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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dsmupet Oct 19. 2021

또! 알레르기성 비염

이런 날에는 이런 향기

긴장이 풀어진 탓일까?

이틀 전부터 비염 증상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코가 찡하고 막히는가 싶으면 콧물이 줄줄 흐르기를 반복했다. 눈 주변도 슬슬 가렵고 따가워지기 시작했다.

몇 년 동안 잊고 있던 증상들이다. 십 년 넘게 다니던 학교에 사직서를 내고 강릉에 정착한 후 거짓말처럼 알레르기성 비염 증상이 사라졌다. 수십 년 동안 별짓을 다해도 해결할 수 없던 증상이 어떻게 그렇게 감쪽같이 사라질 수 있는지 신기했다. 내 기억이 닿는 순간부터 비염은 나를 떠난 적이 없었다. 휴지 없이는 살 수 없는 비염 인생, 그렇게 나의 생과 함께 하던 놈이 아무 말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아무 말도 없이 훌쩍 떠나버리더니 무슨 일로 이렇게 슬금슬금 나를 다시 찾아온 거니?

처음에는 그냥 몸살이라고만 생각했다. 마음을 무겁게 누르던 돌덩어리 하나, 커다란 인생 숙제를 끝내고 나서 찾아오는 몸살인 줄 알았다. 뼈와 살은 아픈데 마음은 엄청 가벼웠으니. 그런데 점점 심해지는 증상은 몸살이라기엔 그 녀석과 너무 닮았다. 나와 오랜 세월 함께 했던 비염.


꽉 막힌 코를 뚫어보겠다고 고개를 오른쪽, 왼쪽으로 돌려가며 누워있다가 벌떡 일어났다. 이대로는 도저히 잠이 올 것 같지 않아서 아로마 인사이트 카드를 꺼냈다.


'딱 한 장만 뽑을 테니 잠 좀 자게 도와줘'


내 손에 잡힌 카드는 로즈 오또였다. 알레르기 증상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로즈 오또가 왜 나왔을까? 몸이 아플 뿐이지 마음은 너무 가벼운데. 항상 내가 꿈꿔온 상황, 그게 바로 지금인 걸. 부드러운 로즈 오또의 향기는 나에게 '가시가 떨어지면서 생살까지 같이 떨어져 나가니 아프지. 너무 오래 붙어 있어서 가시만 깔끔하게 떨어지질 않네. 내가 녹여줄게'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꽉 막힌 코는 여전히 뚫리지 않은 채 숨길을 막고 있었다. 손이 자꾸 눈으로 갔다. 가려운 눈은 비비면 비빌수록 더 가렵고 따가웠다. 한참을 뒤척이다 몸에게 말을 건네보았다.

'혹시 지금 무언가 새로운 것이 밀려올 것 같아서 방어태세를 갖추는 거야? 괜찮아. 이건 이물질이 아니야. 너무 오랫동안 잊고 있어서 낯설어진 것일 뿐, 이 새로움도 나 맞아.'

몸이 내 말을 듣고 있는 것일까? 어느새 코가 뚫리고 편한 숨 속에서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깬 아침, 다행이다! 코가 다시 편안해졌다.

또다시 비염 증상이 나타날까 걱정되는 마음에 아침부터 인사이트 카드를 꺼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게 뭐야?'

이 질문에 대한 인사이트 카드의 대답은 파인과 팔마로사, 저먼 카모마일이었다.


세 장의 카드가 하는 말,


너 자신이 가장 소중해. 이젠 네가 너를 안아줄 수 있게 되었지? 어젯밤에 로즈 오또가 녹여준 가시를 내보내자. 그대로 몸에 남겨뒀다가는 다시 딱딱하게 굳어서 여기저기 달라붙어버릴지도 몰라. 가시가 녹아버리고 나니 너무 가벼워서 어색해? 그 어색함이 불안해? 그럴 필요 없어. 수문을 열고, 가시가 녹아서 흐르는 물을 이제 흘려보내자. 


세 개의 향기가 합쳐지니 가을바람 냄새가 난다. 가을 아침, 차가운 공기가 가져오는 향기와 닮았다. 여름에 익숙해진 몸에게 가을바람의 차가움은 낯설게 느껴진다. 하지만 금세 가을을 기억해낸 몸은 찬 공기가 가져다주는 상쾌함을 깊이 들이마신다.

맞아! 난 이런 가을을 좋아했어. 그리고 지금 또 나에게 가을이 찾아온 거지. 겨울을 맞이하려면 이 가을에 난 가벼워져야지. 다시 찾아오는 봄에 새 잎을 틔우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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