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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dsmupet Oct 16. 2021

'힘내'라는 말보다는

이런 날에는 이런 향기

'힘내'

이 말을 참 많이 한다. 참 많이 듣는다.

누군가에게 이 말을 할 때면 마음 한편이 찜찜해진다. 진심을 담기엔 너무나 상투적인 단어라는 걸 알면서 그 단어밖에 생각해내지 못하는 나의 빈곤한 어휘가 미워진다.  누군가 나에게 '힘내'라고 말할 때 이 말은 '안녕하세요'라는 말처럼 내 마음에 들어오지 못한 채 허공에 흩어지곤 한다.


타인에게서 위로를 받는다는 것이 정말 가능한 일일까? 그 누가 무슨 말로 위로를 해줘도 마음이 그 말을 뱉어내는 때가 있다. 힘든 일일수록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럴 때 결국 나를 위로해줄 수 있는 건 나뿐이었다. 내가 진심으로 나의 상황과 그 상황 속에 서 있는 나를 안아주고 나서야 꽁꽁 얼어붙었던 마음이 녹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다. 힘든 상황 속에 있을 때 머리를 꽉 채우는 건 자책이다. 가슴을 꽉 채운 감정은 나 자신에 대한 실망이다. 바깥을 볼 겨를 없이 나를 향해 파고든다. 그때는 내가 그러고 있는 줄도 모른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내가 나에게 너무했다고 생각하곤 한다. 다행히 삶은 다양한 경험으로 내가 나를 바라볼 수 있는 방법들을 알려줬다. 덕분에 안으로 안으로 파고들며 자신에게 생채기를 내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시간이 조금은 빨라졌다.


점심을 먹고 나른해진 몸을 깨워볼까 싶어 아로마 인사이트 카드를 펼쳤다. 내 손에 닿은 건 타임과 파인, 그리고 블랙페퍼였다. 요새 타임 에센셜 오일을 자주 쓰게 된다. 식물로 키우는 타임은 어여쁜데 향기로 맡는 타임은 소독약처럼 독하다.

'악! 또 타임이야? 요새 왜 이렇게 자주 나오는 거야? 이 냄새 싫은데!'

투덜대며 타임 에센셜 오일의 향기를 맡는다.



처음 아로마 인사이트 카드를 배우던 때가 떠올랐다. 타임카드의 의미를 배우며 '나에겐 이 카드가 안 나왔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었다. 너무 힘들어서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 같은 순간 타임카드가 하는 말이 '조금만 더 힘을 내'였기 때문이다. 힘들어 죽겠다고 울고 있는데 조금만 더 힘을 내라니, 너무 잔인한 것 아닌가? 그런 상황에서 누가 이런 말을 하면 너무 야속할 것 같았다. 이제 그만해도 된다고 넌 정말 최선을 다했다고 말해주는 게 더 인간적인 것 아닌가? 그런데 일상에서 이 카드가 나오면 희한하게 안심이 된다.


'그렇지? 나 더 버텨도 되는 거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게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 거지? 조금만 더 힘을 내면 된다는 거지?'


인정이 필요했나 보다. 힘든 순간, 뻘짓 하느라 개고생 한 게 아니라 정말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니 여기서 포기하지 말라고, 네가 무언가 잘못해서 지금 힘든 게 아니라고, 제대로 가고 있는 중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런 메시지가 나에겐 강력한 근거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믿어도 된다는 증거.


오늘도 '힘내'라는 말은 뱉어내던 마음이 타임의 향기는 쑥 빨아들인다.

'맞아! 지금 나 괜한 짓을 하고 있는 게 아니야. 나의 선택을 믿어도 된다고 타임의 향기가 말해주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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