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孤’와 ‘獨’에 대한 단상
“혼밥”, “혼술”, “혼영”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술을 마시고, 혼자 영화를 본다. 알게 모르게 음지에서 행해지고 있었으나 결코 양지에서의 내 이야기는 아닐 것이었다. 그러던 게 하나의 단어가 되어 뭍으로 등장한 지 꽤 오래다. 우스갯소리로 ‘혼밥 레벨’을 나누어 도전하고 인증하는 놀이도 유행처럼 번졌다. 이 중 하나라도 경험해 본 적이 있는가. 그리 오래지 않은 언젠가, 그러니까 내가 한창 남의 눈을 신경 썼던, 그것이 세상의 기준이라고 생각했던 철부지 시절 ‘혼자’의 의미는 부끄러움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내가 더 어렸다면, 아마도 처량함이나 비참함까지 아우를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은 우리에게 쉽게 노출되는 매체들의 영향도 컸다.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 틈에 끼어 혼자 밥을 먹거나, 혼자 술을 마시거나, 혼자 영화를 보는 행위는 어쩐지 ‘외톨이’의 느낌을 주었다. 친구가 없거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존재라는 부정적인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흔하디 흔한
혼밥, 혼술, 혼영, 어떠한 행위 앞에 ‘혼자’라는 말을 붙이는 신조어는 더이상 유행도 아니고 독특한 것도 아니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게 촌스러울 지경이다. 흔하디 흔한, 일상이다. 퇴근 후 시끌벅적한 술자리도 좋다. 하지만 어느 날은 집으로 돌아와 맥주 한 캔을 냉동실에 넣는다. 종일 묻었던 온갖 욕지거리를 씻어내고 나온다. 맥주는 녹아내린 내 멘털을 딱 알맞게 굳힐 정도로 차가워져 있다. 캄캄한 방 한편의 티브이를 켠다. 가끔은 휴대전화 화면도 좋고 컴퓨터 모니터도 좋다. 맥주와 나, 그리고 즐길거리, 이것은 그 어떤 것보다 나에게 위안을 준다. #나홀로 #혼술 #힐링 따위의 해시태그를 붙이지 않아도 충분하다. 구구절절한 변명은 필요하지 않다. 나는 혼자다.
“혼자”라는 것
‘혼자’라는 의미를 가진 대표적인 한자로 獨(홀로 독)과 孤(외로울 고)가 있다. 獨(이하 ‘독’)과 孤(이하 ‘고’)는 엄연히 다르다. ‘독’은 홀로, 혼자, 외롭다, 오직, 독재하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더해 외발인 사람을 가리키기도 한다. 외발이라 힘들고 안쓰럽다는 게 아니다. 그냥 발이 하나라는 의미이다. ‘고’ 역시 혼자이고 외롭다. 외롭긴 한데, 의지할 곳이 없어서 외롭다. ‘고’라는 단어를 들여다보면, 瓜(오이 과)가 보인다. 子(아들 자 - 孑(외로울 혈))와 보자면, 열매가 홀로 매달려 있는 모습이다. 여럿이 있는 것이 자연스러우나 와중에 홀로 떨어져 있는 뭔가 ‘부족한’ 상태를 의미한다. 그것은 작으며 고루하고, 돌보아야 하며 염려해야 하는 것이다. 오늘의 나는 ‘독’인가 ‘고’인가. 무엇을 꿈꾸고 있는가.
혼자임을 "선택"하는 것
‘독’은 마음대로 결정하고 단행한다. 오늘 저녁으로 돼지고기가 아닌, 참치를 듬뿍 넣은 김치찌개를 먹고 싶다면 그냥 먹으면 된다. 크림 파스타와 토마토 파스타를 고민하다가 절충안으로 로제 파스타를 선택해야 할 어떠한 이유도 없는 거다. 타인의 취향, 오늘의 컨디션, 기분 등을 고려할 피곤함이 사라진다. 오해가 생길 수도 있겠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느니 그렇게 이기적으로 살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다. 거기에 대고 홀로 살아간다 한들 무슨 문제인가, 가끔 외로우면 또 어떠냐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혼자는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행복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종일 싸워대다 결국 자유를 얻어낸 맥스가 짐짓 눈인사만 건네고 군중 사이로 뒤돌아 사라지는 것처럼. (스포가 될 수 있으므로 제목은 쓰지 않는다.)
관계 안에서 "독립"하기
너무나 뻔한 이야기다. 그래서 놓치기 쉬운 이야기다. 남의 시선과 자신의 행복 사이에서 무엇을 저울질하는가. 역으로 생각해 본다. 남들을 흘끗거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하지 못하고 마주하는 상대에게 집중하지 못하면서 남이 혼자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영화를 보는 것에 신경 쓴다. 그것이 자신에게 어떠한, 일생일대의 문제를 던져주는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관계에서 오는 행복은 한계가 있다. 남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행위도 종국에 가서는 자신의 행복이고 만족이다. 관계에서 오는 피곤함에 지치기 전, 굳이 그 아픔을 맞으려는 비장함 따위는 버리고 자신의 행복을 누리자 말하고 싶다. 그것은 잘못이 아니다. 우리는 ‘독’해져야 한다. ‘남겨진’ 것이 아니라 그저 ‘떼어 놓은’ 것이다. 남이 떼어 놓은 게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결정한 것이다. ‘독립’이 ‘고립’이 아닌 이유다. ‘독자생존’이 ‘고자생존’이 아닌 이유다. 혼자도 충분히 빛날 수 있다. 누구보다, 당신은 빛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