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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홍 Jun 05. 2024

가득 차게 비우기

'空'과 '虛'에 대한 단상



 떠나보낸다는 것


      "지지리도 나쁜 인간이 고상이란 고상은 혼자 다 하고. 이제 좀 편히 쉼시로 살믄 어디가 덧나나. 이렇게 가는 것이 어딨어. 정신 있을 때 마지막으로 한 말이 뭔 줄 아냐?  "아파. 나 아파 죽겠네. 이제 그냥 차라리 갔으면 좋겠어……." 이 말이 어디 말이냐? 그라고 가블면 남은 사람은 어떤 마음이것냐. 나중에는 꽂다 꽂다 주사 꽂을 데가 없어서 발등에다 꽂았다. 나는 그냥 옆에가 앉았을 수밖에 없었어야. 뼈에 거죽밖에 안 남아 시꺼매서 누웠는 사람 쳐다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어. 나는야, 아직도 옷장에 자식들이, 솔녀가 선물한 그 깨끗한 옷, 그걸 한 번 안 입히고 보낸 게 천추의 한이어야. 내가 못된 게 아니라 그라고 휙 가버린 그 인간이 나쁜 거여. 곧 따라가겠지만 이라고 끝까지 버티고 있는 나도 이기적인 거지만서도"


      “새로 이사 오셨나 봐요? 얘는 처음 보네. 아휴- 참 예쁘기도 하다. 나도 16년 기르던 강아지가 있었어요. 남들은 그 정도면 오래 살았다고, 충분히 살았다고 이야기 하지만 ‘그만한’ 인생이 어디 있겠어요. 1년이든 10년이든 늘 아쉽고, 애달프고. 당장 자기 이야기라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싶어요. 난 너무 아팠어서, 지금도 이렇게 가슴이 저릿저릿한데. 두 번은 못 하겠어. 여기저기서 한 마리 더 키워 보라고 말하는데. 난 그만 하려고. 그래서 지금도 혼자예요.”


      존재를 떠나보낸다는 것. 그것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요한다. 관계를 끊어내는 것은 한 세계를 끊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삶과 죽음의 차원만이 아니다. 이런 일은 마트에서도 일어난다. 나는 종종 완구나 과자 코너 앞에서 자지러지게 울어대는 아이를 본다. 그럴 때면 어쩔 줄 몰라하는 부모에게 안타까움을, 아이에게는 의아함을 느끼는 것이다. 도대체 저것이 뭐라고 세상을 다 잃은 듯 구는 걸까. 그렇다. 아이에게 티니핑은, 초콜릿 과자는, 며칠 안에 흥미를 잃을 것이 분명한 그것은, 세계다. 저 부인이, 주인이, 아이가 잃은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무엇이든 그 대상이 주였던 - 찰나든 억겁이든 시간은 부수적인 문제다. - 삶의 상실은 사람을 텅 비게 만든다. 공허해진다.



 '질병'과 '수행', 그 사이 어디쯤


      '공허'의 사전적 의미는 아무것도 없이 텅 빔, 실속 없이 헛됨이다. 심리와 연결 짓자면 마음속이 텅 빈 것 같거나 혼자인 느낌, 혹은 삶에서 긍정적인 느낌을 전혀 받을 수 없는 상태다. '허무'와도 통한다. 오늘날 이런 정의에 어색함을 느끼는 사람은 적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동양과 서양에서의 공허는 그 의미가 다르다. 일단 서양에 적을 두는 사상이나 학문의 공허는 부정적이다. 실존주의 철학이나 치료 분야에서 공허를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로 규정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반면 동양의 공허는 욕심을 내려놓고 자신을 비우는 수행의 과정이다. 불교의 근본 개념인 공사상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겠다. 굳이 철학적으로 따지고 들지 않더라도 공과 허가 무엇이기에 이리도 복잡할까 싶다. 어차피 '빈' 것이 아닌가.



'빈' 것과 '비워진' 것


      空(빌 공)과 虛(빌 허)는 둘 다 '비다'라는 의미를 지니지만 엄연히 다른 단어이다. 空(이하 '공')은 속이 텅 비어 없고, 헛되어 쓸데없다. 虛(이하 '허')는 내용이 비어 헛되다. 그래서 빈틈이 있고 약하다. 언뜻 비슷해 보인다. 한자의 생김새는 어떨까. 먼저 '공'은 穴(구멍 혈)과 工(장인 공)이 합쳐져 장인의 도구가 만들어 낸 구멍을 나타낸다. 구멍은 뚫어지거나 파낸 자리다. 그래서 비어있다. '허'는 언덕(丘 언덕 구)에 호랑이(虎 범 호)가 올랐다. 넓은 언덕 위 호랑이 주변에는 무엇이 있을까. 영화 <라이온킹>을 떠올리지 않길 바란다. 심바가 태어나 모든 동물에게 소개될 때의, 차기 왕을 맞이하는 경이롭고도 가슴 벅찬 낭만은 현실에 없다. 상대의 배가 고플지 아닐지에 목숨을 거느니 도망가는 게 낫다. 숨어서 지켜볼지언정 옆에 바짝 붙어 잡아 먹히길 기대하는 짐승은 없을 것이다. 이에 '허'는 텅 빈 것,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를 가진다.


      결국 두 글자의 차이는 본질에 있다. 구멍의 본질은 빈 것이다. 비어있지 않으면 구멍이 아니다. 성립 자체가 안 된다. 그래서 '공'은 이미, 본래 '빈' 것이다. 반면 '허'는 '비워진' 것이다. 언덕은 무엇으로 가득 차있든 비어있든 언덕이다. 그러나 호랑이가 오름으로써 비워졌으니 어쩔 수 없는 비움이고 주체의 의지가 결여된 비움이다.



 비우되 '허'하지 않기


      어떤 인생을 살았건 사람은 가슴에 사무치는 이별 하나쯤 품고 산다. 신세한탄을 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그 에는 아픔을 어떻게 남겨야 좋을지 생각하고 싶다. 떠나보낸 것은 사랑하던 사람일 수도, 못다 이룬 꿈일 수도 있다. 유지하고 싶던 현실일 수도, 진절머리 나던 현실일 수도 있다. 자의든 타의든 과정은 어려웠다. 또한 아쉽게도 이는 과거 완료형이 아니다. 지금도, 앞으로도 간절히 비워내고 싶거나 원치 않게 비워지는 일이 생기리라.


      문제는 그것이 '공'이 될 것인가 '허'가 될 것인가다. 그러니까 내 인생에서 그것이 '없'을 것인지 '결여'될 것인지의 문제다. 잔인하지만 선택은 나의 몫이고 결과도 나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픈 이별을 경험했고 또 숱한 세계를 떠나보내야 할 당신에게 말하고 싶다. 내 의지를 묻지 않는 이별이 온다면 미련 없이 아파하길 바란다. "이 또한 지나가리니 Hoc quoque transibit". 하지만 놓치지 않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기로 마음 먹었다면 꽉 붙잡고 발버둥 쳐 보길 바란다. 버리고 싶다면 사정없이 뿌리쳐 보길 바란다. 중요한 건 나의 진심이다. 결과는 다음 일이다. 문득 돌아봤을 때 벅참에 가슴 터지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허하지는 말아야지. 헛헛하지는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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