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Redsmupet
May 04. 2021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오늘 아침 내가 나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려면 돈이 필요한 거 아니야?
이것 말고 다른 답이 있을까?
그러다 문득 나의 질문에 대한 질문이 생겼다.
"이 질문에서 내가 원하는 게 뭘까?"
돈, 경제적인 불안함이 내 발목을 잡고 있다는 생각,경제적으로 여유롭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을 것 같다는 아쉬움. 정말 그럴까? 진짜 나를 가로막는 게 돈이야? 정말?
갑자기 낯이 뜨거워졌다.
'돈이 없어서'는 내가 놓기 싫은 방패였다. 내가 포기한 것, 실패한 것을 포기나 실패라고 인정하기 싫을 때마다 나는 '돈이 없어서'라는 핑계를 대고 있었다. 경제적으로 여유만 있었으면 포기하거나 실패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타인을, 나를 내가 속이고 있었다. 방패 뒤에 몸을 숨기고서 스스로를 그렇게 정당화시키고 있었다.
낯이 달아오르게 한 기억, 그건 대학원 박사과정 입학시험을 앞두고 있었던 때였다. 내가 가고자 하는 대학과 나에게 오라고 하는 대학, 이렇게 두 군데가 있었다. 나는 나에게 오라고 하는 대학을 선택했다. 장학금으로 학비를 해결해줄 테니 오라는 말이 솔깃했다. 하지만 내가 가고 싶은 대학의 시험을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시험 전날까지 두 대학을 저울질하다 나는 결국 둘 다 포기하고 도망가버렸다.
'돈이 없잖아. 박사과정 학비를 어디서 구할 거야? 그렇다고 장학금을 준다는 곳에 갈 수도 없잖아.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닌걸.'
내가 나를 신파극의 주인공으로 만들어버렸다.
'나는 돈이 없어서 박사과정에 가지 못한 거야.'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가고 싶은 대학의 시험에 떨어질까 봐 두려워서 도망갔다는 것을.
이 보다 더 과거로 내려가서 만나는 나도 비슷했다.
우리 집이 부자가 아니라
엄마가 학원에 못 보내줘서
문제집 살 돈도 없어서
신파극의 주인공이 되면서 나의 책임은 가벼워졌다. 내가 문제가 아니라 돈이 문제였으니까.
어떤 실패 앞에서 내가 나에게 진지하게 질문해 본 적이 있었던가?
'나의 무엇이 이 실패 앞으로 나를 데리고 왔을까?'
'여기서 내가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일까?'
매번 '돈 때문에'라는 핑계를 대면서 나는 실패 앞에서 배울 수 있는 수많은 기회를 놓치며 살고 있었다.
마음 편한 바보.
나를 압박하는 건 '돈 없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 핑계 뒤에 숨어 있는 진짜 나를 만나기 싫었던 거지. 꼭 대단할 필요는 없는데 나는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 열망만큼 나의 지질함이 싫었다. 그런데 그 지질함을 인정했더라면 지금만큼 지질한 나를 마주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더 이상 '돈 때문에'라는 핑계는 댈 수 없게 되어버렸다. 최소한 내가 나에게는.
실패한다고 다 지질한 건 아닌데, 실패가 곧 지질한 인생이라는 나의 틀 속에 갇혀 얼마나 지질하게 산 거니?
시행착오, 인생이 주는 그 좋은 기회를 다 걷어차며 살아왔네.
맨날 '돈이 없어서'라는 핑계를 대니까 진짜 돈이 없지! 이제 그 방패는 버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