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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홍 May 29. 2024

내가 지쳐 누워 있을 때

'休息'에 관한 단상

   

      온기가 있는 생명은 다 의지가 되는 법이야.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다 왈칵 마음이 쏟아진다. 문득 온기를 가진 누군가가 떠오른 모양이다. 영화 자체가 도시의 고단함에 지친 청년들의 삶을 (음식을 통해) 치유한다는 내용이라지만 사실 나에게는 요원한 이야기다.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다는 설정도, 홀로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주인공의 모습도 그저 꿈결 같은 목소리일 뿐 공감하기 어렵다. 질투가 났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일 게다. 여기에서 나는 어떠한 위로를 찾으려 했던 것일까.



      위로는 고달픔을 풀도록 따뜻하게 대해 주는 일을 말한다. 누군가의 눈빛 혹은 말, 행동으로 괴로움이나 슬픔을 잊은 적이 있다면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다. 온전히 당신을 위한 마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가끔 위로를 전한 그 무언가는 온기가 있는 생명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온감(溫感), 그게 무엇이든 우리는 따뜻함을 느낀다. 나에게 위로는 지긋한 일상에서 잠시 숨을 돌리는, 휴식의 순간이다. 툭- 건들면 눈물이 떨어질 것 같다는 동료의 평 따위를 듣지 않아도 되는 참으로 나의 시간이다.






      휴(休 쉴 휴/따뜻하게 할 후)는 나무(木 나무 목)에 사람(人 사람 인)이 등을 기대고 있는 모양이다. 어떤 이가 하던 일을 멈추고 나무가 내어주는 그늘 아래에서 쉬고 있다. 그가 어떤 기분을 느끼고 있을지 우리는 감히 상상해볼 수 있다. 솔직해지자. 사실 그것은 우리가 늘 바라던 모습이다. 통장에 머무르지 않는 월급이나, 습관처럼 자존감을 흔들어대는 이 따위 없는, 오롯이 나라는 존재가 있을 뿐이다. ‘휴’는 우리가 흔하게 생각하는 쉼의 의미에서 나아가 그만두거나 이별한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혹은 아름답거나 훌륭한 것, 용서와 행복의 의미도 지닌다. 다른 음을 가질 때는 따뜻하게 한다는 의미도 포함한다.

        


      식(息 쉴 식)은 自(스스로 자)와 心(마음 심)이 합쳐진 글자다. 주의해야 할 점은 여기에서 ‘자’는 사람의 코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코와 심장이 이어졌으므로 공기가 몸으로 들어가 순환하는 모습이다. 그래서 숨을 쉬다, 호흡하다는 뜻을 지니게 된다. 이러한 행위는 삶과 직결되었기에 살다, 번식하다는 의미까지 확장된다. 그만두고 이별하고 나서야 아름답고 행복에 이르는 글자가 삶과 만났다.



       하던 일을 멈추고서야 드디어 숨을 쉰다. 이는 눈앞의 일을 미루거나 외면하라는 말이 아닐 것이다. 자신을 옥죄거나 굳이 힘듦 속에 가둘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당신이 되뇌는 죽고 싶다는 말은, 사실 진심이 아니다. 그냥 ‘그렇게’ 살기 싫은 거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는 책임감과 굴레를 뒤집어쓰고 울고 있지는 않은가. 온몸에 상처가 덧나고 또 덧나 곪아 터지더라도 참고 견디는 게 맞는 것인가. 허울 좋은 굴레는 스스로 만든 허상의 멍에일 뿐이다. 한 발짝 물러서 한 숨을 내쉬고 천천히 걷는 당신에게 혹여 채찍질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외면하기를 추천한다.






      세 번째 조직검사를 했다. 그 전의 검사는 자주 불편함을 느끼던 곳이었고 그래서 늘 조심하곤 했는데, 이번엔 영 엉뚱한 곳이 문제다.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 엄마의 방문이 잦아지면서 집밥을 자주 먹게 되었다는 것과 부쩍 그리운 음식이 생겼다는 것만 빼면 특별하지 않은 일상의 연속이다. 출근을 하고 일을 하고 퇴근을 한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근무시간이 꽤 유연하다. 덕분에 휴일이면 시골에서 쉬기도 한다. 쉬엄쉬엄 상추도 뜯고 강아지와 동네를 걷고 돌아오면 송골송골 개운한 땀이 맺힌다. 그때 불어오는 바람이 좋다. 아직 살아보지 못한 삶에 대한 동경으로 다 끊어낼 수는 없지만 가끔 가지는 세상과의 이별에서 행복을 찾는다.





      사람은 숨을 쉬어야 산다. 가뜩이나 숨 막히는 당신에게 짐을 지울 수는 없다. 이것이 당신에게 주는 휴식이자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위로다. 부디, 당신의 결정이 옳았기를, 그래서 언뜻 불어오는 바람이 얼마나 시원한 것인지, 그 벅참으로 행복할 당신이기를 바란다.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것일 뿐이다. 온감은 늘 그대 곁에 있었고 그걸 찾는 건 당신의 몫이다.







* 2021년에 쓴 것을 다듬어 재발행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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