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란 보석 Feb 09. 2017

춘래불사춘

"춘래불사춘"


"봄이 왔는데 봄 같지 않다"라는 말인데 중국 고사에서 유래되었다 합니다. 전한 원제의 궁녀 왕소군은 절세미인이었으나 흉노와의 화친 정책을 위해 흉노왕에게 시집을 가게 된 불운한 여자였습니다. 그걸 모티브로 지은 동방규의 시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오랑캐 땅에는 꽃과 풀이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 (胡地無花草 호지무화초 春來不似春 춘래불사춘)


이것은 또한 기대하던 일이 못 미쳤을 때 역설적으로 쓰이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오늘 봄이 시작되는 입춘이 엊그제 지났지만 내 마음은 한 겨울같이 추운데 그런 내 처지를 잘 표현하는 말인 것 같아 제목으로 붙여 보았습니다.


어제 어머니를 정형외과에 입원시켜드렸습니다. 어머니는 올해 아흔이신데, 원래 심한 골다공증이 있고 디스크와 양쪽 무릎 관절이 아프셔서 걷기도 어려운 상태입니다. 병원은 수원에 있는데 전에도 두 번이나 입원해서 허리뼈 부러진 것과 관절 치료를 받기도 하셨던 곳입니다. 허리가 심하게 굽으셔서 걷는지 기어 다니는지 구분이 안 될 지경이니 안쓰럽기 그지없습니다. 매일 밭에서 구부리고 앉아서 일을 하셔서 그리 되신 거라 생각합니다.


병원에서 영상 촬영과 검사를 하는데 걸을 수가 없어서 휠체어에 모시고 다녔습니다. 영상 촬영을 위해 옷을 갈아입는데 서서 할 수도 없어 앉아서 하시는데 옆에서 도와드려도 시간이 마냥 걸립니다. 앙상하게 뼈만 남으신 몸매를 보는 자식의 마음은 아프고 서럽습니다. 자식 위해 다 내어주고 앙상한 뼈와 가죽만 남았단 생각에 울컥합니다.

허리와 무릎 X-RAY 촬영을 위해 양쪽 손잡이를 잡고 자세를 곧바로 해서 서야 하는데 기력이 딸려 서실 수가 없습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무릎과 고관절이 뒤틀리셔서 자세가 나오지 않습니다. 촬영 기사님이 여성 분인데 애를 먹습니다. 어머니는 힘에 부치고 아프셔서 어쩔 줄 몰라하십니다. 옆에서 거들고 지켜보는 아들은 가슴이 메어집니다. 문을 닫고 X-RAY 촬영을 위해 홀로 자세를 유지하는 약 십오 초 간의 시간이 한 시간 같이 길게 느껴집니다. 그런 일이 약 십여 회 정도 반복되었습니다. 누우신 자세에서도 기사님이 원하는 자세가 나오지 않아 애를 먹습니다. 몇 번인가 잘못되어 다시 찍습니다.

마지막으로 CT촬영을 해야 하는데 그것이 혹 MRI 인가 놀라서 안 찍으시겠다고 하십니다. 몇 년 전 MRI를 찍느라 통속에서 30분 정도 움직이지도 못하고 고생하신 기억이 있는 것이지요. 5분밖에 안 걸린다고 얘기를 해도 내키시지 않는 눈치입니다. 

의사 선생님은 전에 수술을 하셨던 분이라 잘 아는 분입니다. 이미 너무 노쇄하시고 골다공증이 심해 물리적 수술이나 시술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5년 전에도 무릎 관절 수술과 허리 시술이 불가능하다고 했으니 지금은 더 심해지신 것입니다.



어머니는 작년까지도 농사일을 하셨는데 온 식구가 말려도 하루도 쉬지 않고 밭에 나가 일 하셨습니다. 그래서 낮에 전화를 하면 받지 않으십니다. 어머니는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고 노래하며 기쁘게 일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작년 여름에 탈진해서 밭에서 쓰러지시고, 성당에서도 미사 중에 쓰러지시고, 두 달 전에도 감기약을 드시고 인사불성이 되어 응급실에 실려 가셨습니다.

기력이 없으신 것도 문제인데 그러다 보니 힘이 없어 말이 꼬이십니다. 더구나 단백질 공급원인 육고기(소, 돼지, 염소 등) 음식에 대한 알레르기가 있으셔서 고기를 드시기도 어렵습니다.

다행히 정신은 맑고 눈도 밝으셔서 기도서를 돋보기 없이 보십니다. 얼마 전부터 한쪽 귀가 잘 안 들린다고 하십니다. 잇몸이 안 좋지만 아직 한 군데도 보철 치료를 받지 않으셨으니 큰 복이라 생각합니다.


병원에 간 목적은 아픈 부위의 통증을 줄이고 기력을 보충하여 활동하시는데 도움을 드리기 위함입니다. 또 하나는 요양원에 들어가시기 위해 필요한 "의사 소견서"를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요양원에 들어가시려면 국민의료보험공단에서 인정하는 장애등급을 받아야 하는데 의사 소견서가 제일 중요한 판단 근거입니다.



어머님이 요양원에 가시는 것에 대하여 고민이 많습니다. 


어머니는 현재 고향에서 형과 형수 세분이 함께 살고 계십니다. 두 분은 어머니를 끝까지 모시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형수도 건강이 안 좋은데 거동도 못하시는 어머니를 장기간 모시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조카들도 요양원에 들어가시는 것을 반대합니다. 할머니 모시고 오순도순 살면 되는데 왜 그러느냐는 것이지요.

또 다른 이유는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의 대우가 엉망이라는 소문을 듣고 반대하는 것입니다. 일부 그런 질 나쁜 곳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지 않은 곳이 더 많겠지요.

어머니를 모시지 않고 요양원에 보냈다는 주위의 시선도 신경 쓰이는 부분입니다. 시골은 서로 다 아는 사이이니까 남의 이목도 무시할 수 없는 겁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어머니께서 원하시냐는 것이고, 어머니께서 어디에 계시는 게 더 좋을까?입니다.


장모님이 치매에 걸리셔서 요양 병원에 가신지 3년이 넘었습니다. 처음 가실 때 보다 건강 상태는 더 좋아졌습니다. 치료와 운동도 하고 주위의 환자들과 어울릴 수 있게 되어 좋아지신 거라 생각됩니다. 가끔 맑은 정신이 돌아와서 집에 가실 건가 여쭤 보면 고개를 저으십니다. 그곳이 편하고 심심하지 않아 좋으시다는 것입니다.

집보다 요양원이 좋은 것은 건강 및 오락 프로그램도 있고, 신부님이 오셔서 미사도 들려주시고, 사람들과 어울려 생활할 수 있다는 점일 겁니다.


우리는 부모님 잘 모시는 것을 당연한 도리로 알고 살아왔고, 효자다 효부다 하여 상도 주고 사회적으로 기리는 문화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며느리의 상당한 희생이 따르는 일입니다. 부모 모시는데 희생이라는 단어가 적합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공동 분담할 수 없다면 누군가 한 사람의 육체적, 정신적, 시간적 부담이 따르는 일입니다. 우리 같은 경우 형수님이 되겠는데 형수의 삶도 행복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식들 삶과 행복도 어머니의 행복만큼 중요한 것이라 생각하기에 직접 모시는 것이 무조건 좋다고만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요양원에 가시려면 금전적인 부담도 따릅니다. 돈이 없는 집은 부담이 클 수도 있고, 있는 집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금액입니다만. 우리는 형제들 간에 공동 분담하기로 이미 합의한 상태입니다. 장애 등급이 높게 나와 부담을 더 줄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어머니도 여러 가지로 생각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요양원을 보내달라고 했다가 안 간다고 했다가 왔다 갔다 하십니다. 왜 그렇지 않겠습니까! 가족이라는 품을 떠나 전혀 낯선 곳으로 가신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것이지요. 돈이 많이 들어갈까 봐 걱정되시는 것도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식들에게 부담 주기 싫으신 것이지요.


병원에서 밤에 서러워 우셨다는 얘기를 듣고 마음이 아픕니다. 우울증이 와서 그러시다는데, 가족들 두고 떠나가실 것을 생각하여 그리하신 것이라 생각되니 안타깝습니다. 속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시다고 하소연을 하십니다. 전에는 아파도 그러시지 않았는데 점점 어리광을 부리시는 것 같습니다. 옆에 아주머니가 늙으면 점점 애가 된다는 말씀에 마음이 짠합니다.



이것은 어느 일방의 상황을 보고 판단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더 늙어 어머니와 같은 상황이 된다면 나는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

당연히 나는 요양원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것이 나를 위하고, 자식들을 위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나 혼자 판단하고 결정할 문제도 아니지요. 가족이 모두 찬성해야 하는 일입니다. 물론 당신의 의사가 제일 중요한 일입니다.


아직 모든 게 결정된 것이 아니라 이런저런 생각이 많습니다. 거동 불편한 부모님을 모시는 일은 마음만 가지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우선은 기력을 회복하시고 고통을 줄일 수 있도록 치료를 잘 받으시는 게 중요한 일이겠지요.


지극히 당연한 일이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 자식 된 도리가 무엇인지 고민이 많습니다. 일생을 자식들 위해 희생만 해 오신 어머님을 어떻게 모시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살아 계실 때 잘 하라고 했는데 이제와 무슨 소용인가 죄송스럽습니다. 길지 않은 남은 시간이나마 잘 모셔야 할 텐데 이런저런 고민만 하는 내가 너무 싫습니다.

.

지금은 "춘래불사춘"같은 상황이지만 "입춘대길 건양다경"이라고 봄의 생기가 우리 가정에 충만해져서 어머니가 건강을 회복하시고 집안에도 화기애애한 웃음이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