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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dsmupet Mar 16. 2021

인사의 의미

익숙하지만 낯선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아이들의 인사가 사라졌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왔습니다."

그 이쁜 목소리가 사라지니 서운했다.


어느 날 문득 질문 화가 치밀었다.

'저 녀석들이 왜 인사를 안 해?'


아이들이 등교 수업을 한 지 1주 정도, 날이 갈수록 화가 쌓여갔다.

'저 녀석들이 무슨 불만이 있나? 나를 무시하나? 버르장머리가 없네!'

온갖 생각들이 튀어나와서 화를 부추겼다.

어제도 학교를 마치고 집에 들어서면서 첫째도 둘째도 모두 입을 꾹 다문채 제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소리를 버럭 질렀다.

"학교 다녀왔으면 다녀왔다고 인사를 해야지!"


화를 버럭 내고 나서 아차 싶었다. 화를 낼 게 아니라 질문을 했어야 하는 건데!

누군가에게 해야 할 질문이 생겼을 때 그 사람에게 질문을 하지 못하면 불편한 감정이 쌓이게 된다. 그 사람의 마음이 아니라 바로 내 마음 속에. 화나 분노일 수도 있고 슬픔일 수도 있는 불편한 감정들이 쌓이는 건 그 사람에게서 듣지 못한 대답을 나에게서 듣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대답은 온통 추측일 뿐 그 사람의 말이 아닌데도 어느 순간 나는 나의 말을 그 사람의 말이라 믿게 된다. 그리고 나의 대답에 내 마음이 불편해진다. 혼자 북 치고 장구치고 결국은 원맨쇼.


저녁을 먹으며 아이들에게 질문을 했다.

"우리는 왜 서로 인사를 하는 걸까?"

질문을 하면서 알았다. 나도 그 답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걸. 그냥 사회적 관습이니까, 기본적인 예의니까 인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 그 행위가 가지는 의미가 무엇일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아이들의 대답을 기다리며 나에게도 질문을 했다. 너는 어때? 너는 그 의미가 뭐라고 생각해?


화를 낸 이유, 나의 답은 거기에 숨어 있었다.

나에게 인사는 '지금 당신이 나와 함께 존재하는군요'라는 의미였다. 내가 지금 여기에 하나의 소중한 생으로 존재하듯 당신도 지금 바로 여기에 소중한 생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걸 인식하고 있다는 표현이었다.

아이들이 머뭇거려서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나에게 인사라는 행위가 갖는 의미는 바로 이것이라고 말을 해주었다.


"~~~ 해야 해!"

"~~~ 하는 게 예의야."

이런 말로 알려주기 전에 먼저 그 말 앞에서 내가 했던 질문들을 기억했으면 좋았을 걸.


"왜요?"


성장의 시간, 가장 많이 했던 질문, "왜요?"

한참 성장 중인 두 딸과의 대화도 여기에서부터 시작했으면 좋았을 걸, 후회가 되었다.

"왜요?"라는 질문에 당연한 거라며 핀잔을 주던 세상에 그렇게 짜증을 냈으면서 나도 딸들에게 그러고 있었다. 이제라도 우리의 대화를 '해야 하는 거야'에서 "왜 하는 걸까"로 바꿔봐야겠다.


"왜?"에서 출발하는 의미 찾기,

자기가 던진 물음에 누군가의 대답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의 대답을 듣는 일,

그렇게 답을 찾고 나면 행위는 허상이 될 수 없다.

그런 사람의 행위는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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