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봄

수정분

by 노란 보석

내 님 보내드리던 날도 진달래가 흐트러지게 피었습니다.


나는 님 떠나는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멀리 있어 함께 할 수 없어서

전문 한통으로 님이 떠나신 걸 알았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

땅이 꺼지는 듯

눈물로 전문을 읽었습니다


나에게 잘 있으란 말도 없이

잘 가시라는 인사도 받지 않고

홀연히 떠나가셨습니다

무엇이 급해서

그렇게 가셨는지 너무도 아쉽습니다


꽃가마 태워 드릴 때 님이 정말 가시는 걸 알았습니다

아무리 길을 막고 잡아도 님은 말없이 가셨습니다

아무리 땅을 치고 울어도 무심하게 떠나가셨습니다

님 보내드리고 되돌아올 때 뻐꾸기도 구슬피 울었습니다

허무합니다

너무도 아쉽습니다


그렇게 잔인한 봄날 나는 님을 보내드렸습니다


바쁘게 일하며 살 때는 잊고 살다가

밥 먹을 때 문득 생각납니다

아~~ 님이 떠나가셨지!!

한없이 슬퍼서 눈물짓습니다.


또 잊고 살다가

잠자리에 들어 문득 생각납니다

아~~ 님이 떠나가셨지!!

또다시 서러워 눈물짓습니다.

베갯잇이 젖도록 흐느껴 웁니다.


잠에서 깨어 또 문득 생각납니다

아~~ 님이 떠나가셨지!!

믿기지 않는 현실에 눈물짓습니다



스무 살 청년은 잔인한 봄을 그렇게 보냈습니다


은 우리를 떠나갔지만

마음속에서는 보내드리지 못해서

가슴속에 묻고 삽니다

내가 이 세상 끝내고 돌아가는 날이

님을 보내드리는 날이 되겠지요






오늘은 아버님 기일이다.

울산에서 직장 생활하던 나는 아버님 임종을 하지 못했다.

임종을 하지 못한 자식은 불효자식인데.....

전보 한통으로 받아 든 믿기지 않는 비보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울산역에서 밤 9시 15분 중앙선 기차를 타고 밤새 달려 새벽에 청량리 역에 도착했다.

택시를 잡아 타고 안성 고향으로 달려갔다.


둘째 아들 오길 기다리다 시간에 쫓겨 도착하자마자 발인을 한다.

임종은커녕 염습에도 참관을 못했다.

액자에 흑백 사진으로 뵙는 아버님 얼굴은 예나 다름없는데 도대체가 믿기지도 않고,

실감도 나지 않는다.


얼떨결에 선산에 아버님을 모셨다.

하관 할 때 잠깐 베옷으로 완전히 감싼 모습을 보았을 뿐 돌아가신 모습을 보지 못했다.


울산에 돌아와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한 동안 아버님을 보내 드리지 못하고 낙담하던 일이 생각난다.

임종도 못하고,

염습도 참관하지 못해서 실감이 나지 않아 그랬을 거라 생각된다.


아버님은 일제강점기 때 징용에 끌려가서 전기에 감전되어 죽었다 살아나셨다.

그 때문에 평소에도 몸이 아파 고생을 많이 하셨다.

다들 죽는다 하는 걸 용한 한의사를 만나서 기적적으로 살아나셨다고 했다.

일 년에 한 번씩 그분이 이천에서 직접 방문해서 침도 놓고 약도 조제해 주셨다.

그림에 나오는 도사처럼 머리가 하얗고 수염이 긴 위엄이 있는 풍채를 지니셨었다.

우리 가족은 그분을 생명의 은인으로 여기며 마음을 다해 대접했다.


대기업에 취직하여 효도할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 아쉽게도 환갑을 넘기지 못하고 안타깝게 폐결핵으로 세상을 뜨셨다.

불효자에게 효도 한번 할 기회도 주지 않고 떠나가셨다.


징용 때 등에 감전된 것 때문에 등이 약간 굽으셨다.

그러나 아버님은 한 번도 흐트러짐을 보이지 않으셨다.

내가 몸이 이러니 혹이라도 술 마시고,

말 한마디라도,

행동 하나라도 잘못하여 손가락질받을까 겁난다고 말씀하셨다.

누구 하고도 언성을 높여 말다툼 한번 하시는 걸 본 적이 없다.


이제 세월이 흘러 내가 아버님이 떠나가실 때의 나이가 되었지만,

나는 아직도 님을 보내드리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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