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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dsmupet Apr 30. 2021

질문이 아닌 질문

'우문현답'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내가 쏟아내는 수많은 질문들이 우문이라는 건 몰랐다.

정작 심각하게 질문해야 할 때는 대충 얼버무리다 질문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건 타로카드 때문이었다. 점을 치려면 알고 싶은 게 무엇인지 질문을 해야 하는데 웃기게도 내가 알고 싶은 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말이 되어서 나오지 못하는 질문들, 밖으로 나오지 못한 질문들은 속에서 쌓여 내 가슴을 꾹꾹 눌러댔다.


질문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질문에 관한 노하우를 담은 책들을 미친 듯이 찾아보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리더십에 관한 이야기들이었다. 질문의 목적이 협상과 설득에 있었다. 하지만 내가 알고 싶은 건 밖으로 나갈 방법을 몰라 내 안에 쌓이기만 하는 질문들을 끄집어내는 방법이었다. 다행히 어떤 책에 힌트가 있었다. 브레인스토밍을 하듯이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이거 해볼 만 한데! 이게 나에게 밖으로 나가는 길을 알려줄지도 몰라!'


바로 노트를 폈다.

며칠 전부터 내 마음에 온통 먹구름을 드리우던 일을 주인공으로 정했다.

'일단 질문이든 푸념이든 닥치는 대로 써보자.'


그 사건은 내가 만든 어떤 프로그램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줌으로 하는 온라인 클래스. 신청자가 제법 되어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한 건 프로그램이 시작되면서부터였다.


'사람들 표정이 왜 저러지?'


무표정한 참가자들의 얼굴을 보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내 마음은 먹구름이 끼다 못해 금방이라도 폭풍이 몰아칠 듯 위태로다.


질문을 쏟아내는 브레인스토밍이니 '질문 폭풍'으로 이름 지어보자며 노트 한편에 '그날의 일에 대한 질문 폭풍'이라고 썼다. 그리고 뱉어지는 대로 마구 써 내려갔다.




사람들이 만족할까?

내용이 별로면 어떡하지?

내가 정말 제대로 알고 있나?

나도 모르는 걸 말하고 있는 것 아니야?

내 강의를 듣고 실망하면 어떡하지?

나를 허풍쟁이라고 여기면 어쩌지?

내 수준이 형편없다는 걸 알면 어쩌지?

사람들 표정 좀 봐~ 재미없나 봐.

망했다.

쥐구멍에라고 숨고 싶어.

그만하고 싶어.

울고 싶다.

내가 준비한 게 형편없나?

저 사람들 돈 아깝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질문들에서 독가스가 뿜어져 나오는 느낌이었다.

맙소사!

내가 나를 믿지 못하고 있었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몇몇 참가자들로부터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았다. 다음 프로그램이 기다려진다는 고마운 피드백도 있었다. 하지만 저런 질문 속에 파묻혀있던 나는 이 모든 피드백을 거짓으로 치부해버렸다. 그저 예의 바른 사람들의 인사치레라고 여겼다. 며칠이 지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나에게 이 프로그램을 제안했던 지인이었다.


"선생님~ 제가 아는 언니가 선생님 강의 들었는데 너무 좋았다고 방금 전화 왔어요."


긍정적인 피드백으로 가득한 그녀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 내가 느낀 반응과 너무 달라서 얼떨떨했다. 도대체 이게 뭘까 싶었는데 흰 종이 위에 쏟아 나의 질문들을 보면서 이게 뭔지 대충 알 것도 같았다. 온갖 걱정들이 나를 실패자로 몰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프로그램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꿈틀대던 의구심은 '망했어'라는 결론으로 치닫고 있었다. 사람들의 표정과 대답, 작은 몸짓마저도 나에게 부정적인 시그널로 다가왔다. 회색 안경을 끼고서 세상이 온통 회색이라고 푸념하고 있었다. 굳이 필요하지도 않은 안경을 쓰고서 이게  난리람!


이제 질문을 바꿔볼 차례가 되었다.

질문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은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뭐지?"였다.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내 강의를 듣는 사람들이 듣길 잘했다고 만족하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진짜 필요했던 도움을 주고 싶은 게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었다.

여기까지 글로 써 내려가고 나니 질문을 바꾸는 게 수월해졌다.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을까?

내 강의를 신청한 사람들이 기대한 건 뭘까?

그들이 기대하는 걸 알 수 있는 방법은 뭘까?

강의를 신청하는 이들의 욕구나 기대를 잘 파악할 수 있다면 더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 방법이 뭘까?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물어보면 어떨까?

그렇게 해보자!




이렇게 나의 질문 폭풍은 일단락되었다.

바보~

아니 불한당.

나를 못살게 구는 최고의 불한당은 바로 나였다.

나는 나에게 수많은 질문을 퍼부으며 살고 있었다. 현문이 아닌 우문, 질문이 아닌 질문.

적어도 하루에 한 번쯤은 내가 나에게 하는 질문들을 종이 위에 쏟아내 보아야 할 것 같아졌다. 속에 쌓여 곰팡이가 슬고 썩어서 독가스를 뿜어내기 전에 종이 위에 쏟아내서 햇볕을 쪼여주어야 할 것 같다. 우문이 종이 위로 쏟아져 나오면 현문으로 바뀔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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