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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dsmupet Apr 06. 2021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진짜 백설공주야? 다시 말해봐!

오라소마 바틀, 타로카드, 아로마 인사이트 카드, 룬스톤, 주역 등등 나에게는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도구가 여러 개 있다. 다들 처음 접할 때의 신기함과 흥분에 사들인 것들이다. 더러는 코스를 밟으며 전문적으로 배운 것들도 있다. 이런 도구뿐일까? 마음에 대해 말하는 각종 책들도 수북하게 쌓여있다. 

이 많은 도구들 중 무엇을 사용해도 그것이 말해주는 건 그 순간의 내 마음, 내 감정, 내 관점, 내 생각이다. 다른 종류의 도구라고 다른 말을 하진 않는다. 도구마다 다른 말을 한다면 그건 어느 도구도 믿을만하지 않다는 말이나 다름없을 테다. 그 사람의 실력을 테스트하기 위해 어떤 시험지를 내밀든 측정값에는 차이가 없어야 하는 것과 비슷하다. 


나는 왜 이런 도구를 사용해서 내 마음, 내 감정, 내 생각을 확인하려고 하는가? 

'비계가 아닐까?'

문득 떠오른 생각. 

어떤 도움 없이 스스로 그것을 알아차리는 건 어려우니까.


그랬다. 처음 시작은 알 수 없는 내 마음, 내 감정, 내가 가진 틀을 알아채고 싶었던 것이었다. 혼자서 할 수 없으니 도움이 필요했다. 공사현장에서 인부들이 높은 곳이라도 쉽게 올라가서 일할 수 있게 비계를 설치하는 것처럼,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데도 그런 구조물이 필요했다. 

'비계'에 대한 아이디어는 비고츠키에게서 얻었다. 비고츠키의 인지발달이론을 보면 '비계 설정'이라는 개념이 나온다. 

한 꼬마가 계단 앞에 서 있다. 꼬마의 보폭으로 오르기에는 계단이 좀 높다. 하나도 오르지 못하고 멈춰있는 꼬마에게 누군가 작은 발판을 가져다준다. 그 발판을 계단으로 가져가 꼬마에게 디뎌보라 한다. 바닥에서 발판까지는 꼬마의 보폭으로 충분하다. 가볍게 발판에 오르니 계단의 높이가 발판만큼 줄어든다. 이제 꼬마는 그 계단을 오를 수 있다. 발판의 도움으로 계단을 오르던 꼬마는 어느새 키 큰 어른이 된다. 어른이 된 꼬마에게 발판은 계단을 오르는데 장애물이 된다. 걸리적거리는 발판을 치우고 제 발로 가볍게 계단을 오르내린다. 비고츠키가 말하던 '비계'가 바로 이 꼬마의 발판이다. 


나의 마음을 알려주는 도구들을 만나고 꽤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나는 지금도 꼬마인가? 나의 보폭으로는 여전히 계단을 오르기 힘든가? 혹시 비계를 제 용도로 사용하지 않고 엉뚱하게 사용할 때 영영 제거할 수 없게 되어버리는 건가? 공사가 다 끝나면 마땅히 제거해버려야 할 비계를 건물에 너무나 단단히 고정시켜버려 건물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일까? 그건 너무 흉측하잖아. 비계가 건물의 일부가 되어버린다니! 난 매끈하고 잘 빠진 건물이 좋단 말이야!!


갑자기 백설공주의 새엄마가 생각났다.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백설공주의 새엄마, 마녀가 가지고 있던 도구는 진실을 말하는 거울이었다. 거울은 마녀가 물을 때마다 매번 진실을 말한다. 

"백설공주가 세상에서 제일 예뻐요!"

진실을 알고 싶어서 마법의 거울을 소유하면서도 거울의 말을 듣지 않는 마녀. 

"내가 준 독사과를 먹고 죽었는데 왜 또 백설공주야? 정신 차려! 백설공주는 죽었다고!!"


질문 하나를 던지고 카드를 뽑는다. 타로카드일 때도 있고, 주역일 때도 있다. 또 다른 무엇일 때도 있다. 

"이상해. 잘못 뽑은 것 같아. 집중해서 다시 뽑자!"

내가 백설공주의 새엄마였나 봐!

내가 생각하는 바로 그 모습이 나라고 누군가 인정해주길 바라면서 조금씩 도구에 의존하게 된 것 같다. 어차피 내가 애쓰지 않아도 도구가 다 말해주니 애쓰지 않게 된 것 같다. 내가 계발해야 할 나의 능력을 도구에 위탁하고 나는 도구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안 되겠다. 

다시 시작해야겠다.

도구 사용법부터 다시 익혀야겠다. 사용설명서를 읽는 게 귀찮다고 그냥 넘겨버렸다가 기계를 고장 내버릴 수도 있잖아. 기계의 용도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엉뚱하게 사용할 수도 있잖아? 지금 내가 그러고 있잖아. 

진실을 말하는 마법의 거울을 가지고 있으면 뭐해? 거울이 말하는 진실을 듣지 못하는데! 

그 도구가 왜 하필이면 거울 인지도 모르고 있잖아. 

거울이 뭐야? 앞에 놓인 것을 비춰주는 물건이잖아. 거울은 창조하지 않아. 반영할 뿐. 그러면 거울이 말하는 진실도 마찬가지겠지. 거울이 비춰주는 그 말은 누구의 말일까? 누구의 진실일까? 

거울 앞에서 '거울아~ 거울아~'를 외치는 바로 나지!

그걸 알게 될 때 나는 더 이상 거울을 부를 필요가 없어지겠지.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더 이상 거울이 필요없어지는 순간이 오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는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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