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이방인의 훔친 꿈을 꾼다

by 들숨

1.

너의 집착을 끊어 내야 해

하지만 속 보이는 유리가 항상 문제야

창은 밤새 내 눈에서 훔친 물로 두꺼운 장막을 쳤다

눈에 드리운 누런 커튼을 비비며 창문을 기어오른다

그의 가장 약한 곳을 찾아 구멍을 뚫고 눈을 집어넣는다

살아있다! 안도의 한숨에 서리가 힘없이 흘러내린다

메마른 눈에 붉은 노을이 번지던

공원에 뿌리도 가지도 없이 붕대를 칭칭 감은 나무가 실려 왔다

이 계절 미련이 없어야 부대끼지 않고

뿌리내릴 수 있다는 바람의 귀띔을 믿기로 했다

걸리적거릴 것 없는 맨몸뚱이는

인부들의 성의 없는 삽질에도 쉽게 심어 졌고

멀찌감치 그의 알몸을 훔친 몇몇 그루가

잎을 비벼가며 키득거렸다 흔들리지 않기로 한다


2.

나의 꿈이 이방인이 되어 헤매던 날

그의 꿈을 내가 꾼다

땅 속 깊이 뿌리내리고 하늘 높이 가지가 뻗는다

꿈틀거리는 등에 돋은 날개가 그의 꿈속을 파고든다

나의 꿈틀거림이 뜸할 때면

아이는 볼품없고 초라한 나무를 찾곤 했다

그와 나를 동일시하는 걸까?

문 앞에 선 아이의 손에

그의 상실이 꽁꽁 감긴 무거운 실뭉치가 들려있다

풀어낼 섬세한 손과 덜어 낼 예리함이 없어

주저하는 내게 "이거 저기 나무아래 떨어져 있길래 찾아왔어 잘했지?"

칭찬을 해야 했다 "응 잘했어 얼마나 찾았는데"

마땅히 둘 곳을 몰라 헤매느라

폴짝폴짝 좋아하는 아이의 눈을 종일 피한다


답은 늘 그랬다. 머리맡이다 실뭉치의 각성효과는 뛰어났다

수면제는 먹지 않기로 한다

그의 긴 실이 나의 밤을 이끈다

실이 밤에 녹아들고 밤은 실을 받아들인다

하나로 꼬이는, 질긴 꼬임이다

툭하면 끊어지고 턱없이 짧아 무엇 하나 지을 수 없던 나의 실이

밤마다 그를 만나 질기고 길어진다

길어진 만큼 한가한 낮을 덜어 내야


3.

새파란 실들이 노랗게 무르익는다

투명한 몸이 한 올 한 올 실을 뽑아 고치를 짓는다

아픈 목을 돌려가며 온 힘을 기울인다

마지막 실의 끝이 입을 떠난다 꿈틀거림이 고요하다

깨어나지 못하고 영원히 묻힐지도 모르는 위험한 잠자리다

망각의 잠이, 망각된 망각을 깨운다

방에 또 다른 창이 나타난다 가슴 언저리쯤

답답한 짐들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다 허름한 녹슨 창이 다가온다

애써 비비고 뚫지 않는다


등이 간질거린다

미미한 고치의 떨림에 창에 슨 녹이 떨어져 내린다

떨림이 점점 커진다

맞다! 고치를 뚫지 못한 날개에게 기억은 빗장을 풀지 않는다

다부지게 버티는 다리와 단단한 이빨이 절실하다

유리창을 뚫었었다 뚫어낸다 한 발 한 발 힘겨운 사투다

눈이, 다리가, 몸이.. 접혀있지만 분명 날개다

미묘한 떨림에 숨들이 멎는다

주름이 펴지고, 날개를 활짝 펼친다

화려함의 여부는 감히 끼어들지 못한다

비바람을 버텨내는 견고함의 문제다

틀림없는 다름있는 날개다

아이가 힘껏 뛰어올라 녹슨 창에 안긴다

그새 공원에 나무가 또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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