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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 보석 Aug 18. 2016

팔불출

네이버 지식을 찾아보면

'팔불출'의 원래 뜻은 제 달을 다 채우지 못하고 여덟 달만에 낳은 아이를 일컫는 팔삭동(八朔童) 이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팔불출은 어리석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서 '좀 모자란', '덜 떨어진', '약간 덜된' 것을 의미한다.
 
팔불출이란 어휘를 여덟 가지 못난 행동으로도 비꼬아 설명하기도 한다. 

그 첫째가 제 잘났다고 뽐내는 놈, 둘째'가 마누라 자랑하는 놈이고, 셋째가 자식 자랑하는 놈이라고 한다. 넷째는 조상과 부모 자랑을 일삼는 놈이고, 다섯째는 저보다 잘난 듯싶은 형제 자랑이고, 여섯째는 어느 학교의 누구 후배라고 자랑하는 일이며, 일곱째는 제가 태어난 고장이 어디라고 우쭐해하는 놈이며, 여덟째는 남이 장에 가는데 똥장군 지고 따라가는 놈이라 한다. 사실 일곱째까지 나와 있는데 여덟째는 내가 만들어 넣어 보았다.


오늘은 내가 이 덜 떨어진 팔불출이 한번 되어 보려 한다.






우리 집에는 천사가 산다. 그것도 둘이나 산다.


첫 번째 천사는 태어난 지 한 달 하고 스무날 된 손자 시완이다.

올망 똘망하게 생긴 게 여간 예쁘지 않다. 3.7킬로 건강한 몸으로 태어나 주었으니 그것부터가 감사한 일이다.


어린 젖먹이야 우는 게 의사소통의 유일한 도구라 배만 고파도, 오줌을 싸도, 똥을 싸도, 아파도 우는 방법 밖에는 없다. 가만히 보면 울어도 눈물도 안 난다. 그냥 말하는 거로 생각하면 된다.

앞에 세 가지 이외는 우는 일이 없으니 배고프면 젖먹이면 되고, 똥오줌 싸면 기저귀 갈아주면 되니 천사도 그런 천사가 없다.

요즘은 눈을 크게 뜨고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눈을 맞추면 씩 웃기까지 하는데 차츰 사물이 보이기 시작하는 걸까? 그 시크한 웃음에 집안 식구 모두가 녹는다!!

잠도 잘잔다. 한번 잠들면 세 시간도 잔다. 할머니 왈 대빵이 같으면 열이라도 키우겠다고 한다.

딸과 아들 키우면서 기쁘고 경이로운 순간이 많았지만 손자에게서 느끼는 감정은 또 다르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바쁘고 여유롭지 못했던 그 시기와는 다르게 이제는 시간도, 마음도, 모두가 여유 있는 상태에서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는 느낌은 완전히 다르다.  딸이 저렇게 어렸을 때는 모든 것이 풍족하지 못했고 아기를 키우는 지식도 부족했다. 힘들고 안타까웠던 기억도 많으니까!! 그런 딸이 커서 이제 엄마가 되어 어렵게 자식을 키우는 걸 보면 대견하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다. 이렇게 자식 낳아 부모가 되는 게 진정한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된다.


제 아빠 엄마야 말할 것도 없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시완이로 인해 기쁨이 넘쳐 생기가 살아났으니 천사가 아니면 가능한 일인가. 온 가족이 "대빵아!, 시완아!!" 하면서 기뻐하고 예뻐하니 온 집안에 웃음꽃이 피었다.

마침 딸네 집이 가까이 있어 아침저녁으로  데려 오고 데려다주곤 하는데 울다가도 계단만 나오면 울음을 그친다. 아무리 울다가도 차에만 태우면 조용해지고 곤히 잠드는 걸 보면 차의 진동과 움직임이 좋은가 보다. 큰딸은 너무 울어 어찌할지 몰라 애먹었던 추억을 지금도 얘기한다. 제 엄마가 등에 업으면 그치고, 내려놓으면 우니 등에 업고 하얗게 밤을 새우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래서 가수가 될 줄 알았는데 전혀 다른 소질을 나타냈다.








두 번째 천사는 멀리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날아왔다. 그 천사의 이름은 엠마다. 이 천사의 나이는 고작 3년 10개월이다. 신데렐라가 예쁜가? 아니 신데렐라보다 우리 엠마는 몇 배 더 예쁘다.


이 예쁜 미국 천사는 한국말도 잘한다. 엄마가 가르치고, 할머니가 가르치고, 뽀로로 등 동영상을 보면서 배운 실력이 보통이 아니다. 이제는 제가 직접 유튜브에서 동영상을 찾아서 본다. 제 엄마 아빠가  IT 관련 일을 하고 있어서 빨리 배웠을까?. 그런데 지난 3월 초에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가서 입이 빵 터졌단다. 언어는 어떤 계기가 있어야 단계를 돌파할 수 있는가 보다.


고집도 세지만 말도 잘 듣는다. 고집을 피우다가도  일단 납득하면 군소리가 없다. 그런데 납득시키는 게 쉽지는 않다. 때론 초콜릿 아이스크림이나 망고, 바나나 등 제가 좋아하는 먹을 것으로 네고를 하면 대부분 통한다.


자기 의사 표시도 명확하다

"싫어!"

여지없다. 한번 싫은 건 더 이상 얘기하지 않는 게 현명하다. 절대 바뀌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고집은 세지만 충분히 이해되면 금방 풀린다. 그런데 이해를 논리적으로 시키는 게 쉽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 왜?라고 끝없이 물어 오는데 밑천이 딸린다. 큰딸 왈 

"말로는 엠마 못 이겨요" 

한다. 제 엄마는 그렇게 고집을 피우지 않았는데 아빠가 고집이 센가? 아마 우리 엠마가 한국에서 유치원에 간다면 어떨까 상상도 해 본다. 과연 저 질문 다 들어주고 저 고집을 용인할까?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그 어린아이들을 구타하는 게 문제 된 것이 한 두건이라야 말이다. 그래도 작은 천사에게도 약점은 있다. 말 안 들으면 

"엠마 내일 샌프란 갈래?" 

하면 해결된다. 

"엠마 인나 하우스 안 갈 거야?"

라고 샌프란시스코에서도 제 엄마가 자주 써먹던 수법을 전수받았다. 서울에 오면 모두들 저를 공주처럼 받들고, 신기하고 새로운 게 많으니 왜 안 오고 싶겠나! 한발 더 나가 제가 프린세스란다. 하긴 엠마가 그렇게 된 것은 순전히 할머니(인나) 책임이 제일 크다. 무엇이건 오냐오냐 받아주니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을 거다.


문제는 말이 짧다는데 있다.. 경어를 모른다. 엄마와 할머니가 저에게 하대해서 말하니 천사도 하대해서 말한다. 존대받으려면 어린 천사에게도 존대해야 한다는 진리를 깨친다.

엠마가 자주 쓰는 말이 있다. 

"나만 바빠!!" 

다. 그림을 그리거나 비디오 보거나 할 때 누가 말을 시키거나 하면 자주 쓰는 말이다. 오늘은 차 타고 호텔로 오는 데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봐서 국제 요금 많이 나올 것 같아 빼앗았더니 울면서 

"나만 슬퍼!!" 

한다. 제가 동영상 보는데 주위에서 시끄럽게 얘기하면 

"시끄러워!" 

소리를 지른다. 우린 그래서 이 천사를 상상전이라 부른다. 상전은 당연히 대빵이 시완이다.


내 옷 주머니를 가리키며 

"이것 호주머니" 

한다. 이 정도면 작은 천사의 한국어 실력을 알 수 있지 않은가. 

"엄마 힘들어?" 

제 엄마가 일하고 지쳐서 늦게 들어오면 그렇게 묻는다. 어린것이 엄마를 찾을 만 하지만 일하러 회사 갔다고 하면 더 이상 찾지 않는다. 숨바꼭질을 할 때 

"거기 누구 있어?" 

한다. 

"거기 누구 없어요?"

로 표현하는 걸 기대하는 건 아직 이르겠지. 요즘은 병원 놀이에 빠져 산다. 내가 배가 아프다 하면 청진기를 배에다 대고 난리다. 약도 조제해 주고 주사도 팔에 놓아준다. 

"고마워요 닥터 엠마!"

하면 좋아서 넘어간다.


작은 천사는 밥보다 빵을 좋아한다. 그래도 롤리폴리 김밥은 잘 먹는다. 야채보다는 고기를 좋아하고, 햄과 치즈를 좋아하며 시리얼을 즐긴다. 생선은 안 먹는다. 버섯도 잘 안 먹고 땅콩도 안 먹는다. 영락없는 텍사스 촌놈 딸이다. 아쉬운 건 우리가 즐겨 먹는 한국 음식을 천사도 잘 먹었으면 좋겠는데 아직은 아니다. 사실 이 부분이 제일 아쉬운 부분이다. 언제쯤 엠마가 청국장과 생선회를 먹을 수 있을까?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레 입맛도 바뀌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먹기 싫을 때의 대답은 

"나 안 배고파!"

다. 이 예쁜 천사는 초콜릿을 제일 좋아한다. 아이스크림도 초콜릿 아이스크림만 찾는다. 좋아하는 걸 주면 반응이 격하다. 팔짝팔짝 뛰면서 좋아하는 것을 보면 원하는 건 뭐든지 다 주고 싶다. 그래서 아이스크림 잘 사주는 킁킁 삼촌이 제일 좋단다.

" 아이 러부 킁킁!"

을 남발한다.


미국에서 오기 전에 엄마한테 영어로 동생 대빵이가 할머니 집에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해서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런데 그것은 쓸데없는 기우였다. 애기를 만지지 말라니 만지지 않는 것은 물론 아기 운다고 빨리 오란다. 시완이 딸꾹질한다고 빨리 오란다.

엄마 회사 리서치팀 멤버들과 인터뷰하는데 시완이 동생 사진을 보여주며 예쁘다고 자랑이 대단하다.

하지만 인나 씨가 대빵이를 안고 있으면 질투를 한다. 대빵이를 팔베개 해주는 건 못 본다. 반대편 팔 쪽에 누워 "엠마는 인나 강아지"

한다.


엠마 천사는 그림을 잘 그린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한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그림을 집중력 있게 그린다.

그리는 폼이 영락없는 제 엄마다. 아마 엄마 닮아서 그림을 잘 그리는 것 같다. 엄마는 그림을 잘 그려서 미대에 가서 디자인을 전공하여 실리콘밸리 유명한 IT 회사에서 일한다.


일전에 동대문 역사문화공원에 데리고 놀러 갔다. 마침 초상화를 즉석에서 그려주는 곳이 있어서 엠마 천사를 그려 달라했다. 당연한 얘기이지만 내가 보아도 엠마 천사는 정말 예쁘다. 그림 그리는 언니도 모델이 예쁘니 더 신나서 그리는 것 같다. 정면 의자에 앉아 있다가 저도 그리는 걸 보고 싶다고 해서 옆에 서서 구경하는 것을 그렸다. 그래서 그림은 앉아 있는 모습이 아닌 서 있는 모습이 되었다. 하트도 크게 두 개나 그려 넣었고 별도 여러 개 그렸다. 크고 아름다운 눈도 예쁘게 그렸다.

처음 스케치를 할 때는 좀 시무룩한 표정이었다. 내가 뭐 이래?! 그런 표정이었다. 그러나 점차 형태가 갖춰지고 파스텔로 색깔이 들어가니 그림이 살아난다. 동시에 엠마 표정도 살아난다. 

"엠마 예뻐?" 

하고 물으니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떡인다. 나는 그 과정에서 사진도 여러 장 찍었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멈춰 서서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화가 언니도 엠마 사진을 찍고 그림 사진도 찍었다. 날자와 이름을 써넣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름에 Emma Johnston이라 해야 하는데 끝에 e가 더 붙었다. 확인할까 하다가 그냥 한 내 불찰이다. 카톡으로 큰 딸은 괜찮다고 한다. 그것도 오히려 추억이 될 수 있다고 날 위로한다.


더 큰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엠마도 거기 앉아 그림을 그리겠다는 것이다. 아무리 얘기를 해도 막무가내다.

이럴 땐 천사도 힘들다. 그럼 엠마만 여기서 그림 그리라고 하고 우린 호텔로 간다고 협박을 해서 호텔에서 그리기로 하고 위기를 모면했다.


밖에 나갔다 돌아오면 

"인나 하우스는 계단이 너무 많아!" 

불평을 한다. 그래도 5층 계단을 혼자 잘도 오른다. 많이 컸다. 






그런데 그 예쁜 엠마 천사가 오늘 샌프란으로 돌아갔다. 엠마는 인나 하우스가 더 좋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인나 씨는 맥이 빠졌다. 저러다가 우울증에라도 걸릴까 걱정이다. 건강하지 않은 인나 씨가 두 명의 천사 때문에 활기를 되찾았었는데...... 하지만 걱정은 없다, 우리에겐 또 하나의 천사 대빵이가 있으니까!! 또 페이스타임이 있지 않은가! 적어도 하루에 한 시간은 비록 사이버 공간이지만 서로 얼굴을 보며 대화할 수 있으니까!


이렇게 우리 가족은 이 더운 한 여름을 행복하게 정신없이 보냈다.


고맙다!! 우리 천사 엠마, 그리고 시완이!! 너희가 우리 곁에 와 주어서 정말 고맙다!!



*팔불출 하지지 노란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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