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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홍 May 22. 2024

나는 당신과 다시 관계할 수 있을까

'關係'에 대한 단상



      난 원체 무용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좋아하오. 달, 별, 꽃, 바람, 웃음, 농담, 그런 것들…….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살다가 멎는 곳에서 죽는 것이 나의 꿈이라면 꿈이오. 이미 누구도 원하지 않는 생이니 괜찮소.



      "나, 김희성이오." 한마디면 무엇이든 가능했던 드라마 <미스터션샤인> 김희성의 대사다. 작품을 재밌게 봤다는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이 대사가 깊이 남는 건 뚜렷하게 설명할 길이 없다. 그는 더 이상 어느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그 누구도 그를 원하지 않았던 것일까. 그게 무엇이건 간에 참으로 쓸쓸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전지적 작가 시점이 가능했던 시청자 입장에서는 이 두 가정이 모두 가능한 일임을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과연 그러했다. 지독한 감정이입에 빠졌다. 흔히 말하는 서브병에 걸려 앓아야 했을 정도다.



      누구든 사랑하지 않건 누구나 사랑하지 않건 그것은 누구와도 관계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 얼마나 외로우면서 동시에 자유로운 말인가. 무용하고 아름다운 것들은 결국 자신을 속박하지 않는, 또한 자신에게 속박당하지 않는 존재다. 모든 관계에 얽매이지 않고자 했던, 그러나 그것이 진심이었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던 남자는 그렇게 홀로 스러져갔다.








      관계(關係)처럼 위안이며 번거로운 단어가 없다. 둘 이상의 무언가가 – 그것은 생(生)을 가지고 있는 것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 서로 관련을 맺거나 관련이 있다. 그래서 성교를 완곡하게 이르기도 한다. 관련을 맺기에 참견하거나 주의를 기울이는 것까지 포함한다. 까닭이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지극히 철학적이고 관념적인 의미이지 싶다.



      관(關)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눈물이 날 지경이다. 문(門 문 문)이라는 부수를 가진 이 한자는 잔인하다. 문에 긴 막대(丱)를 걸고, 열쇠(·)로 문을 잠갔다. 문을 닫고 실(絲)을 꿰어버렸을 수도 있다. 열쇠나 실, 수단이야 뭐가 되었든 문을 닫아 빗장을 걸어버린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관은 본래 닫거나 가두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관계 맺음은 쉬운 일이 아니다. 둘 이상의 친밀한 관계가 단단히 묶여 있다는 표면적인 의미 안에, 상대를 내 안에 가두어 버린다는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집착일까. 혹은 관계 맺음에 있어 그 정도 각오는 해야 한다는 의지 내지는 다짐일까. 잔인하지만 지독히도 외롭다. 타인은 내가 아니다. 그런데 나는 그를 내 안에 가두고 싶어 한다. 가둘수록 갇히는 건 나임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렇게 우리는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그런데 어쩌면 당신은 인정하기 어려워할 사실이 있다. 이 글자에는 주거나 받는 의미가 숨어있다는 점이다. 이 사이는 그래서 서로 통해야 성립된다. 일방적인 관계는 없다는 말이다.



계(係 맺을 계)는 사람(人 사람 인)을 잇는 실(系 이을 계)이다. 말이 좋아 잇는 것이지, 잇는다는 것은 실타래를 엮는 행위이므로 묶는다고 표현할 수 있다. 즉 사람과 사람 사이를, 그 관계를 이어 묶는 것이다. '관'과 '계'가 만났다. 묶고 다시 묶는다. 그래서 어지간히 복잡하게 얽힌 사이는 풀기보다 끊어야 할런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구별해내느냐다. 고백하건대, 나는 어렵다.






얼마 전, 오랜만에 영화 <첨밀밀>을 보았다. 어릴 땐 그저 안쓰러웠던 소군이 이번엔 정말 미웠다. 소군의 눈빛은 당장이라도 “그래, 당신이 다 옳아.” 라고 말하며 보듬게 만든다. 과연 그를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한 발자국 떨어져 보니 새삼, 그렇게 비겁할 수가 없다. 가련한 비겁함이다. 그는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까지 너무도 오래 걸렸다.



이요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미련, 아쉬움, 그리움, 그리고 사랑 그 어디쯤



      비가 내리는 추웠던 어느 날, 서로의 온기가 절실했던 그들은 관계를 가졌다. 더럽고 좁은 방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서로 부둥켜 몸 누일 자리면 충분했다. 친구 내지는 동지라는 단어로 서로를 규정지었으나 눈을 뜨면 항상 곁에 그(그녀)가 있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소군이 이요에게 건넨 반짝이던 팔찌는 약혼녀에게 보낼 팔찌와 똑같았다. 그의 마음을 확인하고자 했던 그녀에게 돌아온 건 침묵이라는 상처뿐이었다.



      그런 이요에게, 약혼녀와 자신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하던 소군보다, ‘작은 친구’를 데려와준 파오는 적어도 진짜였다. 이요의 선택에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다. 모든 걸 잃고 돌아서는 마지막까지 파오는 이요를 생각했다. 거칠게, 그리고 호기롭게 내던지는 말에는 오직 이요의 안전과 행복만이 들어있었다. 그래서 이요는 너무 늦어버린 소군 대신, 정말 필요한 순간 자신과 관계를 맺은 그를 택한 것일지 모르겠다.






      늘 궁금했다. 1분 1초의 나와 당신을 전하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이제는, 당신이 늘 투덜대던, 미지근한 온수의 정수기에서 100℃ 버튼을 찾아냈다는 것도, 당신의 방임에 틀림없을 예쁜 그림이 걸린 공간에 대한 축하도 전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관계다. 우리의 관계는 풀려가고 있는 것일까, 싹둑 끊어진 것일까. 마음이 어디쯤인지 알 수도 없다. 그저 따스한 눈빛을 나눌 수 있는 관계를 기다리고 있다. 역시, 당신의 아름다운 관계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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