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지 않다 너그럽다

by 들숨

세 가닥 창을 뽑고

모자라 비상을 빼앗고

나와 그의 혈액형이 일치라도 하는 날에는

거창한 화형식을 더해

그의 영혼이 이탈하는 것을 목도하고

십자가를 그어야만 편히 잠들 수 있었다


오늘도 고막을 뒤흔드는 날카로운 공습에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보지만

예전의 긴장감은 사라지고

스스로 놓침을 당하도록

그의 도주를 방조하고 있다


타인의 평화를 깨뜨리려는 것도

치명적인 창을 겁내지 않는 것도 아닌

그에 대한 어떤 연민도 없이

그를 무사히 돌려보내는 모습이

얼핏 대견스러워 보일 수도 있겠고


부릅떠 그를 압도하고

도주로를 철저히 차단하여

전장에 붉은 꽃을 피우는 짜릿함과

모든 감각에 비상을 걸어

팽팽한 뒷다리에 엉덩이를 쳐들고

방심한 영토에 창을 꽂는 희열이

어쩌면 같을 수 있다는 우려 또한 있겠으나


'동대문시장 다동 상가 만물상집 모기장이

가장 싸고 질기다'라는 해묵은 수첩 속

후덥지근했던 지난여름밤의 메모가

멀리해야 와닿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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