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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홍 May 01. 2024

사막 위를 달리는 전사

'進'에 대한 단상



반복에 반복, 매번 같은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매번 같은 답이다.
너무 지긋지긋해.



      히어로물을 좋아한다. '최애'라고 표현하는 인물은 보통 마블 출신의 남자 캐릭터다. 근육질 몸매에 잘생긴 외모는 늘 실망이 없다. 거기에 화려한 입담까지 얹는다면? 더 말해 무엇할까. 혹여 이것이 요즘 문제되는 외모지상주의 같은 개념으로 매도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취향이니 존중해 줄 밖에.



      반면 여성은 도무지 이 매력적인 주인공의 말을 듣지 않는다. 하지 말라고 경고한 무수히 많은 일을 하고 쓸데없는 호기심과 공명심에 사로잡혀 있다. 모든 일에 앞장서고 싶어 하나 마무리는 늘 위기의 한가운데다. 함께 영화를 보는 친구에게 '또 시작'이라고 성을 내면 차분하게 대답해 온다. '그래야 영화가 진행된다'고. 맞다. 그리고 그런 여성을 사랑해 마지않는 히어로의 땀방울에 나는 숨을 삼킨다.



      비난받아도 변명할 여지가 없는 생각이다. 그러나 누구도 그간의 서사물 대다수가 그런 모습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을 테다. 몇 년 전부터 매체를 통해 유행처럼 투영되는 PC주의(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가 이의 반증이다. 차별을 없애자는 움직임 자체가 차별이 있음을 자인하는 모양이니까. 이 역시 많은 문제점을 야기하고 있음에도 남성에서 여성으로, 백인에서 유색인종으로 서사는 변해갔다.



      어떤 멋드러진 이름을 붙였든 반복에 반복, 매번 같았던 서사가 이제 다른 것을 그려낸다. 이 말은 그간의 것이 틀렸다거나 지금의 것이 독특하거나 특별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여성이건 남성이건 다수이건 소수이건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뜻이다. 나와 당신이 다르다고 해서 잘못된 게 아니다. 굳이 다름을 이해할 필요는 없다. 그냥 인정하면 되는 거다. 머리에 열을 낼 필요가 없는데 뭐가 그리 복잡한지.



영화 <올드 가드(The Old Guard)>,  각자의 이야기를 품은 그들은 서로이지만 자신이다.

                   


      가슴이 뛴다. 샤를리즈 테론의 눈빛을 보는 순간 관자놀이가 간지럽다. 이렇게 매력적이어도 되는 걸까. 그간 나의 고정관념이 우스워진다. 나는 무엇을 봐왔고 어떤 것을 생각했는가. <매드맥스:분노의 질주>에서의 반삭이 이제 숏커트다. 그는 '스키타이의 안드로마케'이지만 '넌 앤디라고 불러'라는 쿨내 나는 한 마디를 남기고 사막을 달린다.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영화 <올드 가드>에는 여성과 남성, 백인과 유색인종, 성적 소수자가 등장한다. 아마 이야기에서 다룰 수 있는 군상이 총망라된 것이지 싶다. 흔해 빠진 배신과 역경, 그리고 극복 -사람들이 대개 인생이라 부르는 것- 은 그들을 나아가게 한다. 죽지 않는 몸으로 반복에 반복, 끊임없이 되풀이하면서 계속해 성장한다. 그야말로 진취적이다.



      진(進 나아갈 진)은 辶(쉬엄쉬엄 갈 착)과 隹(새 추)가 합쳐진 글자다. 새가 간다는 의미이므로 새가 날아간다고 이해하는 것이 옳을 법하다. 그렇게 본다면 이 글자는 앞으로 나아간다는 의미일 게다. 왜냐하면 새가 뒤로 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뒤가 없이 그저 앞으로 나아간다. 날갯짓이 멈추면 추락이다. 목숨을 건, 어쩌면 악에 받친 몸부림에 '힘쓰다'는 뜻도 더해 본다.



      삶을 향해 나아가는 힘은 어디에서 얻을 수 있나. 어떤 이들은 사랑에서, 또 다른 이들은 명예에서, 어느 누군가는 돈에서 얻을 수 있다. 어느 것이 그르다, 옳다를 논할 수는 없다. 떠밀리듯 살아왔던 누군가에게는 그저 모든 것이 부러울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누군가에게도 등을 떠민 무언가는 있었다. 그리고 이유가 무엇이든 살아내기로 마음먹었다면 "달라질 것은 없다. 늘 그랬듯 여기서 살아"낸다. 주체는 그저 '나'일 뿐이고 나는 그저 '나아갈' 뿐이다.



그럼 일하러 갈까?


       




      꽤 오랜 시간 내 삶은 멈춘 듯했다. 설명하지 못할 많은 일들이 있었고 나는 날갯짓을 잊었다. 언뜻 바람이 불었다. 누군가 손을 내밀었고, 나는 잡았다. 걷기부터 시작했다. 술이 아닌 카페인을 핑계로 속내를 고백하는 시간은 신선했다. 바람인지 손인지 시간인지 모를 게 자꾸만 나를 잡아끌고, 또 잡아끈다. 귓가로 바람이 스쳐간다. 그렇게 나는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 주말이다. 내 품 안에 햇살이 한 움큼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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