을 마냥 즐겼더랬다. 눈이 얼마나 왔을까, 어느 순간 허리가 잔뜩 휜 측백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오빠~ 큰일 났어!!!"
눈 치우기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측백나무에 쌓인 눈을 털자 나무가 다시 허리를 곧추 세운다.
"내가 다 치워줄게. 걱정하지 마!"
처음에는 큰소리를 쳤다.
한 바퀴, 시간이 지나 두 바퀴, 세 바퀴, 네 바퀴, 속절없이 쌓이는 눈에 자꾸만 허리가 휘는 나무를 다시 세우느라 하루가 갔다. 어느새 밤이 되었다.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버렸다. 근육의 디테일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와 나 둘 다 끙끙 소리를 내다 겨우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이었던 어제, 눈 뜨자마자 창밖을 내다봤다. 역시나 나무들은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속도 모르는 눈은 그날 오후까지 계속 내렸다. 아침부터 또 한 바퀴, 너무 힘들어서 나무에게 말했다.
"나 너무 지쳤어. 내가 너를 지금 안아주잖아. 이 온기로 네가 좀 버텨보면 안 될까? 제발!"
우연의 일치였을까, 마법이었을까?
거짓말처럼 아침에 한 바퀴를 돌고 나서는 측백나무에 눈이 쌓이지 않았다. 눈이 닿는 대로 스르르 녹아내렸다.
우리, 통한 걸까?
이유야 어찌 된 것이건 초록의 나무를 보며 다시 느긋하게 눈 오는 풍경을 즐길 수 있었다.
부탁하길 잘했다.
내가 다 해주겠다고 큰소리만 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그게 나무라고 부탁하지 못할 일도 아니었다. 제 생을 살아내야 하는 게 나무의 일이라면 나무에게 너도 좀 할 수 있는 걸 해보라고 말해볼 수 있는 것이었다.
통하는 느낌
오늘 아침 나무에게서 느껴지는 이 감정, 참 따뜻하다.
이걸 기억하라는 걸까?
오베론 바틀이 눈의 여왕으로 찾아온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